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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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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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를 그리다
알렉산드로스의 꿈을 일깨운
위대한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이데아의 드높은 기치 아래
이상은 하늘 높이 걸어 두고
밝은 진리를 딛고 바로 선 철학
맑은 물처럼 샘솟는 지혜로
도덕과 질서를 바로 세우며
“정치란 최고의 선을 행하는
궁극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며
행복의 가치관을 확립한 학자
관찰과 경험을 통한 산 지식을
배움의 터전에 뿌린 과학의 씨앗
형이상학 형이하학을 통달한
만학의 아버지, 지식인의 표상
세상을 향한 폭넓은 견해로
잠자는 인간의 본성을 깨우며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가
작은 물방울이 큰 바다를 이뤄낸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참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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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평론>
서론
이 시는 단순한 전기적 묘사에서 벗어나, 고대 철학자의 삶과 정신을 인류 보편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노래하는 언어는 시간의 경계를 넘어, 고대 사유가 여전히 오늘을 비추는 거울임을 증명한다.
시적 언어와 철학적 개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자는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를 발견한다.
시는 철학을 추상적 개념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맑은 물’, ‘씨앗’, ‘물방울과 바다’ 같은 감각적 은유로 번역한다. 그리하여 철학은 딱딱한 교리가 아닌, 살아 있는 지혜의 흐름으로 재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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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연의 심화 해석
“알렉산드로스의 꿈을 일깨운”이라는 구절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확장은 무력과 정복의 결과만이 아니라,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와 학문적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그는 제자의 눈에 세계를 바라보는 창을 열어주었고, 제국의 지도력은 철학적 기반 위에서 형성되었다.
“이데아의 드높은 기치 아래 / 이상은 하늘 높이 걸어 두고 / 밝은 진리를 딛고 바로 선 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초월적 세계를 향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현실의 토대 위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초월과 현실, 이상과 경험 사이의 균형을 그는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따라서 시의 첫 연은 단순히 사상적 선언이 아니라, 인간 이성의 이중적 긴장을 품은 역사적 선언문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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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연의 심화 해석
“맑은 물처럼 샘솟는 지혜”는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핵심인 중용의 덕을 상징적으로 함축한다. 정치와 윤리의 목표는 단순한 효율이나 권력 유지가 아니라, ‘최고의 선’, 즉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지향한다.
시는 “정치란 최고의 선을 행하는 궁극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사유를 인용함으로써,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동시에 환기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정치는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공동선을 실현하는 지혜로운 질서의 장치였다. “행복의 가치관을 확립한 학자”라는 구절은 그가 인간과 공동체의 궁극적 목표를 행복에 두었다는 사실을 간결히 드러낸다.
이 부분은 오늘날에도 울림을 준다. 정치가 이익 집단의 대립으로 왜곡될 때, 그의 가르침은 공동체 전체의 행복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다시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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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연의 심화 해석
“관찰과 경험을 통한 산 지식”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방법론을 집약한다.
그는 플라톤처럼 추상적 개념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서 관찰되는 구체적 사실들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생물 분류학, 논리학, 시학 등 그의 폭넓은 업적은 바로 이러한 경험적 관찰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시는 이를 “배움의 터전에 뿌린 과학의 씨앗”이라 노래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단순히 철학자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 과학적 탐구의 뿌리를 제공한 인물임을 환기한다.
이어 “형이상학 형이하학을 통달한 만학의 아버지”라는 구절은 그의 학문적 스펙트럼의 광대함을 드러낸다.
그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동시에 물질적 세계의 원리까지 분석했다.
학문을 세분화하기보다는, 전체를 꿰뚫는 통합적 시각을 견지했다는 점에서 그는 ‘만학의 아버지’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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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연의 심화 해석
마지막 연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인류 보편의 스승으로 형상화한다. “세상을 향한 폭넓은 견해로 / 잠자는 인간의 본성을 깨우며”라는 구절은 그가 인간을 ‘이성적 존재’라 정의한 사유를 직접 반영한다.
인간은 로고스를 통해서만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며, 철학은 바로 이 본성을 깨우는 도구였다.
“작은 물방울이 큰 바다를 이뤄낸”이라는 은유는 그의 개별 연구 성과들이 집대성되어 서양 지성사의 거대한 바다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까지 흘러들어온 학문의 강물이다.
마지막 선언인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참스승”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오늘과 미래로 소환하는 결론이다.
그는 특정 시대의 철학자라기보다, 인류 정신사 전체를 이끄는 길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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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 분석
이 시는 철학적 사유를 문학적 언어로 번역하는 성취를 이룬다. 감각적 이미지는 맑은 물, 씨앗, 물방울과 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대한 학문 세계를 함축적으로 형상화한다. 추상적 개념은 시인의 손에서 구체적 체험으로 변환되며, 독자는 철학을 ‘느끼고 경험하는 언어’로 받아들인다.
또한 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비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플라톤이 이상 세계를 지향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의 경험 속에서 진리를 찾았다.
시인은 이를 “이상을 하늘 높이 걸어 두고 / 밝은 진리를 딛고 바로 선 철학”이라는 구절에 응축시킨다.
현대적 의미 또한 분명하다.
오늘날 정치가 공동선을 잃고 학문이 세분화 속에 파편화될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그의 가르침, 학문이 전체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시야, 인간의 본성을 이성에 둔 그의 정의는 오늘날에도 길잡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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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가치
이 작품은 단순한 전기적 서술을 넘어, 철학의 본질을 시적 상징으로 재구성한 문학적 성취다. “맑은 물”은 그의 사유의 투명성을, “씨앗”은 지식의 근원을, “바다”는 지성사의 집대성을 상징한다.
이 은유들은 단순한 수사적 장식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후대에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 상징이다.
시는 학문을 인간의 삶과 감각 속으로 끌어내리며, 철학을 독자가 ‘체험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놓는다.
이러한 문학적 번역은 철학과 시의 경계를 허무는 시적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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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이 시가 재현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과거에 머문 인물이 아니다. 그는 시대와 문명을 초월하여 오늘도 우리 앞에 선다.
“정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학문은 어떻게 전체와 연결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의 사유는 여전히 답을 요구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살아 있는 참스승이다. 이 시는 그를 단순한 철학자로 축소하지 않고, 인류 지성사의 영원한 길잡이로 소환한다.
철학과 문학이 만나는 이 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사유 속에서 호흡하고 있다
이인애 시인의 계속되는 철학 시의 반전은 계속될 것이다 건필을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