82억 5천만 분의 /1이라는 숫자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나, 나에 대한 삶의 이유



시 원문


〈82억 5천만 분의 1, 나〉


월인 박성진 시인


나는

82억 5천만 분의 1


나, 나에 대하여


사라지는 먼지 같고

떠도는 별무리 같아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윤동주의 시 한 구절에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행복한가 — 이 질문을

내 몸보다 무겁게 안고


칸트의 순수이성과

괴테의 파우스트 사이에서

유혹과 진리를 배웠다


다빈치의 손끝에서

피카소의 왜곡된 시간 속에서

뭉크의 절규에 나를 앉혀

나는 그림보다 더 고요한 어둠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깊은 산골

이름도 없는 사람

그의 작은 논밭에서

빗물과 땀방울이 섞이는 삶을 보며

나는 삶의 향기를 처음 배웠다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

— 시

별 하나에 부끄러움,

별 하나에 떨림,

별 하나에 영혼을 묻고 싶던

윤동주의 시처럼


나는 살아 있다

82억 5천만의 소음 속에서

나 하나 조용히 피워내는

작은 불빛처럼


나는 시를 쓴다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그것이 나를,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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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이 시는 단순한 자아 탐구를 넘어선 존재론적 고백이자, 문명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는 한 시인의 의미 추적이다.

‘82억 5천만 분의 1’이라는 표현은 통계적 존재의 무력함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 안에서도 고유한 개체로서의 나를 확인하려는 존재의 발버둥을 암시한다.


윤동주의 시로부터 시작된 성찰은 칸트의 이성, 괴테의 욕망, 다빈치와 피카소, 뭉크의 예술사 속 고뇌를 거쳐, 이름 없는 농부의 삶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실로 도달한다. 시는 삶을 하나의 예술로 환원시키며,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 대신 시 자체로 응답한다.


이 응답은 단지 언어의 향기이기보다, 고통과 떨림, 윤리와 미학이 교차하는 존재의 무게를 이고 선 서사이다.

시인에게 “춤”은 희망의 은유가 아니라 삶을 지탱해 내는 절박한 의지이며, 그 춤을 추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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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이 시는 단순한 문학의 언어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고뇌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 자체가 이미 인간됨의 증거임을 말해주는 존재의 언어이다.


삶의 척도는 누군가보다 높거나 낮은 곡선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내가 나에게 얼마나 진실했는가로 가늠된다.


누구든지 별의 수만큼 셀 수 없는 사람들 속에 흩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그 속에서 "나는 왜 존재하는가"를 묻는

단 하나의 사람을, 당신을,

무의미의 어둠 속에서 건져내는 불꽃처럼 존재하게 한다.


의미 있고 행복한 사람으로 남기 위한

처절한 고뇌의 끝에 이 시는 묻는다 —


나는 지금, 나로서 살고 있는가?

당신의 춤은 무엇을 위해 타오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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