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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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인생 ― 박두익 시인의 사실문학적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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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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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문학으로 산 사람>
박두익 시인은 출세와 안락의 길 대신 풍자와 해학, 그리고 사실문학을 선택했다.
그의 삶을 읽어내는 작업은 단순한 전기적 서술이 아니라, 역사와 문학, 사회와 인간이 어떻게 얽히는가를 밝히는 비평적 행위이다. 고등고시 합격이라는 제도권 성공의 문턱에서, 그는 문학적 진실의 길을 택했다. 이는 “정치적 권위의 상징”과 “문학적 진실의 증언”이 교차하는 자리에서만 가능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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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의 길을 거부한 선택>
고등고시 합격은 곧 안정된 관료의 삶을 의미했다. 그러나 박두익은 이 길을 기꺼이 거부했다.
여기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삶은 최고선의 실현이어야 한다”는 명제를 떠올릴 수 있다. 그에게 관료의 길은 ‘최고선’이 아니라, 인간적 진실을 가로막는 관문에 불과했다. 그는 철학적으로 말해, ‘실현된 행복
(eudaimonia)’ 대신 ‘진실을 향한 불행한 자유’를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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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외교논란과 드라마의 무대>
1980년대, 한일 외교의 중심에는 ‘굴욕이냐 실리냐’라는 거대한 담론이 있었다.
박두익은 이 무대에서 ‘주인공’은 아니었으나, 주석처럼 붙은 문장 하나가 오히려 주인공의 대사보다 더 오래 남았다.
그는 권력의 회의장에서 기록된 인물이 아니라, 민중의 기억 속에 살아남은 증언자였다. 문학사적으로 이는 ‘중심의 인물’이 아니라 ‘변방의 발언자’가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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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와 돈, 은유의 언어>
“돈이 나라 지켜주면, 바다 팔아먹고도 부자 되겠네. 바다는 바다여야 바다지, 지갑이 될 순 없지.”
이 말은 단순한 발언이 아니라 시적 은유다. 자연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선언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말한 ‘영원한 님’의 개념처럼, 불가침의 가치를 드러낸다.
여기서 박두익은 정치인이 아닌 시인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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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료에서 시인으로의 전환>
그가 도장 대신 시인의 노트를 들었을 때, 이는 단순한 직업적 전환이 아니었다. 이는 마치 단테가 정치적 추방 이후 《신곡》을 쓰게 된 계기와도 닮아 있다.
관료의 세계가 배척한 자리를, 문학은 새로운 창조의 공간으로 열어젖힌 것이다.
“행정은 사람을 갇히게 하고, 시는 사람을 살린다.
” 이 선언은 곧 사실문학적 미학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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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문학의 자리매김 >
사실문학은 기록에 그치지 않고 증언으로 나아간다. 송기숙이나 황석영이 민중문학의 길을 걸으며 역사적 사실을 문학으로 변용했듯, 박두익 또한 개인의 경험과 민중적 언어를 연결했다. 그에게 사실문학은 ‘기억을 기록하는 문학’이 아니라, ‘민중의 언어로 권력을 비웃는 문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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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의 칼끝, 웃음 속의 비수>
“굴욕 외교는 고개 숙인 밥상머리고, 20억 불은 국민이 갚아야 하는 카드빚이다.”
풍자의 핵심은 ‘짧은 문장이 긴 담론을 무너뜨리는 힘’이다.
이는 조선시대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지닌 비판적 풍자의 계보와 닮아 있다. 박두익은 현대판 ‘풍자의 문인’으로, 짧고 날카로운 언어로 권력의 허위를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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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의 미학, 고통을 견디는 웃음>
그의 해학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이는 “비극적 현실을 견디는 정신적 장치”였다.
웃음 속에서 고통을 버티고, 농담 속에서 사회의 무게를 덜어낸다. 김수영이 “웃음을 잃지 않는 자유”를 강조했듯, 박두익의 해학은 자유의 정신적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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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불편한 동거>
정치인들이 그를 두려워한 이유는 그의 말이 대중의 마음에 ‘즉시 도착’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언어가 긴 논리로만 흐를 때, 그의 풍자는 짧고 직접적인 대중의 감각 언어였다.
권력이 그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문학은 이미 권력의 장막을 넘어 대중 속에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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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과 문학의 연대>
그의 문학은 지식인의 언어가 아니라, 민중의 언어였다. 사실문학은 ‘민중의 삶을 기록하는 방식’이며, 이는 안도현의 시나 황석영의 소설이 지향했던 바와 닮아 있다. 박두익은 문학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웃음과 증언으로 바꾸며, 문학과 민중의 동맹을 이루었다.
< 나이의 무게와 문학적 훈장>
일흔여덟의 나이에 그는 말한다.
“고등고시 합격은 뭐 했나? 결국 평생 글 쓰려고 돌아온 길이 되었네.”
이는 자조와 동시에 자기 운명에 대한 수긍이다.
권력이 주는 훈장을 얻지 못했으나, 문학이 준 훈장은 ‘민중의 웃음’이었다. 이는 공적 상보다 더 오래 남는 정신적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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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의 초상, 진실의 증언자>
그는 스스로를 광대라 불렀다. 광대는 웃음을 팔지만, 동시에 가장 먼저 진실을 외친다.
이는 셰익스피어 희극에서 광대가 왕보다 더 진실한 말을 하던 장면과 닮아 있다. 박두익은 한국 현대사의 ‘문학적 광대’로서, 웃음 속의 증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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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실문학사 속 위치>
한국 문학사에서 사실문학은 종종 기록문학이나 리얼리즘으로만 평가되었다. 그러나 박두익은 그것을 풍자와 해학의 미학으로 확장했다.
그는 관료에서 시인으로의 전환을 통해 사실문학을 정치의 대안 언어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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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박두익의 내적 진실>
외부적으로는 관료와 시인, 정치적 혐의자와 문학적 증언자로 나뉘지만, 그의 내적 진실은 끝내 ‘문학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이는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단독자의 결단”과도 닮아 있다.
사회적 성공을 버리고, 고독한 문학적 진실을 붙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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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문학과 증언의 미학>
그의 작품은 기록이면서 동시에 증언이었다. 기록은 객관성을 담보하려 하지만, 증언은 주관적 진실을 드러낸다. 그는 두 가지를 결합하여, 문학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는 이중의 서사 구조를 창출했다.
이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진실의 정치적 역할”을 문학으로 실현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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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훈장과 후대의 유산>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상이 아니라 문학적 태도다.
권력은 그를 배척했지만, 후대 문학은 그의 풍자와 해학을 기억한다.
이는 곧 “문학이 권력보다 오래 산다”는 진리를 증명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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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드라마틱한 초상, 문학으로 귀결된 생애>
박두익 시인의 인생은 관료와 시인, 혐의자와 증언자, 풍자와 해학의 이중주였다.
그는 자신을 광대라 불렀지만, 그 광대는 한국 현대사의 진실을 웃음 속에 증언한 증언자였다. 역사는 그를 논란의 인물로 남기겠지만, 문학은 그를 사실문학적 광대이자 진실의 첫 목소리로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