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박철언 --온몸 뒤척이게 하는 가을바람》

박성진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박철언 시인 시


가을바람, 온몸 뒤척이게 하는

청민 박철언


찜통더위의 악몽을 뒤집어쓴 온몸에

결마다 불어와 위로하는 바람


더위에 길 잃어 여러 방향에서

갈바람, 소슬바람으로 부는 걸까

해풍 적시고 농작물 어루만지면서

머나먼 길 밤새워 달려온 걸까


원초적 고독과 본능적 방향에

휘돌리게 하는 바람


들판에 곡물이랑 과일 익어가듯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 사랑을 다짐하고

성숙을 기도하게 하는 바람


시(詩)가 되어 불어오는 그 바람에

온몸 뒤척이며

잠 못 이루게 하는 가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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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평론



<더위와 악몽, 그리고 해방의 첫 숨결>


시의 첫머리는 “찜통더위의 악몽”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로 시작한다.

여름의 더위는 단순히 기후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시련의 은유다.

더위 속에서 인간은 육체적 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 혼란, 불면의 고통, 무기력의 악몽을 경험한다. 그 모든 억눌림은 “온몸에 뒤집어쓴” 상태로 표현된다. 그러나 가을바람은 그 무거운 껍질을 벗겨내듯 다가온다.

바람은 단순히 체온을 식혀주는 기능을 넘어, 영혼의 짐을 덜어내는 해방의 기운이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몸의 긴장은 풀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위로가 싹튼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해방을 매개하는 주체임을 깨닫는다. 가을바람은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가 악몽에서 깨어나 새롭게 호흡하는 순간이다.



<다방향적 바람과 방황의 은유>


“여러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갈 길을 잃은 인간 존재의 방황을 닮아 있다. 갈바람은 서늘함을, 소슬바람은 쓸쓸함을, 해풍은 젖음을 준다. 각각의 바람은 저마다의 색채를 띠고 있으나, 이들이 뒤섞여 불어올 때 인간은 방향을 혼란스럽게 느낀다.

이는 삶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수많은 선택의 상황을 상징한다. 어느 길로 가야 옳은가,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의미인가. 바람은 사방으로 흩어지지만, 그 속에서 인간은 자기 길을 묻는다.

흩어짐은 혼란을 낳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바람이 없으면 정체만 있을 뿐이다.

삶은 직선이 아니라, 바람처럼 얽히고 휘돌아가는 곡선의 궤적이다.



<해풍과 농작물, 자연과 노동의 화답>


시인은 “농작물을 어루만지며” 부는 해풍을 노래한다.

이 이미지는 농부의 수고와 자연의 응답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인간은 땀 흘려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흙을 갈아엎는다. 그 노고 위에 바람은 어루만지듯 스며든다.

이는 단순히 흔들리는 장면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호흡이다.

농작물 위로 불어오는 바람은 인간의 노동을 존중하는 자연의 화답이며, 서로를 살리는 공존의 표지다. 여기서 바람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끈이다. 인간이 땅에 씨앗을 심으면, 바람은 그 씨앗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 교섭은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상호 호흡으로 연결한다.



<머나먼 길과 시간의 여정>


“머나먼 길 밤새 달려온” 바람은 시공간을 넘어온 존재로 묘사된다. 바람은 특정한 지점에 머물지 않고, 먼 곳에서부터 달려와 우리를 스친다.

이 장면은 인간의 삶을 은유한다. 인간 역시 태어나 지금까지 머나먼 길을 걸어왔다. 수많은 고개와 강을 넘고,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끝내 오늘의 자리에 도달한다. 바람은 단순한 기류가 아니라, 시간과 역사를 품은 전령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우리는 먼 과거와 지금이 이어지는 연속성을 체험한다.

바람은 흘러간 시간을 기억하게 하고, 동시에 다가올 시간을 예감하게 한다.



<고독과 방향의 긴장>


“원초적 고독과 본능적 방향”이라는 구절은 인간 존재의 내적 조건을 드러낸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존재한다.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결국 혼자다.

그러나 이 고독 속에서도 우리는 방향을 향한 본능을 지닌다.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충동,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갈망은 인간 본성의 일부다. 바람은 이 두 요소를 동시에 흔든다.

고독을 자극하여 인간의 내면을 깊게 만들고, 방향을 일깨워 길 위로 나아가게 한다. 결국 고독과 방향은 상반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두 축이다.



<흔들림의 의미>


바람은 휘돌리며 존재를 흔든다. 흔들림은 불안과 불편을 낳는다. 그러나 이 흔들림은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성장의 계기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릴수록 뿌리를 깊게 내리듯, 인간도 시련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다. 흔들림이 없는 삶은 성장이 없는 삶이다.

바람이 주는 흔들림은 우리를 잠에서 깨우고, 자만에서 벗어나게 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흔들림은 고통스럽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들판과 곡물의 성숙>


들판의 곡물과 과일이 바람을 맞으며 여무는 모습은 자연의 질서를 보여준다. 성숙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햇빛, 비, 바람, 시간이 모두 어우러져야 가능하다. 바람은 그중에서도 균형을 잡아주는 존재다.

곡물이 바람에 흔들릴 때, 그 흔들림이 곡식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성숙은 바람과 같은 시련과 자극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람은 성숙을 돕는 보이지 않는 교사이며, 우리 내면을 단련시키는 훈련자다.



<사랑의 결심>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 사랑”은 바람과 대비된다.

바람은 어디로든 흩날리지만, 인간의 사랑은 집중된다.

사랑은 방황하지 않고, 특정 대상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 사랑도 바람의 흔들림을 피할 수는 없다. 바람은 결심을 흔들고 시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굳건하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이다. 사랑은 흔들림 속에서 증명된다.

바람은 사랑을 시험하는 시련이지만, 동시에 그 결심을 더 단단히 다지는 불가피한 통과의례다.



<성숙을 기도하게 하는 바람>


바람은 인간을 기도의 자리로 이끈다.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성찰의 시간이다. 바람이 불 때 인간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바람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너는 지금 익어가고 있는가, 너는 성숙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기도하듯 고개를 숙인다. 기도는 바람에 응답하는 인간의 방식이다.

결국 바람은 인간을 무릎 꿇게 하고, 그 무릎 꿇음은 다시 성숙으로 이어진다.



<시가 된 바람>


시인은 바람을 “시(詩)가 되어 불어오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는 바람이 언어와 감각의 차원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바람은 단순히 스쳐가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언어로 포착되어 인간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는다.

시인은 바람을 기록함으로써 순간을 영원으로 바꾼다. 독자는 그 언어를 통해 바람을 다시 경험한다.

바람은 자연에서 출발했지만, 시를 통해 예술과 정신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온몸의 뒤척임>


온몸이 뒤척이는 것은 단순한 잠의 불편함이 아니다. 그것은 각성과 변화의 전조다. 바람이 몸을 흔드는 순간, 인간은 일상의 무감각에서 깨어난다. 뒤척임은 불안의 징후이지만 동시에 깨달음의 움직임이다.

몸이 흔들리며 깨어날 때, 영혼도 함께 깨어난다.

바람은 몸과 영혼을 동시에 자극하며, 새로운 사유와 감각으로 이끈다.



<잠을 빼앗는 바람>


가을바람은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불면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새로운 사유의 시간이다.

인간은 불면의 순간에 가장 깊은 생각을 한다. 바람은 우리를 흔들어 잠에서 깨우고, 그 각성 속에서 삶의 의미를 묻게 한다. 잠을 빼앗는 바람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깨달음을 주는 스승이다.



<시인의 응답>


마지막으로, 이 시는 바람에 대한 시인의 응답이다. 시인은 바람을 언어로 옮겨 기록한다. 독자는 그 언어를 통해 다시 바람을 느낀다.

바람은 시를 매개로 하여 자연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인간으로 이어진다.

결국 바람은 단순한 계절의 현상이 아니라, 사랑과 성숙, 깨달음을 전하는 철학적 사건이다. 이 시는 가을바람을 통해 삶의 본질을 묻고, 그 본질에 대한 박철언 시인의 대답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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