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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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대 시인 시
시 원문
세계의 남자들 내비 두고
한국에 머스마들아
남자의 계절 가을이 왔는 디
너는 무엇을 해 볼 겨
아무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고
역시나 너는 너다워 좋아
힘들면 주님 붙들고 늘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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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적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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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마’라는 말의 정서적 울림>
시가 시작되자마자 등장하는 단어가 머스마다.
이 단어는 지역 방언이자 동시에 정서적 표지다. ‘남자’라는 단어가 다소 무겁고 제도적 느낌을 주는 반면, ‘머스마’는 구수하고, 서툴고, 소탈한 인물을 환기한다. 해학적 효과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화자는 세계의 남자들을 두고도 굳이 ‘한국의 머스마’를 부른다.
이는 국제적 경쟁이나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삶 가까운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서민적 남자상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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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남자의 계절, 그리고 해학의 겹의미>
“남자의 계절 가을이 왔는 디”라는 구절은 계절과 남성성을 엮어낸다.
가을은 성숙, 결실, 혹은 새로운 도전의 계절로 읽히지만, 해학적으로 보면 ‘여름 내내 땀만 흘리던 머스마들이 드디어 좀 뽐낼 때가 왔다’는 식의 농담이 숨어 있다.
즉, 가을은 그들에게 허세를 부려도 괜찮은 계절이다. 농작물처럼 자기 삶도 추수하고 싶지만, 사실은 친구들과 모여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올해는 뭐 좀 해봐야지”라고 허풍을 떠는 풍경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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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형식, 꾸짖음과 격려의 혼합>
“너는 무엇을 해 볼 겨”라는 말투는 단순한 물음이 아니다. 여기에는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여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던지는 말이다. 시골 마루 끝에 앉아 슬쩍 뱉는 듯하면서도, 듣는 이는 왠지 가슴이 뜨끔하다.
해학의 힘은 이렇게 말의 이중성에서 나온다.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결국은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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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정신의 농담화>
“아무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구절은 겉으로는 숭고하지만, 해학적으로 보면 머스마다운 허세다. 남들이 다 해본 것을 하긴 싫고, 그렇다고 거창한 것을 당장 할 힘도 없으니, ‘남자니까 뭔가 특별한 걸 해야지!’라는 식의 자기 암시다.
이는 한국 남성들의 특유한 ‘호기롭게 나대는 태도’를 풍자하면서도, 그 안에 진짜 용기를 담고 있다. 해학은 이렇게 허세와 진지함이 겹쳐 있을 때 가장 잘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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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다움의 긍정, 촌스러움의 미학>
“역시나 너는 너다워 좋아”라는 구절은 자기 긍정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너다움’은 세련됨이나 도시적 성공이 아니라, 투박하고 촌스러운 그대로의 모습이다.
해학은 바로 이런 촌스러움 속에서 발생한다. 꾸밈없이 드러내는 서툼, 미숙함, 심지어 어리숙함이 인간의 매력으로 둔갑한다.
시인은 머스마의 서툼을 흠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칭찬한다. 이는 한국적 유머의 본질, 즉 결점까지 안아주고 웃음으로 감싸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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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적 귀결의 해학성>
마지막 연 “힘들면 주님 붙들고 늘어져”는 신앙적 메시지다.
그러나 ‘붙들고 늘어진다’는 표현이 주는 해학적 뉘앙스는 강력하다. 머스마의 기도는 고상한 언어가 아니라, 아이처럼 엉겨 붙는 투박한 간구다.
이는 한국 농촌 신앙의 소박한 정서와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웃음 속에서 신앙의 본질을 드러낸다. 진지한 기도가 아니라, 살기 힘드니 매달리는 몸부림이 바로 머스마다운 신앙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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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글
이 작품은 한국적 해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방언(머스마)으로 불러낸 남자의 정체성, 가을이라는 계절 은유, 허세와 도전의 이중성, 촌스러움 속의 진지함, 마지막으로 신앙에 매달리는 소박함까지
시 전편은 웃음과 교훈이 동시에 살아 있는 구조다.
머스마는 세련된 남자가 아니라, 어딘가 서툴고 허풍 섞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서툼과 허풍이 웃음을 자아내고, 웃음이 다시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이 시는 해학의 웃음을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따뜻하게 수용한다.
결국 이 작품은 촌스러움 속의 철학, 허세 속의 진지함, 웃음 속의 신앙을 담아낸, 한국적 생활 해학시의 전형이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