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추모시 평론-페페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추모시 박성진 시인

""페페 무히카 前 우루과이 대통령께""


우루과이의 하늘 아래,

한 시대를 빛낸 이름이 별이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눈물과 박수로 운구마차를 따라

사랑과 존경을 담아 마지막 인사를 올립니다.


삶은 아름다운 여행이며 기적이라던 당신,

그 말은 더 이상 문장이 아니라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증언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급여를 아낌없이 내어주며

가난한 이웃의 빵과 꿈을 지켜주었고,

낡은 비틀 중고차를 몰며 출퇴근하는 당신의 모습은

권력이 특권이 아니라 봉사임을 증명했습니다.


세상은 당신을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렀지만,

실은 누구보다 부유한 영혼,

누구보다 자유로운 인간이었습니다.


“삶에는 가격 라벨이 붙어 있지 않으니,

결코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이 말씀은 신념이자 철학,

민주주의의 가장 숭고한 선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지도자를 떠나보내지만,

우리는 동시에 하나의 시대정신을 계승합니다.

페페 무히카, 당신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더 깊은 시작이며,

역사 속 불멸의 교훈으로 남을 것입니다.


당신의 삶을 축복합니다.

우루과이의 국민과 더불어,

전 세계 양심들이 그대의 이름을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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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 무히카 문화평론


"인간 무히카의 죽음을 기리는 평론"


페페 무히카의 별세는 단순히 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아니라,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한 민주주의와 윤리의 역사적 상징이 꺼지는 사건이었다.

그의 장례식에서 나타난 장면은 그 어떤 독재자의 퇴장과도 달랐다. 국민들은 억지로 동원된 행렬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왔고, 울음과 박수를 동시에 보냈다. 이중의 감정은 무히카의 정치적 삶이 단순한 권력 행사가 아닌 국민적 사랑과 존경 위에 구축되었음을 증명했다. 권력자에게 박수는 흔하지만, 떠나는 순간 눈물과 함께 박수를 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무히카의 리더십이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라틴아메리카의 격동 속 탄생>


1935년에 태어난 무히카는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시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1950~60년대는 쿠바 혁명과 군사 쿠데타, 독재 체제와 신자유주의 실험이 반복된 시기였다.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등 이웃 나라들이 모두 군사 정권의 통제를 경험했고, 우루과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젊은 무히카가 투쟁의 길을 선택한 것은 개인적 모험이 아니라 시대적 요청이었다. 불평등과 독재, 빈곤이 결합된 상황에서 그는 ‘평범한 정치’로는 민중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의 삶은 곧 라틴아메리카 민주화 투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투파마로스와 무장 저항>


무히카는 ‘투파마로스’라 불린 게릴라 조직에 합류했다. 이는 단순한 폭력 집단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기 위해 무기를 들었던 저항 운동이었다.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무장 투쟁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독재 정권은 법과 제도를 무너뜨렸고, 언론과 의회는 침묵하거나 무력했기 때문이다. 무히카는 단순히 총을 든 전사가 아니라, 불평등의 구조적 문제에 저항한 정치적 행위자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체포되었고, 장기간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이자, 후일 정치인으로서의 정신적 토양이 되었다.



<감옥의 세월 고난이 낳은 철학>


14년간의 수감 생활은 인간을 절망으로 몰아넣을 만한 시간이었지만, 무히카는 거꾸로 그 속에서 철학을 길어 올렸다. 어둠 속에서 그는 증오가 아닌 연민을 배웠다. 복수심에 불타는 대신, 인간의 본질을 되묻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감옥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배웠다”라는 그의 고백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정치철학적 성찰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정치란 권력을 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존엄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다. 고난은 그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었다.



<무장 투쟁에서 제도 정치로의 전환>


감옥에서 풀려난 후 무히카는 무기를 내려놓고 제도 정치에 들어섰다.

이는 단순한 노선 변경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의 성숙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무장 투쟁의 경험은 정치적 신뢰를 주지 못했지만, 무히카는 자신이 싸웠던 신념을 민주적 절차 속에 녹여냈다.

그가 속한 정당은 점차 세력을 넓혀 갔고, 결국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다. 이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가 폭력의 시대에서 제도적 협력과 화합의 시대로 넘어가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소박한 삶>

농부 대통령의 상징성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된 무히카는 권력의 화려함을 거부했다.

그는 대통령궁 대신 농가에서 살았다. 아내와 함께 채소를 가꾸며 살았고, 대통령 신분으로도 낡은 폭스바겐 비틀을 몰고 출퇴근했다. 이 모습은 전 세계 언론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검소함의 과시가 아니었다. 그는 국민과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평범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대통령과 국민이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걸어야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그의 철학이 생활 속에서 드러난 것이었다.



<급여 90% 기부자 봉사로서의 정치>


그는 대통령으로서 받는 급여의 90%를 빈민 퇴치 운동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에 기부했다. 정치인이 권력을 통해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그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권력은 나누기 위해 존재한다’는 철학은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단순히 선행이 아니라, 정치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실천이었다. 정치학자들이 교과서에서 언급하는 ‘공동선의 정치’를 실물로 보여준 인물이 바로 무히카였다.



<“가난하지 않았다”는 선언>


세계 언론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렀지만, 그는 담담하게 부정했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 소유가 적을 뿐이며, 욕망이 적을 뿐이다.” 이 선언은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철저한 반박이었다.

그는 가난을 결핍이 아니라 자유로 규정했다.

소유가 적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고, 욕망이 적기 때문에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은 현대 사회의 소비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언어였다.



<유엔 연설 세계를 울린 메시지>


2012년 유엔 총회에서 무히카는 인류의 위기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환경 파괴, 끝없는 탐욕, 소비주의의 확대는 인류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이라 했다.

“우리는 발전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발전한다.” 이 말은 세계적 화두가 되었고, 정치와 경제의 본질을 다시 묻게 했다. 작은 나라 우루과이의 대통령이 세계 정치사에 거대한 메시지를 던진 순간이었다.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의 도덕적 상징>


라틴아메리카는 오랫동안 군사 쿠데타와 부패로 얼룩져 왔다. 그러나 무히카의 존재는 그 암울한 역사에 균열을 냈다. 그는 민주주의가 단순히 제도의 틀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의 생활과 윤리 속에서도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그의 삶은 라틴아메리카 정치사의 도덕적 상징으로 기록될 것이다.



<국민과의 수평적 동행>


무히카는 국민을 피지배자가 아닌 동행자로 보았다. 그의 소박한 언어와 태도는 정치적 연출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이라기보다 이웃으로 대했고, 이는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국민의 관계였다.

정치가 권력의 위계가 아니라 생활의 공유로 자리매김하는 드문 사례였다.




<국제 사회의 존경>


무히카의 소박한 리더십은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유럽과 아시아 언론은 그의 삶을 집중 보도했고, 국제 사회는 그를 새로운 윤리적 지도자의 전형으로 보았다. 특히 청년 세대는 그의 메시지를 열렬히 수용하며, “정치의 교과서”로 불렀다.

작은 나라의 지도자가 세계적 도덕의 표준이 된 것은 정치사에서 드문 일이었다.



<오늘의 정치권에 던진 거울>


무히카의 삶은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불편한 거울이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풍토 속에서, 그는 정치의 본령이 봉사임을 다시 일깨웠다. 이는 한국 사회를 포함한 세계 모든 정치 공동체가 직면해야 할 질문이다. 무히카의 별세는 단순한 애도가 아니라, 지도자의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무히카의 리더십은 존중받아야 할 시대의 흐름으로 우루과이 국민들과 더불어

세계인을 위한 리더십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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