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의 비애-김영순 시인 시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김영순 시인 시


이산가족의 비애


아! 아! 일제 치하 벗어나

조국 광복의 기쁨도 잠시


서로 다른 뜻 벼르고 다투고

이념으로 갈라져


부모도 형제도 몰라라

총부리를 겨누었던 동족상잔의 비극


부모 형제 단장의 뼈아픈 날들

죽지 못해 살아낸 세월


가슴에 대못으로 남은 그리움

자식 잃고 애간장 녹인 피눈물


이 타는 가슴을 그 누가 알까

70년을 한결같이 고향 산천 그리워


지척에 삼팔선으로 갈라진 세월

가슴에 피멍으로 삼키지조차 못한 설움


남북한 연락사무소 폭파된 오늘

죽음의 문턱 하루하루 다가오고


통일의 문은 아득히 멀기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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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각에서의 평론>


<‘비애’의 기억 정치학>


이 시는 단순한 개인적 비극을 넘어, 민족 전체가 강제로 떠안아야 했던 기억의 정치학을 드러낸다.

“조국 광복의 기쁨도 잠시”라는 구절은 해방이라는 역사적 환희가 곧장 분단이라는 참극으로 전도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는 해방의 기쁨을 온전히 향유하지 못한 민족사의 상처이며, 분단 자체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해 온 일종의 비극적 기억 체계임을 환기한다.


<이산의 몸, 단절의 몸>


“부모도 형제도 몰라라 / 총부리를 겨누었던 동족상잔”이라는 대목은 분단을 ‘관계의 파괴’로 명명한다. 이산가족은 단순히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단절의 몸을 살아가는 존재다.

그들의 몸은 이동하지 못하고, 편지를 보내지도 못하며, 심지어 꿈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시 속에서 이들의 고통은 ‘단장의 뼈아픈 날들’, ‘죽지 못해 살아낸 세월’로 응축되며, 분단의 정치가 개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삶을 어떻게 구속했는지 보여준다.


<세월의 층위와 ‘영원한 현재’>


“70년을 한결같이”라는 구절은 단순히 긴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70년의 시간은 흐른 시간이 아니라, 멈춘 시간이다. 이산가족의 삶은 과거

(이별의 순간)에 고정되고, 현재

(그리움의 반복)에 갇히며, 미래

(통일의 약속)를 기다리다가 사라진다.

여기서 이산의 고통은 영원한 현재의 굴레로 작동한다.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기억의 무게에 붙들린 채 되풀이된다.


<설움의 전이, 개인에서 민족으로>


“가슴에 피멍으로 삼키지조차 못한 설움”은 단지 가족을 잃은 한 개인의 아픔이 아니다.

이 설움은 공동체적 아픔으로 확장된다. 이산가족의 눈물은 곧 민족적 울음이다.

개인적 기억과 민족사적 기억이 교차하며, 개인의 상처가 국가의 상처와 겹쳐진다.

이 지점에서 시는 이산의 비극을 민족적 윤리 문제로 끌어올린다.


<현대사 속 ‘폭파된 오늘’>


마지막 연의 “남북한 연락사무소 폭파된 오늘”은 과거의 비극을 현재의 정치 현실과 직결시킨다. 분단의 고통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현재형의 비극이다.

시는 이 순간을 통해, 역사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흔드는 정치적 동력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과거의 이산을 추모하는 동시에, 현재의 불화와 불신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현대적 목소리다.


<언어의 절규와 미학>


시의 구조는 반복적 감탄사와 비통한 리듬으로 짜여 있다.

“아! 아!”라는 첫 구절은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언어 이전의 절규다.

이는 이산가족이 겪은 고통이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차원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또한, 짧고 단호한 행 분할은 기억의 파편성과 설움의 숨 가쁨을 그대로 전한다.

이는 미학적 완결성보다 비애의 호흡을 우선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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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글


이 시는 단순히 이산가족의 감정을 노래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적 기억의 정치학, 시간의 정지와 반복, 개인의 아픔에서 민족의 윤리적 과제로 확장되는 이산 서사의 함축판이다.

특히 마지막 연은 과거와 현재, 역사와 정치가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내며, 분단이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형 비극임을 고발한다.

따라서 이 시는 개인의 비애를 넘어선 집단적 증언문학이자, 한국 현대사의 가장 날카로운 상흔을 증거 하는 문학적 증언의 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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