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한국의 피카소 ---이생진 선생님께》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추모시


이생진 선생님께

박성진 시인 시


바다의 파도처럼

그대의 시는 끊임없이 밀려와

섬마을 아이들의 눈망울에

첫사랑처럼 맑게 스며들었습니다.


평생 바람에 흔들림 없이

섬과 바다, 외로운 이웃의 언어를

노래하신 목소리,

지금도 파도 위에 살아 있습니다.


그대 떠난 뒤에도

등대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섬 언덕마다 바람에 실려

그대의 숨결이 울려 퍼집니다.


시는 삶보다 길고

사람보다 넓어,

죽음을 넘어 별처럼 빛나는 이름,

이생진 선생님.


우리 가슴마다 남은 파도 소리,

그 안에서 그대는 여전히 살아

바람과 함께 노래하며,

섬과 함께 다시 살아갑니다.



---


<평론>

바다의 시인, 섬의 영혼--- 이생진 선생님을 기리며


<파도의 영원한 울림>


이 추모시는 시작부터 바다의 파도를 불러온다. 파도는 순간의 파열이면서도 끊임없는 연속성을 지닌 존재다.

이생진 선생의 시 또한 그러했다.

바람이 불면 파도는 일어나고, 파도가 일어나면 바다는 대답한다.

그는 일평생 그 파도의 호흡에 귀 기울였다.

그의 시는 단지 종이에 기록된 글자가 아니라, 파도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적셨다.

이 점에서 추모시는 단순히 자연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존재 양식을 드러낸다. 이생진은 파도의 시인이자 파도 그 자체였다.


<섬마을 아이들의 눈망울>


추모시 속 “섬마을 아이들의 눈망울”은 그의 시가 어떤 독자를 향했는지를 상징한다.

그는 거대 담론의 시인이 아니라, 외진 섬의 아이들에게 말을 걸던 시인이었다. 교육과 시가 분리되지 않았고, 삶과 문학이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 첫사랑처럼 맑게 스며든 그의 언어는 순수의 언어, 구원의 언어였다.

바다를 바라보며 시를 쓴 그는, 사실 아이들에게 시를 건네는 스승이었다.

이는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자리다.

그는 섬마을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첫사랑’처럼 남았고, 문학을 인간의 눈망울 속에 심어 놓았다.


<바람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평생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표현은 그의 인격과 문학을 동시에 지칭한다. 그는 세상 풍파에도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다.

고독을 숙명으로 삼고, 외로운 섬들의 언어를 스스로 짊어졌다. 흔들림이 없는 그의 태도는 사실 바람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선 것이다.

그는 바람을 맞으며 꺾이지 않고 서 있었고, 바람을 견디며 더 깊은 노래를 길어 올렸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단단했고, 그의 생애는 일관되었다.

그는 시대의 풍랑 속에서도 스스로의 자리를 잃지 않은 사람, 바람을 받아들이며 한결같은 자리를 지킨 시인이었다.


<섬과 바다의 언어>


이생진 선생의 시는 곧 섬의 언어, 바다의 언어였다.

그는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지 않았다. 그에게 섬은 고립된 삶의 은유였고, 바다는 끝없는 그리움의 공간이었다. 추모시는 이를 다시 일깨운다. “섬과 바다, 외로운 이웃의 언어”는 그의 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었다.

그가 다룬 언어는 도시의 언어가 아니었다. 주변부의 삶, 외진 이들의 목소리였다.

그는 문학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귀 기울였다.

그래서 그의 시는 소외된 이웃을 위로했고, 동시에 바다의 고독을 우리 모두의 고독으로 바꾸었다.


<꺼지지 않는 등대의 불빛>


“그대 떠난 뒤에도 등대는 꺼지지 않았다.” 이 구절은 추모시 전체의 핵심이자, 이생진 문학의 불멸성을 상징한다.

등대는 어둠 속에서 길을 안내하는 불빛이다.

그것은 시인의 문학적 역할을 압축한다. 그는 등대처럼 평생을 비추었고, 떠난 후에도 꺼지지 않았다. 등대는 또한 외로운 존재다.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서 배들을 지키듯, 시인은 고독 속에서 이웃들을 지켰다. 그의 시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의 문학이 앞으로도 계속 항해자들을 이끌 것임을 뜻한다.


<바람 속에서 살아 있는 숨결>


섬 언덕마다 울려 퍼지는 숨결은, 그의 문학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언한다.

그는 죽었으나, 여전히 숨 쉬고 있다. 그 숨결은 바람을 타고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문학은 종이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 숨결로 남는다. 이생진의 시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바람처럼 어디에나 스며든다. 추모시는 바로 그 점을 포착했다.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바람의 호흡으로 존재한다.


<시의 길고 넓은 차원>


“시는 삶보다 길고 사람보다 넓다.” 이 문장은 추모시가 남긴 가장 철학적인 진술이다.

삶은 유한하다. 그러나 시는 죽음을 넘어선다.

시는 개인의 경계를 넘어, 공동체와 인류 전체의 기억 속으로 확장된다. 이생진 선생은 자신의 삶을 바쳤지만, 그의 시는 죽음을 넘어서 우리에게 남았다.

이는 문학의 존재론적 진실이자, 추모시가 드러낸 문학의 영원성이다.


<별처럼 빛나는 이름>


죽음을 넘어 별처럼 빛나는 이름, 그것이 이생진이다.

그는 단지 한 사람의 시인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제 그는 상징이자 별빛이다.

별은 멀리서도 빛나고, 사라진 뒤에도 그 빛이 도착한다. 마찬가지로 그의 문학은 그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빛을 뿌린다. 이름은 곧 별이 되었고, 별은 곧 우리 가슴에 새겨졌다.


<파도의 기억과 공동체의 추억>


우리 가슴마다 남은 파도 소리, 그것은 단순한 자연의 기억이 아니라 공동체의 추억이다. 파도 소리는 모두가 함께 듣는 소리다.

그는 개인의 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시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는 한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바다처럼 모든 이에게 닿는 울림이었다. 추모시는 이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파도의 기억은 곧 문학의 기억이고, 문학의 기억은 곧 사람들의 공동체적 삶의 일부다.


<바람과 노래의 부활>


그 안에서 그대는 여전히 살아 바람과 함께 노래한다.

이는 부활의 이미지다. 시인은 죽었으나, 문학으로 다시 살아났다.

바람은 그의 영혼을 운반하는 매개이고, 노래는 그의 문학이 변형된 또 다른 생명이다. 추모시는 그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선언한다.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다른 삶의 시작이다.


<섬과 함께 다시 살아가는 자>


섬은 이생진 문학의 원형적 공간이다.

그는 섬을 노래하며, 섬을 떠나지 않았다.

추모시는 말한다, “섬과 함께 다시 살아간다.” 이는 시인이 결코 떠난 적이 없음을 보여준다.

섬과 함께 산다는 것은 곧 섬의 영혼으로 남았음을 의미한다.

그의 삶은 섬과 일치했고, 그의 죽음 이후에도 섬은 곧 그의 존재를 간직한다.


<삶과 시의 완전한 합일>


이생진 선생의 문학은 삶과 분리되지 않았다. 추모시는 이를 확인한다.

그의 시는 삶의 반영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

그는 시를 위해 따로 삶을 준비하지 않았다. 삶이 곧 시였고, 시가 곧 삶이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시의 끝이 아니라, 시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가장 철저하게 ‘시처럼 산’ 시인이었다.


<시적 거주의 철학적 의미>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은 세상에 시적으로 거주한다.

이생진 선생은 섬과 바다라는 장소에 시적으로 거주하며, 언어로 그 거주를 기록했다. 추모시는 그의 삶이 곧 ‘시적 거주’였음을 드러낸다.

그는 섬과 바다에서 단순히 생존한 것이 아니라, 시적으로 살았다. 그의 언어는 장소와 인간을 동시에 담아낸 거주의 기록이었다.


<남겨진 자들의 과제>


추모시는 마지막으로 남겨진 이들을 향한다.

등대는 꺼지지 않았다. 숨결은 여전히 바람에 실려 온다.

파도 소리는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이는 우리에게 과제를 던진다.

이제 남은 우리는 그의 길을 이어야 한다.

그의 시는 꺼지지 않는 등대처럼, 우리의 문학과 삶을 이끌어야 한다. 추모는 끝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이다.



《총평》


이 추모시는 단순한 애도의 노래가 아니라, 이생진 문학 전체를 집약한 비평적 기념비다. 파도, 섬, 바람, 등대라는 상징들은 그의 시 세계를 압축하며, 그가 남긴 문학적, 인간적 유산을 증언한다.

시는 삶보다 길고, 사람보다 넓다는 문장은 그의 문학이 왜 불멸인지를 설명한다.

이 추모시는 곧 하나의 평론이며, 동시에 미래 세대를 향한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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