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등 켠 지구---다정 이인애 시인》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세계여행 작가 《비상등 켠 지구---다정 이인애 시인》



비상등 켠 지구 – 홍수

多情 이인애 시인


태양광 열풍에 몸살을 앓는 산하

민둥산 계곡이 토악질을 해댄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터전엔

박제된 시간이 침묵으로 서 있다


진흙으로 미장된 세간살이

너울져 넋이 반쯤 나간 채

삶의 지평을 잃고 마주친

그로기 상태의 얼굴과 얼굴


황소를 삼키고 집채를 삼키고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물의 입

마침내 꿈을 통째로 삼 키우고

헤쳐 나아갈 방향은 안개로 묻혔다


낙과되어 떨어진 농부의 한숨소리

비틀린 시간이 신음하며 내뿜는

자연이 보내오는 신호등은

지금 적색불이 점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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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학평론


이 시 속의 햇빛은 결코 부드러운 손길이 아니다.

들판 위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불길처럼 달궈진 열풍이 산과 들을 덮친다.

마치 뜨겁게 달군 쇳덩이를 가슴에 안은 듯, 산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땀이 흐르고, 살결이 뜨겁고, 나뭇잎은 물기를 잃은 채 바스러진다.


민둥산의 계곡은 끝내 참지 못하고 흙을 토해낸다.

탁해진 물이 나무를 끌고 내려오고, 부서진 가지들이 함께 구른다.

쓰나미가 한 차례 지나간 자리, 모든 것이 멈춰 있다.

시간은 얼어붙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물과 사람들은 박제처럼 굳어 있다.


하이데거는 “거주가 곧 존재”라 했다.

하지만 이곳의 거주는 더 이상 ‘삶을 가꾸는 집’이 아니다.

그저 버티는 자리, 잠시 몸을 의탁한 피난처일 뿐이다.

벽은 젖어 무너지고, 마당은 사라지고, 문턱은 보이지 않는다.

진흙 속에 묻힌 세간살이에는 웃음소리와 아이 울음, 밥 짓던 냄새가 함께 갇혀 있다.

마주 선 얼굴들의 눈빛은 길을 잃은 나침반처럼 허공에서 방황한다.


물은 차별하지 않는다.

황소를 삼키고, 집채를 삼키고, 마침내 사람의 꿈까지 삼킨다.

그 무차별성 앞에서 우리는 작고 무력하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생각을 멈춘 인간”이 바로 이런 순간 탄생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잠시 멈추어야 하지만,

멈추는 대신 생각마저 내려놓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

재난은 물이 닿는 경계만 허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사고와 관계, 기억과 계획마저 함께 휩쓸어간다.


과수원엔 낙과가 흩어져 있다.

농부는 그 앞에 서서, 말없이 숨을 내쉰다.

그 숨결은 길게 뻗어 나가고, 낮게 깔리며, 사라진 계절의 냄새를 품는다.

시간은 비틀려, 과거와 미래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한가운데서 붉은 신호등이 깜빡인다.

멈추라는 경고다.

그 불빛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시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를 붙잡아 세운다.


이 장면은 북극의 빙하 위기가 아니다.

사진 속에서 본 머나먼 환경 다큐의 한 장면도 아니다.

우리 집 담 너머, 마을의 개울, 혹은 발밑의 땅에서 곧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이 시가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경고는,

“재난은 언제나 먼 곳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숨을 고르라고 한다.

그리고 생각을 되살리라고 한다.

그 선택이, 다음 세대가 바라볼 하늘의 빛깔과 강의 흐름, 숲의 향기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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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철학가의 메시지와 환경의 경고


하이데거는 말했다.

“인간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거주는 자연과의 평화를 전제로 서 있지 않다.

그 터전은 이미 침수와 붕괴의 경계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

집이 무너지면, 그 안에 깃든 존재도 함께 사라진다.


한나 아렌트는 경고했다.

“생각을 멈춘 순간, 악은 일상에 스며든다.”

환경 파괴 앞에서의 무관심은 단지 강과 숲을 잃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과 연대, 그리고 삶의 의미를 잃는 일이다.


비상등은 이미 켜졌다.

그 불빛이 꺼지기 전에, 우리는 멈추지 말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그 생각과 행동이 오늘의 숨을 지키고, 내일의 하늘을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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