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 정근옥 시인 -섭리와 지혜 삶의 철학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문학박사

정근옥 시인

섭리와 지혜


태양이 지면 그때가 저녁입니다.

결정은 태양이 하듯

인생도 그때를 스스로 정 하지 못합니다.


돈은 가치를 묻지 않고

오직 주인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몸이 지치면 짐이 무겁고,

마음이 지치면 삶이 무겁습니다.


각질은 벗길수록 쌓이고

욕심은 채울수록 커집니다.


댐은 수문을 열어야 물이 흐르고

사람은 마음을 열어야 정이 흐릅니다.


몸은 하나의 심장으로 살지만

마음은 두 심장인 양심으로 삽니다.


친구라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게 아니라

친구라서 이래선 안 되고

저래선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때론 침묵이

말보다 값진 것이 되기도 합니다.


함부로 내뱉은 말은

상대방을 공격하게 되고

다시 나를 공격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 젊은 날이 그리워지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나이를 먹는 동안 소중한 경험을 통해서

연륜과 지혜가 생깁니다.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덕스럽게 익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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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철학적·문학적 해석


<서론>

삶의 교훈시로서의 위상


이 작품은 짧은 문장들로 엮인 산문시이지만, 단순한 교훈의 차원을 넘어 인생의 섭리를 철학적으로 사유하게 한다.

고대의 잠언서(箴言書)나 동서양의 격언집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구체적 비유와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본 평론에서는 삶의 교훈을 각 구절에 철학사적·윤리학적·문학적 맥락에서 분석하며, 그 의미를 확장하여 보았다.


<태양과 시간, 자연 섭리의 상징성>


“태양이 지면 그때가 저녁입니다”라는 시작은 인간의 삶이 자연의 법칙과 함께 간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태양의 운행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즉 섭리를 의미한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바로 이런 불가항력적 시간성에 의해 규정된다.

인생의 주도권을 스스로 쥘 수 없다는 인식은 겸허함을 낳는다.


<한계,

자유와 운명>


“결정은 태양이 하듯 인생도 그때를 스스로 정하지 못합니다.” 이 대목은 인간 자유의 한계를 명시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간의 자유를 외부 조건이 아닌 내적 태도에서 찾았다. 외부 세계는 섭리의 법칙에 지배되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는 개인의 덕성에 달려 있다.

따라서 시는 인간의 자유가 전능이 아니라 제한된 자유임을 깨닫게 한다.


<돈의 속성, 도구적 합리성>


“돈은 가치를 묻지 않고 오직 주인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돈은 가치중립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돈을 ‘교환의 매개’로 보았고, 마르크스는 자본을 인간 소외의 기제로 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돈이 본질적으로 선악을 담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 의지이며, 이는 현대 사회의 윤리적 문제와 직결된다.


<몸과 마음, 이중의 무게>


육체적 피로가 짐을 무겁게 하지만, 마음의 피로는 삶 전체를 무겁게 한다.

이 대비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철학적 진실을 담고 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 했을 때, 생각은 단순한 이성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몸의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 더 근원적이라는 시적 통찰은 심리학적·철학적 깊이를 동시에 지닌다.


<욕망의 역설,

각질과 탐욕>


“각질은 벗길수록 쌓이고 / 욕심은 채울수록 커집니다.” 욕망은 채움으로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채움이 새로운 결핍을 낳는다.

불교의 ‘갈애(渴愛)’ 개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인간은 더 가질수록 더 부족하다고 느끼는 존재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 소비 사회에서 더욱 날카롭게 드러난다.


<댐과 흐름, 마음의 수문>


“댐은 수문을 열어야 물이 흐르고 / 사람은 마음을 열어야 정이 흐릅니다.” 닫힌 댐은 물을 고이게 하고, 때로는 위험을 초래한다.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닫힌 마음은 고립을 낳고, 열린 마음은 관계와 공동체를 풍요롭게 한다.

공자의 ‘인(仁)’ 사상은 바로 이 마음 열림의 철학이다.


<양심의 이중 심장>


"몸은 하나의 심장으로 살지만 / 마음은 두 심장인 양심으로 삽니다."

” 이 구절은 인간 내면의 갈등 구조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욕망과 양심, 본능과 이성은 끊임없이 충돌한다. 칸트의 도덕 철학은 이 두 심장 사이에서 ‘보편적 도덕법칙’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정의 윤리학>


“친구라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게 아니라 / 친구라서 이래선 안 되고 저래선 안 된다.”

이는 우정을 가벼운 방종이 아닌 도덕적 책임으로 바라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완전한 우정’은 선(善)을 추구하는 친구 관계였다.

이 시의 구절은 바로 그 윤리적 차원을 되새기게 한다.


<침묵의 지혜>


“때론 침묵이 말보다 값진 것이 되기도 합니다.

” 침묵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가 닿지 못하는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위대함은 침묵 속에 있다”라고 했고, 동양 선불교 전통에서도 묵언은 깨달음의 길이었다. 침묵은 언어가 할 수 없는 것을 채운다.


<언어의 부메랑>


“함부로 내뱉은 말은 상대방을 공격하게 되고 / 다시 나를 공격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언어는 칼과 같다. 니체는 언어를 권력의 도구로 보았지만, 동시에 그 부메랑적 속성 역시 강조했다. 언어는 타자에게만 상처를 남기지 않고, 결국 자기 존재의 신뢰성을 갉아먹는다.


<노년과 회고, 젊음의 그리움>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 젊은 날이 그리워지고 /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인간은 본능적으로 젊음을 잃은 자리에 아쉬움을 느낀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에 매달리는 것은 퇴행이다.

철학적 노년학은 ‘젊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탐구한다.


<인식의 전환 익어감의 철학>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이라는 전환은 이 시의 핵심이다. 인생의 무게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순간, 노년은 퇴락이 아니라 성숙으로 의미가 전환된다.

이는 스토아 철학의 아타락시아(평정심)와 연결된다.


<연륜과 지혜의 자산>


“나이를 먹는 동안 소중한 경험을 통해서 연륜과 지혜가 생깁니다.

” 나이 듦은 단순한 생물학적 노화가 아니다.

경험의 축적은 지혜의 원천이다.

유교에서 ‘노인’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경험의 열매를 맺는 과정이다.


<늙음이 아닌 익음>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덕스럽게 익어가는 것입니다.

” 시의 결론은 단호하다. 노년은 쇠락이 아니라 ‘익음’이다.

포도주가 시간이 지날수록 숙성되듯, 인간도 경험과 덕을 통해 더 깊어진다.

이 사유는 기독교적 은총론, 불교의 성숙론, 스토아 철학의 평정론 모두와 상응한다.


<윤리적 인간학의 정립>


전체 시는 인간학적 윤리학을 보여준다. 인간은 욕망과 양심, 관계와 침묵, 젊음과 노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그 속에서 섭리를 받아들이고 지혜를 익혀야 한다.

이는 곧 ‘삶의 철학’이다.


<문학적 형식과

철학적 내용>


형식적으로는 산문시, 내용적으로는 철학적 잠언이다.

문학이 철학의 언어와 만날 때, 교훈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감각적 울림을 가진다.


<동양 사상의 반영>


비움(욕심), 흐름(댐), 익어감(노년)은 모두 동양 사상에서 강조하는 덕목이다. 공자의 인(仁), 불교의 공(空)이 각각의 구절과 연결된다.


<서양 사상의 반영>


태양의 섭리(하이데거), 욕망의 증식(불교와 니체의 접점), 우정의 윤리(아리스토텔레스), 침묵의 지혜(파스칼) 등이 서양 철학의 관점에서 교차한다.


<결론>

섭리와 지혜의 삶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인간은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 속에서 마음을 열고, 언어를 절제하며, 나이 듦을 익어감으로 받아들일 때, 섭리와 지혜는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늙는 것이 아니라 익는다.” 이것이 정근옥 시인의 시가 전하는 최종의 철학적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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