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이오동 시인---"송편"》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심산 이오동 시인


송편


그녀는 뜨겁다

말랑말랑한 모습에 취하면

속을 데일지 모른다


솔솔 솔향은 오랜 가문의 향취

속이 알찬 그녀는

너무 알차서 뜨겁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속수무책

그녀 반달의 입김에 빠져든다


윤기 있고 보드랍고 귀한 그녀도

속으로 앙금이 있나 보다

누구나 다문 입을

한 번은 크게 열고 싶을 때가 있듯

속 터지는 사연을 가끔 드러낼 때가 있다

식어서 다시 다물어지지 않을지라도


울분은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우는

강바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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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민속 음식에서 문학으로>


송편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전통과 세대의 기억을 이어주는 상징이다.

시인은

“그녀는 뜨겁다”라는 첫 구절로 송편을 생생하게 현재 속으로 불러낸다.

송편은 명절에만 먹는 특별한 음식이지만, 이 시 안에서는 인간의 삶을 비유하는 시적 화두가 된다.


문학적으로 음식은 자주 상징적 장치로 활용되었다. 서양에서는 빵이 생명과 구원의 표상이 되었듯, 한국에서는 송편이 공동체의 연대와 전통을 드러내는 중심적 기호였다.

이 시는 송편을 여성으로 의인화해, 우리 삶 속에서 전통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철학적으로 보면, 시인은 ‘음식’을 존재의 은유로 바꿔 놓는다. 하이데거가 일상의 사소한 사물에서 존재의 진실을 찾듯, 송편은 더 이상 식탁 위의 한 조각이 아니라 삶의 뜨거움과 상처, 기쁨과 기억을 담은 존재론적 사물이 된다.



<뜨거움의 철학>


“그녀는 뜨겁다.” 뜨거움은 단순히 조리의 상태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드러낸다. 뜨겁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다가가기 위험한 상태이기도 하다.

이 뜨거움은 인간 실존의 은유다. 니체가 강조한 ‘삶은 차갑게 분석되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살아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송편의 뜨거움은 삶의 충만성과 고통을 동시에 상징한다. 뜨거움은 곧 생명의 진실을 드러낸다.

또한 뜨거움은 경계의 체험이다. 겉으로는 말랑하지만, 속은 뜨겁다.

이는 겉과 속, 외양과 본질의 간극을 보여준다. 겉모습에 취해 다가가면 속에서 데일 수 있다는 구절은 삶의 경고이며, 동시에 진실에 다가가는 체험의 긴장을 드러낸다.



<전통과 가문의 기억>


“솔솔 솔향은 오래 가문의 향취.” 송편은 단순히 맛의 대상이 아니라, 가문과 전통을 잇는 기호이다. 솔잎은 단순히 찜을 위한 재료가 아니라, 전통의 향기를 불러일으키는 상징이다.

모리스 알박스의 ‘집단적 기억’ 개념을 적용하면, 송편은 명절마다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만들어내는 기억의 의례다. 솔향은 곧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이며, 전통의 체취다.

철학적으로는 ‘시간의 현전’을 드러낸다.

과거는 추억으로만 머물지 않고, 송편의 향 속에서 지금 이 순간 되살아난다. 이 시는 음식을 매개로 집단적 정체성과 시간을 잇는 상징 구조를 보여준다.



<속의 알참과 존재의 충만>


“속이 알찬 그녀는 너무 알차서 뜨겁기까지 하다.” 송편은 겉모습보다 속이 중요하다.

속이 가득 찬 송편은 곧 충만한 삶을 은유한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충만함이 미래를 여는 힘이라고 했다.

송편의 알찬 속은 단순히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진실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충만은 곧 뜨거움으로 이어진다.

삶이 알차다는 것은 긴장과 고통을 동반한다.

송편의 속이 뜨겁듯, 인간의 내면도 충만하기에 뜨겁다.

이 구절은 충만과 고통, 희망과 긴장이 교차하는 인간 실존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속수무책의 매혹>


“사람들은 속수무책 그녀 반달의 입김에 빠져든다.” 송편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매혹의 대상이다. 반달 모양의 송편은 미적 상징성을 지닌다.

반달은 한국인의 심성 속에서 희망과 기다림, 미완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따라서 송편 앞에서 사람들은 저항할 수 없다.

이는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라, 전통이 지닌 문화적 무게 때문이다.

플라톤의 에로스 개념을 빌리자면, 송편은 단순한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미와 진리를 향한 열정의 대상이다. 송편에 빠져드는 것은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공동체와 전통에 대한 무의식적 귀속을 의미한다.



<윤기와 보드라움의 미학>


“윤기 있고 보드랍고 귀한 그녀.” 송편의 외형 묘사는 단순히 감각적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미학적 성찰을 촉발한다.

칸트는 미를 ‘무목적적 합목적성’이라 했다.

송편의 윤기는 단순히 보기에 좋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의 충만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겉의 매끄러움은 내면의 앙금을 보호하는 껍질이자, 시간을 이겨낸 형태다.

삶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윤기 있고 보드라울 수 있지만, 그 아름다움은 상처와 경험을 통해 다듬어진 결과다.

따라서 송편의 윤기는 삶의 미학적 은유이자, 공동체적 미의 형상이다.



<앙금의 은유>


“속으로 앙금이 있나 보다.” 송편의 앙금은 단순히 팥, 깨, 콩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기억과 상처를 상징한다.

인간은 누구나 겉으로는 말랑하지만, 속에는 앙금을 지니고 산다.

그 앙금은 고통일 수도, 추억일 수도 있다. 송편의 속은 곧 인간의 심연이다.

‘타자의 얼굴’은 타자의 고통을 직면하는 순간 진정한 윤리가 시작된다고 했다. 송편의 앙금은 타자의 고통, 숨은 기억을 상징한다.

겉의 보드라움만 보는 것은 존재의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다.



<입을 여는 순간>


“누구나 다문 입을 한 번은 크게 열고 싶을 때가 있듯.” 송편의 ‘입’은 인간의 고백 충동을 비유한다.

숨겨둔 앙금은 결국 터져 나온다.

이는 진실의 현현이다.

인간은 감추려 하지만, 존재는 결국 드러난다. 송편을 깨물어야 속을 알 듯, 인간도 삶의 체험 속에서 진실을 드러낸다.

이는 실존 철학에서 중요한 순간이다.

감춰진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순간, 삶은 진정성을 갖는다.

따라서 송편의 입을 여는 순간은 곧 인간 존재의 진실이 폭로되는 순간이다.



<속 터지는 사연과 시간성>


“속 터지는 사연을 가끔 드러낼 때가 있다.” 송편이 터지는 모습은 인간 내면의 억눌린 고통이 터져 나오는 순간을 은유한다.

한 번 드러난 사연은 다시 감추기 어렵다. “식어서 다시 다물어지지 않을지라도”라는 구절은 시간의 불가역성을 드러낸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이미 드러난 것은 다시 봉합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는 잠재성을 실현하며 나아갔다.

송편이 터져 내면을 드러내듯, 인간도 자신의 사연을 시간 속에서 드러내고, 그로 인해 변하여간다.



<울분과 침묵의 철학>


“울분은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우는 강바닥이다.”

이 결구는 인간 내면의 고통을 절묘하게 형상화한다.

강바닥은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수많은 퇴적물이 쌓여 있다.

인간의 울분도 그렇다. 겉으로는 침묵하지만, 내면에는 고통이 가득하다.

스토아 철학은 고통 속에서도 내적 평정을 지키는 법을 말했다.

그러나 한국적 정서는 그 평정 속에 ‘한(恨)’을 담는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한과 울분의 깊이를 강바닥의 울음으로 비유하며, 절제된 서정 속에서 깊은 울림을 남긴다.



<공동체적 음식의 보편성>


송편은 개인의 음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음식이다.

명절에 함께 모여 빚고 나누며 먹는 행위는 곧 공동체적 의례다.

이 시는 단순히 개인적 감상을 넘어, 송편을 통해 한국인의 집단적 심성을 드러낸다.

송편은 고백과 상처, 다시 일어서는 강인함을 상징하며,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한다.

음식은 언제나 사회적 코드였다. 송편은 한국 사회에서 연대와 화해, 그리고 집단적 기억을 재생산하는 중심적 상징이다.




<여성적 은유와 모성성>


송편을 ‘그녀’라 부른 것은 단순한 의인화가 아니다. 송편의 반달 모양은 여성의 곡선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모성적 자궁, 생명과 보존의 상징이다.

따라서 송편은 단순히 여성적 이미지가 아니라, 모성성과 생명력의 은유다. 시인은 송편을 통해 전통과 여성, 생명과 공동체를 긴밀히 연결한다.

이는 음식과 여성의 이미지가 단순한 성별 은유를 넘어, 존재의 근원적 생명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적 총평>


"송편"은 단순한 음식의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 이상을 의인화하여 개인, 단체, 예술문화 전반에 걸쳐 아우르는

반달의 뮤지컬, 반달의 미완성의 미적분학을

상징한다. 송편은 음식이지만 은유의 깃발을

높이 들어보면 방대한 소수의 무리로 개혁도

일으킬 수 있는 상상력의 원동력의 소재로

"송편"의 생명력의 은유는 동양을 넘어선 또 하나의 무엇을 위한 결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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