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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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익 시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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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문학 찬가
종묘 제사 둘째 잔 올리는 아헌관,
남의 자리 빌려 앉은 거라 해도
낙엽처럼 타다 사라져도
그 순간만은 하늘이 나를 본다.
연기 속에서 킥킥, 기침 섞인 웃음,
“야, 임시직도 역사를 남기잖아.”
끝나면 뭐, 다시 백수지.
그래도 흩날린 낙엽처럼 흔적은 남는다.
사실문학아, 오래 살아라.
허기진 배, 밥상 위 소주잔,
낙엽 태운 재 속에서
오늘도 불꽃처럼 노래한다.
리얼리즘이 별거냐,
밥그릇 부딪히는 소리,
마누라 성화, 시장통 흥정,
그게 다 시고, 기록이지.
낙엽처럼 쌓여가는 하루,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지.
아헌관의 잔이 잠깐이듯
사람 사는 것도 다 잠깐이다.
높은 자리, 큰돈, 이름 석 자,
결국 다 낙엽처럼 흩날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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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풍자 평론
<아헌관의 자리와 세태의 은유>
시의 첫머리에서 ‘종묘 제사 둘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이라는 이미지는 본디 엄숙한 의례의 세계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 장면을 장중한 권위가 아니라 ‘남의 자리 빌려 앉은 임시직’으로 희화화한다. 권력과 위계의 중심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덧없는 자리, 잠시 맡겨진 배역일 뿐이다.
이는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흔히 목격되는 ‘자리의 허망함’을 비튼 풍자다.
높은 자리에 앉아도 결국은 ‘낙엽처럼 사라지는’ 존재라는 자조가 담겨 있다. 권위는 순간의 연기일 뿐, 인간 존재는 모두 소멸을 향한다는 사실이 냉소적으로 드러난다.
<웃음과 기침 속의 역사>
“야, 임시직도 역사를 남기잖아.”라는 익살스러운 대사는 한국 현대 사회의 불안정한 노동 현실을 조롱처럼 드러낸다.
웃음과 기침이 섞여 나오는 장면은 기쁨과 고통, 희망과 허무가 동시에 얽힌 삶의 단면이다. ‘끝나면 다시 백수’라는 대목은 구조적 모순의 풍경을 날카롭게 찌른다.
그러나 화자는 비극으로 끝내지 않고 ‘낙엽처럼 흔적은 남는다’라 말한다.
즉, 삶이 사라져도 기록은 남고, 그 기록이 곧 사실문학이다. 웃음으로 포장된 자조와 풍자가 결국 리얼리즘 문학의 본질로 귀착되는 것이다.
< 사실문학의 찬가와 밥상의 리얼리즘>
허기진 배, 밥상 위 소주잔, 낙엽 태운 재, 이 세 가지 이미지는 고단한 삶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여기서 화자는 사실문학을 ‘불꽃처럼 노래하는’ 힘으로 찬미한다.
거창한 이념이나 사상보다 삶의 현장이 곧 문학이라는 선언이다. ‘리얼리즘이 별거냐, 밥그릇 부딪히는 소리’라는 구절은 일상의 미시적 사건이 바로 시의 본질임을 드러낸다.
문학이 결코 고상한 학문이 아니라 밥벌이와 다툼, 사랑과 갈등의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을 풍자적 유머로 일깨운다.
<생활의 소리와 기록의 힘>
‘마누라 성화, 시장통 흥정’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일상의 갈등 구조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그게 다 시고 기록이지’라며 문학의 고전적 권위를 무너뜨린다. 세태풍자적 어조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고통과 다툼이 시가 되는 순간, 문학은 더 이상 고상한 취미가 아니라 민중의 역사적 기록이 된다. 사실문학은 바로 이런 생활의 언어, 부엌과 시장의 소리가 만든다.
이는 문학의 민주화를 외치는 풍자적 선언이며, 동시에 기성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덧없는 하루와 세태의 희극성>
낙엽처럼 쌓여가는 하루 속에 웃음과 눈물이 공존한다. ‘아헌관의 잔이 잠깐이듯, 사람 사는 것도 잠깐’이라는 구절은 인생의 무상함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풍자는 허무의 냉소가 아니라 ‘모두가 결국 같아진다’는 평등한 비웃음이다.
높고 낮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모두 결국 ‘낙엽처럼 흩날려 간다’는 결론은 세태 전체를 향한 아이러니의 선언이다.
이 웃픈 풍경은, 한편으로는 자본과 권력의 허상을 꼬집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적 웃음으로 허무를 견뎌내는 힘을 보여준다.
< 세태풍자의 결론과 사실문학의 힘>
전체적으로 이 시는 한국 사회의 권위, 노동, 일상, 부와 명예를 ‘낙엽’이라는 이미지로 꿰뚫는다.
종묘 제사의 의례와 백수의 현실, 임시직의 자조와 리얼리즘의 노래가 교차하며 풍자적 웃음을 만든다.
웃음은 체념이 아니라 기록의 힘이다. 사실문학은 그 기록을 통해 ‘오늘도 불꽃처럼 노래한다’.
이 불꽃은 권위의 허위와 자본의 허망을 조롱하면서도, 삶의 땀방울을 시로 길어 올린다.
결국 이 시는 사실문학이야말로 세태를 가장 정확히 풍자하고 기록하는 장르임을 강렬히 선언하는 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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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문학 찬가"는 엄숙한 제례와 허기진 민중의 밥상을 한 자리에 앉히며, 권위와 생활, 웃음과 허무를 풍자적으로 교차시킨다. 이로써 사실문학은 삶 그 자체가 곧 문학이라는 명제를 가장 서민적인 언어로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