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두 청년의 회상과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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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청년, 홍중기 청년을 위한 박성진
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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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 박성진 시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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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의 두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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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타국의 전쟁,
스무 살 종군기자 홍중기 청년
베트남,
쏟아지는 여름비 속에서
총성은 천둥처럼 번져 갔다.
스무 살 청년 홍중기,
그는 총 대신 카메라를 쥐었다.
앙상한 야자수 가지 너머
연기 속에서 달아나는 소년,
벌집처럼 구멍 난 지붕 아래
울부짖는 아낙의 품 안에서
젖먹이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그는 기록했다.
필름마다 전쟁의 심장이 뛰었다.
눈을 감으면
한국의 산하가 떠올랐다.
6·25의 흔적이 남은 고향 뒷산과
잿빛 강가의 겨울 냄새.
“나는 지금 누구의 전쟁을 기록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종군기자 청년의 눈에는
탄피보다 무거운 질문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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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
2부
조국의 목격자, 스물두 살 윤동주
조국은 없었다.
별은 많았으나,
그 별 아래의 땅은 일본의 깃발 아래 있었다.
윤동주,
스물두 살의 청년은
밤마다 스스로를 심문했다.
>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그의 시는 울음이었다.
스스로에게 바친 재판정이었고,
조국을 향한 연서였다.
감옥의 벽에도 별빛은 스며들었으나,
그 별빛은 얼어붙은 심장 위에만 박혔다.
윤동주는 싸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펜 끝은
스스로의 목숨을 겨눈 칼보다 날카로웠다.
그의 청춘은 한 편의 참회의 시학이었고,
조국을 향한 눈물의 서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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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
3부
철조망 위의 만남, 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시간과 공간을 넘어
두 청년은 철조망 위에서 만났다.
한 명은 타국의 전쟁을 목격했고,
한 명은 조국의 부재를 목격했다.
그들은 묻는다.
“나라란 무엇인가?”
홍중기는 답했다.
> “나라는 지켜야 할 생명들의 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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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답했다.
> “나라는 부끄럼 없이 사랑해야 할 하늘이다.”
그 시선이 한 곳에서 겹쳤다.
베트남의 강가에서,
만주와 경성의 하늘에서,
그리고 오늘날 38선의 철조망 위에서.
철조망을 넘어 봄바람이 불어온다.
꽃잎은 넘나들고,
새들은 금을 모른다.
전쟁은 끝나야 한다.
분단은 지워져야 한다.
세계의 청년들이
다시는 총 대신 카메라와 시집을 들어야 한다.
그날,
철조망 위에는 두 청년의 시가 걸리고,
봄날의 평화가 대한민국의 하늘을 다시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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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론
《청년 시인의 시선으로 본 전쟁과 나라의 철학》
이 서사시는 두 청년 시인의 삶을 교차시켜,
전쟁·분단·나라·평화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사유한다.
1. 홍중기 시인의 삶과 전쟁 목격
스무 살 종군기자로 베트남 전쟁을 기록한 홍중기는 타국의 비극을 통해 인류적 전쟁의 부조리를 목격했다.
그의 시선은 외부 관찰자이지만, 동시에 한국전쟁의 기억을 품고 있다.
2. 윤동주 시인의 삶과 조국의 부재
스물두 살 윤동주는 총 한 번 쏘지 않았으나, 내적 전쟁과 시적 참회로 자신의 청춘을 불태웠다.
그의 시정신은 “95%의 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며,
부끄럼 없는 삶,
별빛과 양심,
조국과 세계를 향한 윤리적 시선을 제시한다.
3. 철학적 사유와 자유의 갈망
두 청년의 교차는 곧 **칸트의 ‘영구 평화론’**과 헤겔의 세계정신을 연상시킨다.
한 청년은 전쟁의 현실을 목격했고,
다른 청년은 나라의 부재를 목격했다.
그러나 두 청년이 추구한 최종 목적은 하나였다.
> “나라, 자유, 그리고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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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총평:세계와 청년에게 남기는 문학적 선언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의 회상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우크라이나의 청년,
가자지구의 청년,
분단된 한반도의 청년에게
이 시는 여전히 질문한다.
> “당신에게 나라는 무엇입니까?”
홍중기와 윤동주의 청춘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 있었으나,
결국 세계 전쟁 종식과 대한민국의 통일이라는
동일한 봄날을 향했다.
이 서사시는 분단문학과 세계 평화문학을 잇는 다리이며,
오늘날 청년 시인들에게 남긴다.
> “철조망 위에서도 시는 피어난다.
그리고 그 시가 나라를 깨울 것이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