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쇼팽 녹턴 즉흥환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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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녹턴 즉흥환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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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다니엘
트리포 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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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박성진의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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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의 밤, 트리포노프의 숨결
쇼팽의 녹턴과 즉흥환상곡은 표면의 낭만을 넘어서 있다. 망명자의 고독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 19세기 폴란드의 차가운 공기까지 담겨 있다. 음표 하나, 쉼 하나마다 쇼팽이 살아온 세월이 스며 있다.
다니엘 트리포노프는 이 음악을 악보 속에서 꺼내, 자기 숨으로 다시 살려낸다. 무대 위에서 그는 건반을 두드리는 연주자가 아니라, 작곡가의 마음속을 직접 걸어 다니는 사람 같다. 기교는 번쩍이지만 과시로 흐르지 않고, 한 음 한 음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 자리를 잡는다. 빠른 패시지에서는 번개처럼 날카롭고, 느린 선율에서는 먼지를 털어낸 오래된 편지처럼 시간의 냄새가 난다.
그가 치는 즉흥환상곡은 흥분과 절제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는다. 오른손은 폭포처럼 쏟아지고, 왼손은 깊고 차분한 지하수처럼 흐른다. 감정이 터지는 순간에도 흐름은 무너지지 않는다. 음악이 가야 할 길을 끝까지 지켜낸다.
녹턴에서는 한층 내밀한 목소리가 나온다. 건반 위에서 손끝은 숨을 고르고, 페달은 안개처럼 음을 감싼다. 선율은 마치 사람의 호흡처럼 이어지며, 그 속에서 쇼팽과 트리포노프가 같은 방에 앉아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듯하다.
트리포노프는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평단은 그를 ‘괴물 같은 기교와 빛나는 음색을 모두 가진 연주자’라 부르고, 동료들은 ‘영혼이 살아 있는 손끝’이라 말한다. 러시아 전통의 힘과 서정, 그리고 서사를 하나로 엮어 현대 무대에 올리는 그의 방식은 독보적이다.
그날 밤, 피아노는 악기가 아니었다. 트리포노프 자신이 피아노가 되었고, 쇼팽의 영혼이 그의 몸을 빌려 무대에 섰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객석은 숨을 고르지 못했다. 음악이 멈췄지만 울림은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