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 나의 해골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박성진 시인 시


나의 해골


해골은 사랑하는 나의 미래

해골이 되기 전 살아있을 때

나의 잘생긴 나의 머리였어


죽고 나면 재생할 수 없어

아끼지 않을게요

이웃도 행복하게 해 줄게


나의 해골

오늘도 내일도 미소 짓게 할

내 몸이 떠나는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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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골」과 삶과 죽음, 사유의 평론


서론


죽음은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문학과 철학이 끊임없이 성찰해 온 본질적 화두이다.

그러나 많은 시에서 죽음은 대체로 공포와 상실, 허무의 정조로 표현되었다.

반면 이 작품은 죽음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노래한다.

시인은 해골을 “사랑하는 나의 미래”라 명명함으로써, 두려움의 대상이던 해골을 삶의 일부이자 완성으로 긍정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체념이 아닌, 죽음을 삶의 연속선 위에서 받아들이고자 하는 적극적 태도가 깔려 있다.


「나의 해골」은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것을 웃음과 나눔, 존엄으로 바꿔내는 독특한 시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는 죽음을 통해 삶을 다시 발견하고, 인간 존재가 지녀야 할 윤리적 태도를 새롭게 조명하게 한다. 본 평론은 이 시를 삶과 죽음의 연속성, 철학적·종교적 사유, 미학적 전환의 관점에서 상세히 탐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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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첫째,


이 시는 해골을 사랑의 언어로 부른다. “해골은 사랑하는 나의 미래”라는 구절은 죽음을 배척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끌어안는 철학적 선언이다.

해골은 더 이상 낯설고 음울한 타자가 아니라, 삶의 완결이자 나의 미래로 환대된다. 이는 하이데거가 규정한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는 실존 철학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 시인은 바로 그 죽음을 “사랑한다”라고 말하며 실존의 진실을 시적 언어로 표현한다.


둘째,


시인은 죽음을 과거의 나와 연결한다. “해골이 되기 전 살아있을 때 / 나의 잘생긴 나의 머리였어”라는 구절은 인간 존재의 시간적 연속성을 드러낸다.

잘생긴 머리가 시간이 흐른 뒤 해골로 변한다는 인식은 허무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와 미래의 나, 즉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변모의 연속선 위에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죽음은 낯선 타자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변한 모습일 뿐이다.


셋째,


시인은 죽음을 불가역적 사건으로 직시한다.

“죽고 나면 재생할 수 없어”라는 선언은 삶의 단회성과 죽음의 비가역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시인은 허무에 머물지 않는다.

곧바로 “아끼지 않을게요”라는 다짐으로 전환한다.

이는 죽음을 직시했기에 가능한 결단이다. 집착하지 않고, 움켜쥐지 않고, 현재를 기꺼이 누리며 나누겠다는 태도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은 더 충만해지고, 순간은 더 빛난다.


넷째,


시인은 죽음을 공동체와 연결한다. “이웃도 행복하게 해 줄게”라는 다짐은 죽음을 개인적 종말이 아니라 사회적 유산으로 확장하는 대목이다.

인간은 홀로 죽어가지만, 삶의 흔적은 이웃과 공동체 속에 남는다. 죽음을 앞두고도 타인의 행복을 약속하는 시인의 자세는 죽음을 넘어서는 윤리적 울림을 준다.


다섯째,


해골과 미소의 결합은 역설적 미학을 보여준다. “오늘도 내일도 미소 짓게 할”이라는 표현은 해골의 차갑고 무표정한 이미지를 웃음으로 전환한다.

이는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존엄으로 수용하려는 시적 상상력이다. 죽음을 웃음으로 맞는다는 발상은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죽음을 삶의 일부로 포용하는 강력한 선언이다.


여섯째,


마지막 구절 “내 몸이 떠나는 그 순간까지”는 존엄한 퇴장의 선언이다.

시인은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과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는 체념이 아니라 삶의 마무리를 존엄으로 채우려는 의지이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시는 웅변한다.


이 작품은 전통적 죽음관과 뚜렷이 구별된다.

한국 현대시는 죽음을 종종 허무와 비극으로 다뤘으나, 「나의 해골」은 죽음을 사랑과 웃음의 언어로 변환한다. 철학적으로는 하이데거적 존재론, 고대 로마의 “메멘토 모리” 정신과 맞닿아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불교의 무상 사상과 기독교의 부활 신앙을 동시에 연상시킨다.

모든 것은 변하여 결국 뼈로 돌아가지만, 이웃을 향한 사랑과 웃음은 영속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윤동주의 「서시」와 비교하면, 윤동주는 죽음을 앞두고 하늘과 양심 앞에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기도했다. 윤동주는 영혼의 투명성을 강조했다면, 「나의 해골」은 해골이라는 형상을 통해 육체적 종말을 직접 드러낸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죽음을 삶의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충실히 살려는 의지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만난다.


예술사적으로는 서양의 바니타스 회화와 흥미롭게 대비된다. 전통적으로 해골은 허무와 덧없음을 일깨우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 시에서 해골은 허무가 아니라 사랑과 웃음, 종말이 아니라 완성의 상징으로 변모한다.

이는 기존의 문화적 기호를 전복하고, 새로운 미학적 지평을 열어젖히는 창조적 상상력의 힘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가장 큰 울림은 죽음을 사유할 때 삶이 더욱 충만해진다는 사실이다.

해골은 미래의 내가 될 존재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나를 성찰하게 하는 거울이다. 죽음을 미리 받아들이는 순간, 인간은 오히려 더 자유롭게, 더 사랑하며, 더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빛나게 만드는 마지막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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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나의 해골」은 죽음을 두려움과 허무의 상징에서 해방시켜, 사랑과 웃음, 공동체적 나눔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시인은 해골을 “사랑하는 미래”라 선언하며, 죽음을 삶의 일부이자 완성으로 끌어안는다.

그 속에서 삶은 더 깊어지고, 더 충만해지며, 더 윤리적이고 공동체적이다.


이 시는 독자에게 죽음을 긍정하는 새로운 미학을 제시한다.

해골은 음울한 상징이 아니라, 존엄한 퇴장의 이름이며, 삶의 진실을 환히 드러내는 거울이다.

결국 「나의 해골」은 죽음을 통해 삶을 다시금 발견하게 하고, 인간 존재의 존엄과 공동체적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성취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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