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파진산에 올라》
■
〈파진산에 올라〉
■
浩潤 차학순
흩어진
옷고름 다시 고쳐 댕겨 맨 후
들마루 나서서 나루터까지
이미 흥건히 맺혀버린 핏빛 저고리
그 위로 진한 슬픔의 풍상이 날춤을 춘다.
삐거덕삐거덕
노 젓는 뱃사공은 알 수 있을까?
파진산 숨겨진 깊은 울음을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그 길의 장도를!
힘없이 걷는 백제 병사들 하얀 눈동자에 고인 진한 눈물들
패배자 넋두리 같은 그 속으로는 가슴 시린 한숨만 흐를 뿐이다.
누가
승리는 아름답다고 했는가?
그리고 또 쓰라린 패배와 뼈아픈 눈물?
이기는 자가 있다면 지는 백성도 있는 법
이제 결코 사비로 들어갈 수 없는 몸
하여, 작은 나룻배 타고 조용히 세도 가는 길
새하얀 날갯짓 백로는 정녕 알리라.
무명 흰옷 입은 백제 장졸의 속 깊은 마음을!
하늘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어찌 영원히 잊을 수 있으려나!
---
평론:아렌트와 패배자의 기억
한나 아렌트는 역사를 읽을 때, 승리의 기록보다 망각된 목소리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숨겨진 욕망과 사회적 병폐도 지적하였다 시민혁명(한국의 촛불 시민혁명)등을 예로 들었다 어두운 시대의 희망과 불빛을 찾는 아렌트이다
인류의 회복성을 차학순 시인의
〈파진산에 올라>는 바로 그 목소리를 불러오는 것이다
첫머리의 “옷고름 다시 고쳐 맨 후” 는 결연한 각오의 몸짓 같지만,
곧 “핏빛 저고리”가 처절하게 드러난다.
승전의 미학이 아닌 것이다
패배의 상흔을 전한다.
아렌트가 말했듯이 인간의 진실은 화려한 기념비가 아니라 피와 눈물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둘째 연의 “삐거덕삐거덕” 소리는 단순한 노 젓는 소리가 아니라 운명의 리듬이다. 뱃사공의 손길 아래, 패망한 병사들의 울음이 강물에 실려 말없이 흐른다. 그들의 눈빛은 한 개인의 절망이 아니라, 시대 전체가 함께 짊어진 상흔이다.
셋째 연에서 시인은 묻는다. “누가 승리는 아름답다고 했는가?” 역사는 늘 승자의 언어로 쓰여 왔지만, 시인은 여기서 패배자의 이름을 되살리고 있다
이는 아렌트가 경고한 ‘사유하지 않는 태도’에 대한 저항과 맞닿아 있다. 역사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패배 자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에서 흰 날갯짓의 백로는 기억의 상징으로 떠오른다. 흰옷 입은 백제 장졸과 겹쳐지며, 인간이 기억하지 못하여도
자연은 잊지 않는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렌트의 말처럼, 인간의 과제는 망각에 맞서는 것이다. 이 시에서 백로의 날갯짓은 바로 그 저항의 표지판이다
〈파진산에 올라>는 승자의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이름 없는 패배자의 눈물과 한숨을 품은 윤리적 증언의 시이며, 동시에 망각을 거부하는 철학적 목소리며
정치의 회복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시인은 무명 흰옷 입은 백제의 장졸을 표현하며 인간의 진실은 화려한 기념비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관과 아픔, 패망의 원인까지 파진산에 올라서서 역사의 대서사시 눈물과 아픔의 서사시를 통렬하는 마음으로
《파진산에 올라》
시인은 이 시를 기록하였다
박성진 칼럼니스트
문화, 문학평론가
차학순 시인님께
헌사 시
아! 백제는
황산벌에서
쓰러져 가고
사비성은 끝내
불길에
삼켜졌다
아! 파진산아
너의 품에
의자왕이
안겼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