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박진우 시인---"꽃이 된 이름"》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꽃이 된 이름


박진우 시인


코스모스를 닮아 목이 긴

우리 누이

흔들리는 꽃의 노래를 담고

사슴처럼 가벼운 몸짓

큰 눈망울 속에 담긴 별빛

사람들은 "이쁜이"라

불렀다


그녀의 웃음에서 피어나는

꽃잎들이

마치 코스모스가 하늘에

닿을 듯

그렇게 하늘 거렸으니

"이쁜이"는 그냥 부르는

이름이 아니었다


코스모스 꽃잎 하나하나가

그녀의 긴 목을 감싸 안을 듯

세상 모든 아름다움이

그녀 안에 모여들지 않았을까


그녀의 웃음 없이 피어나는

코스모스

그 이름 이미 사라진

기억 속에 피어나는 코스모스

"이쁜이 꽃"



이 시는 세상에 없는 ‘누이’를 기억하며, 부재한 존재를 꽃과 이름 속에서 다시 불러내는 애도의 노래다.

박진우 시인은 단순한 개인적 추억을 넘어서, 언어와 기억, 존재와 부재의 철학적 문제를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작품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코스모스라는 가녀린 꽃이 어떻게 인간 생명의 덧없음과 영원성의 이중적 상징으로 변모하는지, 그리고 이름이라는 사소한 호명이 어떻게 존재론적 구원의 열쇠가 되는지를 보게 된다.


<호명으로 시작되는 시적 기도>


첫 연의 “코스모스를 닮아 목이 긴 / 우리 누이”라는 대목은 부재한 존재를 언어로 다시 불러내는 행위다. 하이데거가 말한 바, 인간은 언어 속에 거주한다. 누이는 이미 사라졌지만, 언어 속에서는 다시 현존하게 된다. 이는 기도의 형식과도 닮아 있다. 기도란 부재한 대상(신, 혹은 죽은 이)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의 출발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부재를 현존으로 변환시키는 기도의 호명이다.



<코스모스의 상징성, 덧없음과 영원>


코스모스는 한국적 정서 속에서 가을과 함께 찾아오는 꽃이다.

바람에 흔들리고 쉽게 시드는 모습은 삶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동시에 들판을 끝없이 물들이며 무리 지어 피어나는 특성은 영원을 연상시킨다. 이중적 속성 때문에, 코스모스는 삶과 죽음, 소멸과 영원, 기억과 망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시인은 누이의 긴 목과 몸짓, 웃음을 코스모스에 투영함으로써, 개인적 생애의 찰나를 우주적 질서의 일부로 확장한다.



<“이쁜이”라는 이름의 존재론>


두 번째 연에서 반복되는 “이쁜이”라는 애칭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은 기억을 여는 열쇠이며, 존재 자체의 은유다.

타자의 얼굴은 윤리적 요구를 발산한다. 여기서 얼굴 대신 이름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냥 부르는 이름이 아니었다”는 구절은, 언어가 단순히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적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소환하는 힘임을 드러낸다. 이름은 그 사람의 현존을 불러내는 주문이며, 따라서 ‘이쁜이’는 꽃과 합쳐져 영원한 기호로 남는다.



<웃음과 꽃잎의 환치, 현상학적 해석>


“그녀의 웃음에서 피어나는 꽃잎들”이라는 대목은 현상학적 세계관과 연결된다. 웃음이라는 짧은 현상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만, 타자의 지각 속에서는 흔적으로 남는다. 시인은 그 흔적을 코스모스의 꽃잎으로 치환한다.

이렇게 해서 웃음은 더 이상 일시적 표정이 아니라, 영원히 피어나는 꽃으로 새겨진다. 부재한 존재는 웃음의 기억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하늘 거림 초월적 상상력>


“그렇게 하늘 거렸으니”라는 표현은 누이가 지상적 삶을 넘어 하늘과 닿아 있음을 암시한다. 이 구절은 기독교적 부활의 이미지와 불교적 해탈의 이미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 즉, 인간의 삶은 끝났으나, 그 영혼은 하늘을 향해 거동한다. 코스모스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영혼의 상승을 돕는 매개체로 형상화된다.



<기억과 애도의 변증법>


마지막 연은 “그녀의 웃음 없이 피어나는 코스모스”라는 역설을 통해, 부재의 고통과 기억의 힘을 동시에 드러낸다. 현실에는 웃음이 없지만,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웃음이 꽃을 흔든다. 프로이트의 애도론을 빌리면, 이는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무의식적 장치다. 그러나 이 시에서 애도는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예술적 창조로 승화된다.

시인은 부재를 노래하면서 부재를 초월한다.



<시간의 중첩 과거와 현재의 교차>


이 시 속의 누이는 과거의 인물이지만, 현재형 언어로 호출된다.

과거와 현재는 선형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시적 순간에 교차한다. 리쾨르가 말한 ‘서사적 시간’처럼, 기억은 현재의 해석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이쁜이 꽃”은 단순히 과거의 환상이 아니라, 지금도 피어나는 현재적 경험이다.



<인간과 자연의 합일>


시인은 누이의 몸과 자연의 이미지를 겹쳐 놓는다.

긴 목은 줄기가 되고, 웃음은 꽃잎이 된다.

인간은 자연 속으로 스며들고, 자연은 인간을 기억하게 한다.

이는 동양의 천인합일 사상과 닮아 있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순환의 한 과정이다. 따라서 누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코스모스로, 바람으로, 하늘로 흩어져 여전히 살아 있다.



<언어의 무력과 초월>


언어는 부재한 존재를 완전히 되살릴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무력함 때문에 언어는 더 깊은 흔적을 남긴다. 데리다의 ‘흔적’ 개념처럼, 사라진 존재는 언어 속 흔적으로 남는다. “이쁜이 꽃”이라는 마지막 표현은 그 흔적을 언어로 정착시킨 순간이다.

언어는 무력하면서도 초월적이다.




<애도의 윤리 타자에 대한 책임>


누이를 기억하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적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지속하는 행위다.

타자는 죽음 이후에도 나를 부른다.

시인은 누이를 잊지 않음으로써, 타자와의 관계를 끝내 지속한다. 따라서 이 시는 미학적 작품인 동시에, 윤리적 실천이기도 하다.




<구조와 정서의 리듬>


이 시는 네 연으로 구성되며, 각 연은 점진적으로 정서를 고조시킨다.

첫 연은 묘사, 둘째 연은 이름의 상징성, 셋째 연은 자연과 합일, 마지막 연은 기억과 애도의 정조다. 마치 장송곡이 절정으로 고조되었다가, 마지막에 고요한 울림으로 끝나는 것처럼, 이 시 역시 슬픔을 고요한 축복으로 전환한다.




<한국 서정시의 계보 속 위치>


한국 현대시는 가족의 죽음과 기억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을 낳았다.

김소월의 「초혼」이 절규의 언어였다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부재의 하늘을 응시하는 언어였다. 박진우의 시는 절규 대신 고요한 담담함을 택한다. 꽃과 이름이라는 사소한 기호 속에서 더 큰 울림을 낳는다.

는 한국적 애도의 서정이 지닌 힘을 보여주었다.



<총체적 결론 꽃으로 부활한 이름>


「꽃이 된 이름」은 단순한 개인적 회상의 시가 아니다. 그것은 부재와 존재, 언어와 기억,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응축한 작품이다. 누이는 사라졌지만, 꽃이 되었고, 이름이 되었으며, 언어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시인은 부재의 절망을 언어의 기적을 통해 부활의 노래로 바꾸어 놓는다.

이는 죽음을 노래하면서 동시에 삶을 축복하는, 애도의 한국적 서정시의 한 정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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