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
해거리
■
多情 이인애
고향집 뒤란에
울 아버지 손때 묻은
늙은 감나무 한 그루
외로이 졸고 서 있다
해마다 가을이 깊어감에
둥근 보름달 같은 홍등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고
힘에 겨워 휘청이더니
그 감나무 지금은
옹이가 가득 박인 채
한 해 두 해, 해가 갈수록
점점 농땡이를 부린다
아마도 아버지가 그리운 걸까
하늘까지 닿을 듯 키만 커간다
*********
가을의 서정 평론
■
<고향집 뒤란의 정서적 배경>
시의 첫 구절은 “고향집 뒤란에”라는 장소의 제시로 시작된다. 이는 단순한 공간적 배경을 넘어서 시인의 정서적 뿌리를 드러내는 장치다. ‘뒤란’이라는 표현은 대문 앞의 화려한 정원이 아니라 집 뒤편의 소박하고 조용한 마당을 의미한다. 삶의 이면, 소박한 일상의 풍경을 보여주는 이 공간은 곧 아버지와의 기억이 새겨진 무대이며, 고향의 체취가 가장 짙게 남아 있는 장소다.
시적 화자는 이 뒤란을 통해 현실과 기억,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소환한다.
■
<아버지의 손때와 노동의 흔적>
감나무는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울 아버지 손때 묻은” 나무다.
이 표현은 노동의 현장을 암시한다. 나무는 아버지의 손길을 통해 심어지고 돌보아졌으며, 그 결과 집안의 풍요와 계절의 기쁨을 제공했다. ‘손때’라는 말속에는 땀과 흙, 그리고 생계와 사랑이 함께 배어 있다. 감나무는 곧 아버지의 생애를 이어받은 상징적 존재이며,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 시인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
<고독한 존재로서의 감나무>
“외로이 졸고 서 있다”는 구절은 나무의 상태를 의인화한다. 감나무는 단순히 땅에 뿌리내린 식물이 아니라, 홀로 서서 졸고 있는 고독한 존재로 묘사된다. 이때의 고독은 인간의 삶과 겹쳐진다.
가족의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부재, 집안의 빈자리, 그리고 세월 속에서 혼자 남은 감나무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시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삶과 죽음의 은유로 확장된다.
■
<풍요로운 가을의 결실과 무게>
“둥근 보름달 같은 홍등”은 감이 가을마다 열리는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둥근달과 붉은 등불은 모두 풍요와 축복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그러나 동시에 그 풍성함은 가지에 무거운 짐이 되어 “힘에 겨워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는 인간 삶의 황혼기에 이루어진 성취와 동시에 찾아오는 무거움을 암시한다.
인생의 열매는 풍요로우나, 그것을 짊어진 몸은 이미 지쳐 있음을 드러낸다.
■
<옹이가 상징하는 세월의 흔적>
세 번째 연에서 “옹이가 가득 박인 채”라는 표현은 나무의 세월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다. 옹이는 나무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이며, 동시에 오래 살아온 증거다.
인간으로 치면 주름과 흉터와 같다. 감나무의 옹이는 고통과 시련을 이겨낸 흔적이자,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강인함의 증거다. 이 장면은 인간 존재가 세월을 견디며 남기는 흔적과 깊은 유비 관계를 맺는다.
■
<해거리의 현상과 생명의 리듬>
시의 제목이자 주제인 ‘해거리’는 감나무가 해마다 결실을 반복하지 않고 한 해 열매를 맺으면 다음 해는 쉬는 자연 현상을 말한다.
이는 곧 자연의 리듬이자 생명의 지혜다. 쉼과 결실은 상호 보완적이며, 무한히 생산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성과를 요구받을 수 없으며 때로는 쉼과 비움이 필요하다.
이 시적 메시지는 현대 사회에 주는 생태적·인문학적 성찰을 함축한다.
■
<농땡이의 해학적 표현>
“농땡이를 부린다”는 구절은 시의 분위기에 소박한 해학을 불어넣는다. 감나무가 게으름을 피우는 듯 묘사된 이 장면은 사실상 자연의 순환을 인간적 언어로 옮겨온 것이다. 시인은 나무의 빈 결실을 탓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섞어 친근하게 표현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한결같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인정이자,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대목이다.
■
<아버지의 부재와 나무의 성장>
마지막 연의 “아마도 아버지가 그리운 걸까”라는 구절은 감나무와 아버지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이어준다.
나무가 하늘로 뻗어가는 것은 단순한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그리움의 형상화로 읽힌다. 아버지를 잃은 집안에서 감나무는 마치 하늘에 있는 아버지를 향해 가지를 뻗는 듯, 키만 커져간다. 자연의 성장과 인간의 감정이 한 지점에서 겹쳐지며, 시는 절제된 울림을 갖는다.
■
<가을의 서정성과 회상의 힘>
가을은 단순히 결실의 계절이 아니라, 인간에게 회상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계절이다. 감나무는 가을마다 열매를 맺으며 동시에 아버지의 손길을 떠올리게 한다. 풍성한 열매는 과거의 기쁨을, 빈 가지는 부재의 허무를 상기시킨다.
이 이중적 정조는 가을 특유의 서정을 이루며, 독자로 하여금 자기 삶의 기억을 환기시키게 한다.
■
<자연과 인간 존재의 순환>
감나무의 해거리는 자연의 순환을 드러내며, 이는 곧 인간 존재의 순환과도 맞닿아 있다. 풍요와 빈곤, 결실과 공허, 젊음과 노년은 모두 서로를 전제로 하며 끊임없이 교차한다.
시는 이 자연적 순환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동양적 자연관과 일맥상통하며, 삶의 무상성과 겸허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
<언어의 소박함과 서정적 힘>
이인애 시인의 언어는 난해하지 않고 소박하다. ‘졸고 서 있다’, ‘휘청이더니’, ‘농땡이’와 같은 표현은 일상어의 맛을 담아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언어들은 서정적 힘을 발휘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 고향의 풍경이나 부모의 손길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시가 가지는 보편적 힘, 즉 개인의 경험을 공동체의 정서로 확장시키는 힘이다.
■
<가을과 노년, 삶의 이중성>
가을은 풍요와 동시에 노년을 상징한다. 감나무의 옹이와 키 큰 모습은 나이 든 아버지의 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단순한 쓸쓸함으로 그리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삶의 무게와 사랑, 그리움을 함께 포착한다.
가을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가장 빛나는 결실을 품는 계절이다. 시는 이 이중성을 통해 인생의 깊이를 보여준다.
■
<삶을 노래하는 가을의 시학>
결국 「해거리」는 가을의 서정을 통해 삶 전체를 노래한다. 아버지의 손때 묻은 감나무는 세월과 상실, 기억과 사랑을 동시에 상징한다. 풍성한 결실과 게으른 휴식, 옹이와 키 큰 성장 모두가 인생의 진실을 드러낸다.
시는 비통이나 울음 대신 소박한 회상과 따뜻한 웃음을 통해, 독자에게 삶을 견디는 지혜와 계절의 의미를 전한다.
이인애 시인의 고향집 뒤란에 감나무!
서정시가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시학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