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트엡스키의 '사형장의 아침》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박성진 시인 시


토스트엡스키의

사형장의 아침



도스토옙스키의 심장은 크게 떨었다


하얀 수의가 바람에 떨고

얼어붙은 광장은 침묵의 늪이었다

차가운 총구가 나를 겨누고

사제의 기도는 먼 메아리뿐이다


이제 곧, 끝인가?

눈꺼풀 위로 스치는 겨울 햇살은 따뜻한데

나는 단 5분을 더 살고 싶었다.

푸른 하늘, 마지막 한 조각의 구름,

그조차도 황홀하다.


옆의 청년은 울부짖고

나는 차라리 고요하다.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왔을 때

삶은 얼마나 눈부신가.


아, 살아 있다!

숨 쉬고 있다!

단 한순간,

이 순간조차 영원을 삼킨다.


총탄 장전하는 요란한 금속소리, 그때,

멀리서 달려온 기사의 목소리,

“황제 폐하의 은총이다

사형이 취소되었다.”


나는 이미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

세상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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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형장의 정경 문학의 태동>


도스토옙스키의 삶과 문학은 이 아침의 차가운 풍경에서 출발한다.

얼어붙은 광장, 차가운 총구, 메아리뿐인 기도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당시 제정 러시아의 억압적 공기를 함축한 상징이다.

사형장에 선 젊은 혁명가와 지식인들은 개인적 죄가 아니라, 체제에 대한 사상의 자유를 이유로 처벌받았다. 도스토옙스키 역시 페트라셰프스키 그룹의 일원으로서 사회주의적 사상과 문학적 토론에 참여했을 뿐이지만, 제국의 눈에는 반역자로 보인 것이다.


이 장면이 러시아 문학의 역사에서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서 인간 정신이 한계 상황 속에서 어떤 빛을 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형벌이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죽음과 삶의 경계 위에 선 인간의 실존이 리얼리티 문학의 원천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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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의 의미 존재론적 계시>


시 속의 “나는 단 5분을 더 살고 싶었다”는 구절은 도스토옙스키 문학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그는 실제로 회고에서 “마지막 5분 동안 나는 무한한 삶을 살았다”라고 적었다.

이 시간은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발견이었다.


첫 번째 의미》

삶의 모든 사소한 요소가 죽음 앞에서 절대적 가치로 바뀐다.

햇살 한 조각, 구름 하나조차 우주적 의미를 띠게 된다.


두 번째 의미》

인간은 끝을 의식할 때 비로소 ‘지금’을 절대적으로 살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인물들이 끊임없이 현재의 순간에 몰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세 번째 의미》

이 체험은 죽음 이후 다시 태어난 삶, 즉 문학적 세례를 상징한다.

그는 이미 한 번 죽었고, 따라서 이후의 생은 덤으로 주어진 신성한 시간이었다.



“5분”은 그렇게 세 차례의 층위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짧은 체험을 그의 모든 소설의 주제와 인물 속에서 무한히 확장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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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심리의 극한 울부짖음과 고요>


사형장에 선 다른 청년들은 울부짖었고, 도스토옙스키는 고요했다.

이 대비는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다.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속에서 삶을 재발견하려는 내적 태도를 택했다.

바로 이 이중적 경험 절망과 황홀의 동시성이 그의 문학을 형성했다.


《백치》에서 미시킨 공작은 간질 발작 직전 “순간의 황홀”을 경험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드미트리와 이반은 죽음을 향한 절망과 신앙의 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모두 이 사형장 체험에서 비롯된 내적 극한의 재현이다.

인간은 비극 속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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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의 은총 권력과 연극>


사형 직전, 차르의 은총으로 형이 취소된다.

그러나 그것은 자비가 아니라 권력의 과시였다.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의 냉혹한 게임. 청년들은 이미 죽음을 맛본 뒤, 연극처럼 되살아났다.

이 장면은 잔혹하지만,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새로운 출발의 문이었다.


그는 “나는 이미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기록한다. 이 선언은 단순한 개인적 감격을 넘어, 권력의 폭력조차 역설적으로 인간의 재탄생을 가능하게 했음을 뜻한다.

문학적 아이러니가 바로 여기서 태어난다. 권력의 연극은 대문호의 운명을 활짝 열어젖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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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유형 고통의 신학>


사형장 이후 그는 시베리아 유형으로 보내졌다.

차가운 혹독한 겨울, 범죄자들과의 공존, 노동과 굶주림은 그에게 지옥과 같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성경을 읽었고, 죄수들의 삶을 기록하며 인간 존재의 심연을 관찰했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단순한 체험담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고찰이었다.


그는 유형 속에서 “고통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확실한 교사”임을 깨달았다.

이후 그의 문학은 언제나 고통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탐구하며 나아간다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십자가적 구조’는 바로 이 시절에 뿌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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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의 사형장,

문학적 변주>


도스토옙스키의 사형 체험은 그의 작품 전반에 다양한 모습으로 재현된다.


《죄와 벌》: 라스콜리니코프는 범죄 후 사형의 공포와 맞닿는다.

그의 회개와 구원은 사실상 도스토옙스키 자신의 체험의 문학적 변주다.


《백치》: 미시킨 공작은 사형 직전의 인간 심리를 직접 이야기한다.

여기서 5분의 체험은 철학적 주제로 승화되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반은 신과 인간, 자유와 책임의 문제 속에서 죽음과 삶을 사유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체험은 신학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모든 작품은 결국 그 아침으로 돌아간다. 사형장의 찰나가 문학적 영원의 원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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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실존과 구원>


도스토옙스키는 키에르케고르와 마찬가지로, 실존을 죽음 앞에서 발견했다. 그러나 그가 더 나아간 점은, 절망 속에서도 신과 구원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죽음 직전의 깨달음이 곧 자유의 본질이었다.


후대의 실존주의자들, 니체와 카뮈가 도스토옙스키를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극한의 체험이 인간의 진리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 진리를 문학으로 구체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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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의 의미 대문호의 탄생>


도스토옙스키가 만약 그날 총살당했다면, 세계 문학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사라진 문학사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므로 사형장에서 구원받은 순간은 단순히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세계 문학사의 방향을 바꾼 사건이었다.


“세상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시의 마지막 구절은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다. 도스토옙스키 개인에게도, 러시아 문학에게도, 인류 정신사에게도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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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죽음을 통과한 문학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은 언제나 죽음을 통과한 자의 문학이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서 경험했고, 살아 돌아와 두 번째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독자에게 절실하다.

인간이 고통 속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 죄와 벌 속에서도 구원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이 그 문학의 힘이다.


사형장의 아침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도스토옙스키가 남긴 문학의 심장은 바로 이 질문 위에서 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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