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변희자 시인-해골에 피는 꽃》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해골에 피는 꽃

변희자 시인 시


누구에게나

해골은 언젠가 찾아올 미래

지금 우리는

꽃 향기 머금은 얼굴로 빛난다


죽음이 확실하니

오늘의 미소가 더 선명하다

그 미소는

빛나는 씨앗이 되어

마음의 흙 위에 하나씩 흩뿌려진다


우리가 떠나는 그날까지

이유 없이 꽃을 꺾지 않으면

해골이 된 뒤에도

그 향기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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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의 서론>

죽음을 직시하는 시인의 시선


변희자 시인은 이 짧은 시편 속에 삶과 죽음의 근원적 질문을 농축한다.

해골은 육체의 종착지이며, 인간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운명이다.

그러나 시인은 해골을 단순히 두려움의 기호로 남기지 않는다.

그 위에 꽃을 피워내어, 죽음 속에서도 삶의 향기가 남는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이 역설은 서정시의 미학을 넘어 존재론적 진실에 다가가는 언어적 실천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시는 흔히 허무주의나 슬픔에 갇히기 쉽다.

그러나 〈해골에 피는 꽃〉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이 시는 죽음을 직시하면서도, 그 직시가 현재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한다고 노래한다. 이는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꿰뚫는 근원적 깨달음이다.




<해골과 꽃 대립과 화해의 이미지학>


시의 핵심은 해골과 꽃의 대비다.

해골은 차가움, 소멸, 공허, 죽음을 상징한다.

꽃은 따뜻함, 생명, 향기,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두 이미지는 서로 극단에 놓여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하나의 연속성을 이룬다. 해골은 언젠가 꽃이 되며, 꽃은 결국 해골로 귀결된다.


문학사적으로 해골은 자주 ‘허무’와 ‘죽음’을 상징해 왔다. 서양의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해골, 모래시계, 시든 꽃, 꺼져가는 촛불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것들은 삶의 덧없음을 경고하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러나 변희자의 시는 전통적인 바니타스와 다르다.

단순히 허무를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음 위에서 다시 꽃이 피어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동양 시문학 전통에서도 꽃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한다. 낙화(落花)는 소멸의 은유지만, 동시에 새로운 발아의 전조이기도 하다. 해골 위의 꽃은 바로 이 동양적 무상(無常)의 사유와 연결된다.



<죽음의 확실성과 삶의 선명함>


“죽음이 확실하니 / 오늘의 미소가 더 선명하다.”

이 두 행은 시 전체의 철학을 집약한다.

죽음의 확실성은 인간의 불안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그 불안은 삶의 진정성을 보증한다.

우리가 언젠가 끝날 것을 알기에, 오늘의 순간은 더욱 값지고 또렷하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라 불렀다.

죽음을 회피하는 삶은 불성실하며, 죽음을 직면하는 삶만이 진정성을 갖는다.

변희자의 시는 이 철학적 통찰을 시적 언어로 구현한다. 미소는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죽음을 의식한 존재가 만들어내는 가장 진실한 표정이다.



<씨앗의 은유 존재의 흔적과 확산>


시의 중반부에서 미소는 “빛나는 씨앗”이 된다. 씨앗은 미래의 가능성을 품은 작은 생명이다. 인간이 남긴 미소와 선행, 기억과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흩뿌려져 타인의 마음에 뿌리내린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삶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비전이다.

한 사람의 작은 행위가 씨앗이 되어, 타인의 가슴에 뿌려지고, 세대를 넘어 확산된다.

씨앗의 이미지는 또한 기독교의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이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씨앗이 발아하는 순간이다.



<향기의 지속성 육체를 넘어서는 기억>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향기”를 남긴다.

해골이 된 뒤에도, 향기는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속에 살아남는다. 향기는 물질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코끝과 가슴에 깊이 스며든다. 그것은 곧 기억과 사랑의 은유다.


육체는 해골로 남지만, 인간이 남긴 향기, 곧 미소와 친절, 선한 행위는 타인의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남는다.

이는 플라톤이 말한 영혼의 불멸이나,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과 맞닿는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향기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문학, 예술적 맥락에서 본 시의 의미>


〈해골에 피는 꽃〉은 전통적인 죽음의 이미지와 현대적 감각을 결합한다.


서양 예술사》 바니타스 정물화의 해골은 허무의 상징이었지만, 변희자의 시는 그 허무 위에 꽃을 피워내어 새로운 미학을 창조한다.


동양 시학》 매화, 낙화, 불교 시조 등에서 꽃은 소멸과 재생을 동시에 상징했다. 변희자 시인의 시는 이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한다.


《현대 미학》


시인은 죽음을 절망으로만 보지 않고, 인간의 삶이 타인의 기억 속에서 이어지는 예술적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는 곧 ‘해골 위에 피는 꽃’이라는 독창적 이미지로 구현된다.



<윤리적 메시지 꽃을 꺾지 않는 삶>


“이유 없이 꽃을 꺾지 않으면”이라는 구절은 단순히 자연보호의 당부가 아니다.

그것은 곧 삶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며, 존재를 헛되이 낭비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삶을 성실히 살아내는 자만이, 죽은 뒤에도 향기를 남긴다.


이는 인간 존재의 윤리적 요청이다. 해골은 누구나 맞이할 운명이지만, 그 뒤에 어떤 향기를 남길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시인은 독자에게 “꽃을 꺾지 말라, 오늘의 미소를 흩뿌려라”라고 요청한다.



<언어의 절제와 미학적 긴장>


시의 언어는 단순하고 절제되어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절제 속에 깊은 울림이 깃든다. 해골은 꽃, 죽음은 미소, 씨앗은 향기라는 대비적 이미지들이 짧은 행마다 강렬한 긴장을 만든다. 이 구조는 독자가 시를 넘길 때마다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짧은 시지만, 긴 시보다 더 넓은 사유의 공간을 연다.



《결론의 글》


해골 위에 피는 향기의 영속


〈해골에 피는 꽃〉은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그 위에 삶의 존엄을 피워내는 시다. 해골은 종말이지만, 꽃은 그 종말 위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의미다.

시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오늘을 꽃처럼 빛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의 향기는 해골이 된 뒤에도 남아,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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