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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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님과 딸깍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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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영 시인
건넛산 자드락길 도촌천 물소리 위에
뻐꾹뻐꾹
아하, 홀랑 벗은 정이 찰랑이는 명약 한잔 그리워
화성 황톳길을 털털거리며 달려오는
황교산 딸깍발이 서정 소리꾼
신록의 바람에 멱을 감은 해맑은 영혼
뭉게구름 띄운 파란 하늘을 마시며
투명하게 눈부신 사유가 학춤을 춘다
에라 뒤여 어절씨구 도촌샌님 내드름에
얼쑤 얼쑤 노을에 붉게 젖은 시상의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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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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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딸깍발이와 한국적 정체성
‘딸깍발이’는 단순히 소리꾼의 별칭이 아니다. 그는 농악과 판소리, 굿판과 풍류 속에서 민중과 함께 호흡하던 존재였다.
유럽 문학사에서 트루바두르(troubadour)가 중세 서정의 주역이었다면, 한국에서는 딸깍발이가 처음으로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다.
정순영 시인은 이 고유한 상징을 다시 불러내어, 잊힌 전통과 현대인의 삶을 이어주는 다리로 삼는다. 나아가 윤동주가 시대의 아픔을 진지하게 응시한 ‘비극의 시인’이었다면, 시인 자신은 해학과 흥을 통해 시대를 해방시키는 ‘풍류의 시인’ 임을 은연중에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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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민속의 교차---도촌천과 뻐꾹새의 상
도촌천의 물소리와 뻐꾹새의 울음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민중의 삶을 재현하는 언어다.
물소리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생명의 시간이며, 뻐꾹새는 농경 사회에서 계절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말한 ‘미메시스(모방)’의 기능과 닮았다.
현실의 풍경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하는 정서를 환기한다. 정순영의 시는 이처럼 자연과 민속을 겹쳐 놓아, 개인적 서정을 넘어선 공동체적 무대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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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신명성과 흥--- 술과 명약의 은유>
“홀랑 벗은 정이 찰랑이는 명약 한잔”은 김소월의 애상적 정조와 대조적이다. 김소월의 술은 종종 슬픔의 매개였지만, 정순영에게 술은 치유와 해방의 명약이다.
이는 민중 잔치판에서 술이 노래와 춤을 이끌어내는 역할과 동일하다. 바흐친의 ‘카니발 이론’을 적용하면, 이 술잔은 질서와 규율을 해체하는 웃음과 해학의 시작이다.
언어가 흥에 취한 순간, 시는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집단적 흥겨움의 몸짓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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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의 정체성---시인과 소리꾼의 자화상>
‘황교산 딸깍발이 서정 소리꾼’은 곧 시인의 또 다른 얼굴이다. 딸깍발이는 현실의 제약에 속하지 않고, 노래와 소리로 공동체의 고통과 기쁨을 풀어내는 존재다.
이는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지닌 비극적 고백과 달리, 현실을 풍류로 넘어서는 전략이다.
즉, 정순영은 고통을 숭고로 전환하기보다, 웃음과 흥으로 치유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 현대시는 새로운 방향성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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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자연의 일체감 --- 카타르시스와 청정 사상>
“신록의 바람에 멱을 감은 해맑은 영혼”은 카타르시스의 순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극의 정화처럼, 자연 속에서 영혼은 맑아진다.
동시에 이는 불교의 청정 사상과 맞닿아 있다. 더 나아가 기독교의 ‘회심’과도 연결된다.
즉, 정순영의 시는 특정 종교의 언어를 초월해, 인간 보편의 영적 정화를 담는다. 이는 시가 단순한 미학을 넘어, 영혼의 윤리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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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사유의 춤 -- 학춤과 철학적 초월>
학춤은 한국 전통에서 고결과 자유를 상징한다. 시인은 학춤을 ‘사유의 춤’으로 연결하여, 정신의 초월을 형상화한다. 하늘을 마시는 행위는 사유가 자연과 일체화되는 순간이다. 하이데거의 “시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처럼, 정순영의 시에서 언어는 사유를 거주하게 한다. 하지만 그 사유는 학처럼 날아올라 춤추며, 자유의 미학을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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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판과 시의 합일, 제의와 카니발의 문학성>
“에라 뒤여 어절씨구, 얼쑤 얼쑤”는 굿판의 장단이다.
이는 시가 제의적 현장으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바흐친의 카니발 이론에 따르면, 카니발은 기존 권위와 질서를 뒤엎는 해방의 장이다.
정순영의 시가 마지막에 굿판으로 귀결되는 것은, 문학이 곧 공동체적 해방 의례임을 보여준다.
이때 시인은 단순한 서정 작가가 아니라, 공동체의 무당이자 주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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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과 풍자의 결 – 털털한 몸짓 속의 저항>
딸깍발이가 “털털거리며 달려오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웃음은 단순한 희화가 아니다. 이는 권력과 위엄을 해체하는 풍자다.
민중 예술의 본질은 권위에 대한 웃음이다.
고대 그리스 희극이 권력을 풍자했듯, 한국적 해학은 황톳길의 털털한 몸짓 속에 있다. 정순영은 이 웃음을 통해, 억눌린 현대인의 해방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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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적 의의 흥의 시학 정립>
한국 현대시는 김소월의 애상, 윤동주의 비극, 신동엽의 민족적 저항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정순영은 이와 다른 궤적을 제시한다.
그는 민속적 해학과 흥을 통해 보편성에 도달한다.
이는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 속에서 독창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흥의 시학”이라는 새로운 계보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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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구연성 시와 판소리의 계승>
이 시는 반드시 소리 내어 낭송되어야 한다. 판소리와 탈춤, 굿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다.
“어절씨구, 얼쑤”는 글자가 아니라 몸짓과 장단이다.
이는 시를 문자적 텍스트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구연과 참여의 장으로 확장한다. 독자는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 시는 공연이며, 언어는 살아 있는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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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함의 자유와 순수의 회복>
“홀랑 벗은 정”은 꾸밈없는 순수의 회복을, “학춤 추는 사유”는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이는 칸트의 예술론,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충동과도 연결된다. 정순영은 이 모든 철학적 담론을 한국적 해학과 흥으로 번역한다. 따라서 그의 시는 철학의 번역이자, 민속의 재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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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 특징 긴장의 미학과 숭고의 해학>
정순영의 시는 웃음과 경건함, 흥과 철학이 동시에 공존한다. 이는 긴장의 미학이다.
해학이 숭고와 결합할 때, 한국적 미학은 세계 문학 속에서 고유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시는 웃음을 통해 숭고에 도달하며, 숭고 속에서 다시 흥을 발견한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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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의 의미
「샌님과 딸깍발이」는 오늘날 파편화된 사회에서 공동체적 해방의 길을 제시한다. 우리는 다시 흥을 통해 하나 될 수 있다.
이 시는 전통과 현대, 해학과 철학, 지역성과 세계를 아우르며, 한국 현대시의 미래를 제시한다
<정순영시인 프로필>
정순영 약력
1974년 시전문지 《풀과 별》 추천 완료.
시집: 《사랑》 외 15권 출간.
국제 PEN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한국시학상 등 다수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