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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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된 노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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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지명 박성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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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학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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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된 노가리
이효
장엄한 일출을 숯불에 굽는다
벌겋게 익어버린 노을
질긴 바다를 굽고 또 굽는다
쪼그라든 몸통, 가시는 슬픔의 무게를 던다
머리는 어디로 갔을까?
짭짤한 맛, 고단한 날들의 바람
바다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식탁에 놓인 고뇌의 모서리
씹힐 때마다 걸리는 가시
거친 세상에서 시간을 견디는
휘우듬한 등은 일어서지 못한다
실핏줄도 막혀버린 어제와 오늘
수심 깊은 시퍼름이 울컥 올라온다
바다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출렁이는 꼬리가 잘린 것
부드럽게 짓이긴 속살
누군가의 입에서 상냥한 저녁이 된다
허공을 움켜잡은 바다의 조각들
수상한 부처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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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1. 바다의 첫 장면 – 생과 탄생
아침 수평선 위로 붉은 해가 솟는다. 시인은 그 장엄한 순간을 ‘숯불에 굽는다’는 역설로 전환한다. 일출은 생명의 시작이지만, 불 위에 올려지는 순간은 이미 다른 길로 향하는 출발이다. 노가리는 여전히 바다의 냄새를 품고 있지만, 다시는 물결을 볼 수 없다.
2. 불 앞에서 – 변형의 시간
‘질긴 바다를 굽고 또 굽는다.’ 불은 파도보다 뜨겁다. 그 뜨거움 속에서 몸통은 쪼그라들고, 가시는 단순한 뼈가 아닌 기억의 무게로 남는다. 풍랑과 사투, 햇볕과 소금기 — 바다에서의 모든 날들이 뼛속에 새겨져 있다.
3. 식탁 위 – 고정된 운명
머리는 사라졌다. 시인은 묻는다. “어디로 갔을까?” 머리는 생명의 중심이자 사유의 자리다. 이제 그는 ‘바다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 식탁에 놓인 고뇌의 모서리’로만 남았다. 삶의 바다는 멈추었고, 인간이 만든 네모난 공간에 갇혔다.
4. 씹히는 순간 – 견디는 시간
가시는 여전히 입속에서 걸린다. 이는 단순한 식감이 아니라, 세상살이의 마디와 상처다. ‘휘우듬한 등’은 평생 허리를 숙인 노동자의 모습이고, ‘수심 깊은 시퍼름’은 눌러온 슬픔의 색이다.
5. 해탈 – 부처의 얼굴
꼬리가 잘려도, 속살이 부드럽게 으깨져도, 그는 누군가의 저녁이 된다. 더 이상 바다를 차지하려 하지 않고, 파도를 헤치려 하지 않는다. 남은 건 고요와 미소다. 그것이 시인이 말한 ‘수상한 부처’다. 소멸의 끝에서 도달한 해탈, 받아들임, 그리고 놓아버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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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총평
이 시는 한 마리 생선이 바다에서 부처로 변해가는 짧은 다큐멘터리 같다.
바다는 태생, 불은 시련, 식탁은 정착, 그리고 부처는 해탈이다.
시인은 단순한 음식의 묘사를 넘어, 존재의 변형과 초월의 여정을 그려냈다.
읽고 나면, 각자의 삶 속에도 이 노가리와 닮은 순간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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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 시인 프로필
신문예등단 미네르바(재)
인사동시인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 PEN한국본부 회원
제24회 황진이문학상 본상
제1회 서울시민문학상
제5회 아태문학상 수상
제1회 단태문학상 본상
시집: 「당신의 숨 한 번」, 「장미는 고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