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자 시인의 모름지기 내 사랑은》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화,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모름지기 내 사랑은〉


변희자 시인 시


너무 뜨거운 것도

그렇다고 차가운 것도 견딜 수 없어


택하노니

내 사랑은 모름지기


아찔하도록

심장을 태울지라도 불꽃 심지를 돋우어 피워내리



---


평론》

디테일한 사유로 읽는 사랑의 미학


서두》

사랑의 ‘온도’라는 문제


변희자 시인의 〈모름지기 내 사랑은〉은 사랑의 본질을 ‘온도’라는 감각적 은유로 설정한다.

시인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극단을 거부한다. 뜨거움은 곧 타버림의 위험을, 차가움은 무관심과 소멸을 상징한다.

이 두 극단은 모두 ‘사랑의 지속’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시인은 이 양극을 모두 거부하면서, 그 사이에서 자기만의 온도를 택하려 한다. 이는 단순히 중용(中庸)의 태도가 아니라, ‘내 사랑의 방식’을 선언하는 주체적 선택이다.


<“택하노니” 사랑의 결단>


“택하노니”라는 단어는 고전적 문어체의 울림을 지닌다.

이 단어 하나로 시의 화자는 사랑을 수동적으로 맞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사랑은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결단의 행위라는 사유가 드러난다. 이는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태도로서의 사랑을 보여준다.


<“아찔하도록 심장을 태울지라도” 위험을 무릅쓴 사랑>


이 구절은 사랑의 본질적 속성을 직시한다.

사랑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심장을 태운다는 표현은 사랑이 단순한 감정의 따스함을 넘어, 자기를 소진시키는 강렬한 에너지임을 드러낸다.

시인은 사랑의 위험을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고 감내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찔하도록’이라는 부사이다. 사랑은 이성과 감각을 흔드는 현기증의 상태를 동반하지만, 시인은 그 현기증조차 사랑의 본질로 끌어안는다.


< “불꽃 심지를 돋우어 피워내리” 창조적 사랑>


사랑은 단순히 타는 불꽃이 아니다

심지를 ‘돋우어’ 불꽃을 키우는 창조적 행위로 묘사된다. 이는 사랑을 소진적 파괴가 아니라 생성적 창조로 전환시키는 표현이다.

불꽃은 타오름과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지만, 심지를 돋우는 행위는 불꽃을 지속시키려는 노력이다.

시인은 사랑을 순간의 격정이 아니라, 영속적 열정으로 길러내는 의지로 정의한다.


<시적 결론 모름지기 사랑은 ‘태움의 윤리’>


이 짧은 시는 결국 사랑을 **‘태움의 윤리’**로 정의한다.

사랑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무난함에 머물지 않는다.

또한 단순히 파괴적으로 자신을 소진시키지도 않는다.

그것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불꽃을 가꾸듯 조절하고,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태우면서도 창조적으로 키워가는 역동이다.

시인은 사랑을 심미적 감각(온도)

윤리적 결단(택하노니)

존재론적 위험(심장을 태움)

창조적 지속(불꽃 심지를 돋움)이라는 네 층위에서 통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종합적 사유 사랑의 ‘중용’을 넘어서>


표면적으로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간’을 택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시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한 절충이 아니다.

그것은 극단을 초월하여 자기만의 사랑의 길을 여는 창조적 선택이다.

이는 공자의 중용과도 다르고, 단테의 절대적 열정과도 다르다. 변희자의 사랑은 위험을 수용하면서도 불꽃을 관리하는 지혜, 곧 ‘열정과 지속’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두 차원을 동시에 살아내려는 모험이다.



---


마무리 글


〈모름지기 내 사랑은〉은 짧지만 밀도 있는 시다. 시인은 사랑을 단순히 감각이나 감정으로 정의하지 않고, 결단·위험·창조라는 철학적 층위로 끌어올린다. 이 시는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의 사랑은 뜨거움과 차가움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나처럼, 심장을 태우면서도 불꽃을 가꾸는 사랑을 택할 것인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인애 시인의 귀뚜라미 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