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어머니의 바늘침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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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바늘침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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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 유숙희 시인**
> 어머니 경대서랍
바늘꽂이엔 항시
두 개의 바늘이 꽂혀있다
하나는 시각적 바늘로서
삼대가 사는 열식구
해진 옷가지 깁고 이어서
여기까지 살아 낸 세월
또 하나의 바늘은
당신님 몸무게 보다
더 무거운 마음의 바늘로
가난한 집안
고부간의 갈등,
쓰리고 아팠던 철부지
형제들의 상처까지도
깁고 싸매어 가난한 영혼
춤추게 하셨지,
유관순의 정신보다
무거웠던
어머니의 바늘 무게
그 모성 그대로
이어받은 내 영혼 소롯이
하나 둘 셋 성심껏
자식의 가슴밭에
심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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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학평론: 바늘이라는 상징의 이중적 미학
유숙희 시인의 시는 ‘바늘’이라는 한국적인 상징을 통해 모성의 육체성과 정신성을 동시에 조명한다. 시적 화자는 ‘바늘침 두 개’로 시작하여, 눈에 보이는 ‘시각적 바늘’과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바늘’로 어머니의 삶을 해석한다.
첫 번째 바늘은 실제로 옷을 깁고 잇는 도구다. 한 집안의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꾸려온 어머니의 노동이자 실존이다. “삼대가 사는 열 식구”라는 구절은, 대가족 중심의 한국 가정 구조와 그 안의 여성 노동의 무게를 상징한다.
두 번째 바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바늘이다. “고부간의 갈등”, “형제들의 상처”라는 현실적 고통을 꿰매는 심리적 봉합의 도구로 기능한다. 이때 어머니는 단순한 가족구성원을 넘어, 정신적 치유자로 등장한다.
여기서 유숙희 시인은 바늘을 한국 고유의 여성적 미학으로 확장한다. 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세월과 상처, 인내와 사랑, 역사를 꿰매는 **심리적·민족적 기호(sig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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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철학적 해석: '바느질'의 존재론과 모성의 윤리
이 시에서 바느질은 ‘깁는다’는 행위를 넘어 존재의 의미를 잇는 윤리적 행위로 그려진다. 철학자 엠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타자 윤리학을 빌리자면, ‘어머니의 바늘’은 타자의 고통에 반응하는 책임 있는 주체의 도구다.
어머니는 자신보다 더 무거운 바늘을 짊어지고, 자기희생적 윤리를 실천한다.
“유관순의 정신보다 무거웠던”이라는 구절은 모성의 무게를 역사의 영웅적 정신과 나란히 둔다. 이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사적인 존재를 넘어, 민족적 차원의 윤리적 상징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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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총평: 한국적인 모성의 은유적 정수
《어머니의 바늘침 두 개》는 한 편의 생활서사시이자, 여성적 세계관의 미학적 표출이다.
바늘은 단지 실을 꿰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상처를 봉합하는 사랑의 매개체다.
어머니는 눈에 보이는 가사노동과 보이지 않는 정서노동을 두 개의 바늘로 수행해 온 존재다.
이 바늘의 미학은 “내 영혼 소롯이 / 하나 둘 셋 성심껏 / 자식의 가슴밭에 심어 가고 있다”는 마지막 구절로 계승된다. 어머니의 삶은 유산처럼 자식의 존재에 이식된다.
결국 이 시는 ‘바늘’을 통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한국 여성의 노동, 윤리, 희생, 사랑의 전체 스펙트럼을 그려낸다. 이는 단순한 회고가 아닌, 문명화되지 않은 삶의 고귀한 윤리성에 대한 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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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자
박성진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한국 고유의 바느질 미학과 모성 윤리의 보석 같은 은유를 꿰어낸 시.”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