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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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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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 박성진 문학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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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의 변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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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학순 시인
동짓달
그믐의 달빛들 위로
차가운 바람들만 하나 가득
생명의 온기는 하나도 없는
비정한 인연들만 하늘을 난다
답답한 마음
갈 길 잃은 발걸음
정오正午의 늪은 끝없는 아우성
벗어날 수 없는 수렁, 그 깊음들 위로
아무도 없는 헐벗은 아침
야누스!
그대가 아니었다면
좌고우면 하는 그대의 얼굴빛마저
그렇게 온밤을 지새웠던 새하얀
눈발
결코, 봄은 찾아오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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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신화적 평론
차학순 시인의 「야누스의 변辯」은 단순한 계절의 시적 묘사를 넘어, 시간의 문턱에 선 인간의 내면을 신화적 상징과 철학적 사유로 엮어낸 시를 탄력 있게 소화시킨 작품이다
첫 연의 ‘동짓달 그믐’은 태양의 기운이 가장 짧아지는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빛이 소멸 직전까지 밀려난 극점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 시공간을 ‘차가운 바람’과
‘비정한 인연’으로 채운다 온기 없는 세계를 마주하는 인간의 고독을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이는 헤겔식 변증법을 찾아가는 ‘부정’의 단계와도 닮아 있다. 생명의 부재와 관계의 단절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침묵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연의 ‘정오正午의 늪’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정오는 하루 중 가장 빛나는 시간이다 시인은 그 빛나는 시간에서
‘늪’과 ‘수렁’으로 형상화하였다.
밝음 속에서도 방향을 잃은 실존, 그것은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의 불안’과 맞닿아 있다. ‘헐벗은 아침’은 새 출발을 기대하는 시간이 아닌가 텅 빈 상태로 맞이해야 하는 운명처럼 말이다.
마지막 연을 자세히 살펴보면
‘야누스’ 고대 로마의 시작과 끝, 과거와 미래를 모두 바라보는 신화 속 야누스가 등장한다 지나간 것을 응시하고, 다른 얼굴이 다가올 것을 주시한다.
야누스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좌고우면 하는 얼굴빛’으로 형상화된 인간의 갈등을 대변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망설임이야말로 혹독한 겨울의 눈발을 견디게 한 힘이었다고 고백한다.
즉, 양면의 시선과 과거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예감이 없다면
‘봄’은 결코 오지 않겠다는 통찰이다.
이 작품은 현대인의 삶에도 깊이 맞닿아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과 결단의 문턱에 서있으며, 빠른 변화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아야 한다. ‘야누스의 변辯’은 그 경계의 시간에서 울리는 자기변호이며, 머뭇거림조차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시인은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계절의 순환을 빌려 인간 실존의 변증법을 드러내었다. 동짓달 끝과
봄의 시작 사이에 우리는 모두 두 얼굴을 지닌 야누스이며, 두 얼굴 속에서 고독과 희망을 동시에 품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