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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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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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의 문학, 역사적
의미
《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신생활》(1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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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920년대 한국 문학은 3·1 운동 직후의 혼란과 좌절 속에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식민지 조선 사회는 독립의 열망과 현실적 억압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어려웠으며, 문학은 단순히 미적 표현을 넘어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내는 도구가 되어야 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변영로는 역사 속 인물 논개를 소환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기생 논개는, 전통적으로 충절의 표상으로 기억되었다. 변영로는 이 전통적 인물을 근대시의 언어로 재탄생시켜, 시대를 뛰어넘는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논개〉는 단순한 영웅담의 재현을 넘어, 여성적 주체의 결단과 민족의 저항 의지를 함께 드러낸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작품의 문학적 형상화와 역사적 맥락을 세밀히 살펴보고, 나아가 한국 근대시 속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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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별 문학적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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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분노와 불붙는 정열>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분노와 정열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시인은 그것을 종교와 사랑보다 더 높은 차원에 놓는다.
종교는 초월적 가치를, 사랑은 인간적 유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논개의 죽음을 이끈 힘은 그보다 더 강한 것이었다.
이 구절은 논개의 결단을 단순한 사적 행위가 아닌 민족적 의무와 저항 정신으로 격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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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강과 붉은 마음>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 그 물결 위에 /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푸름은 청순함과 지속성을 상징한다.
강물의 흐름과 결합해 역사의 영속성을 드러낸다.
붉음은 피와 희생, 그리고 저항의 열정을 뜻한다.
“그 마음 흘러라”라는 refrain은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후세에 전해져야 할 민족적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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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죽음>
“아리땁던 그 아미 / 높게 흔들리우며 /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 죽음을 입 맞추었네!”
논개의 죽음은 단순히 비극이 아니다.
시인은 그것을 아름답고 숭고한 순간으로 묘사한다.
아미와 입술은 여성적 아름다움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가장 찬란하게 빛난다.
이는 죽음을 통한 완성, 즉 아름다움과 희생의 결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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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의 힘>
2연이 다시 반복된다.
반복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라, 집단적 암송의 구조다.
독자는 이 반복을 통해 논개의 죽음을
개인의 사건이 아닌 공동체적 기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장송곡과 찬가가 겹쳐진 울림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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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과 영원성>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강물은 역사와 민족을 상징한다.
논개의 혼은 강물 위에 흐르며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붉게 각인된다.
순간의 죽음이 민족적 영원성으로 변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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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의 후렴>
마지막
“그 마음 흘러라!”는 절규이자 선언이다.
시는 끝났지만 메시지는 닫히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명령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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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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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의 실존적 배경>
진주성 전투에서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기생. 신분은 낮았으나, 죽음의 순간만큼은 가장 고결한 영웅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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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속의 논개>
조선 후기와 근대 초기까지 논개는 충절과 희생의 상징으로 꾸준히 회자되었다.
<1920년대 소환의 의미> 일제 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논개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민족적 각성의 비유로 작동했다.
<3·1 운동 이후의 좌절과 희망>
독립의 좌절 속에서도, 논개의 결단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다시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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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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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의 성취>
전통적 충절담을 근대적 언어와 상징으로 재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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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상징성>
푸름과 붉음의 대비를 통해 죽음의 숭고성을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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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주체의 부각> 기생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민족사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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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노래화>
반복과 리듬을 통해 시는 개인의 서정을 넘어 공동체적 찬가로 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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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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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주체성의 상징>
논개는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로 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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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저항 정신> 1920년대뿐 아니라 이후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 등에서도 소환 가능한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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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성>
희생과 자유, 죽음을 통한 영원성은 한국적 맥락을 넘어 세계 보편의 주제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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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논개〉는 단순한 추모시가 아니라, 민족정신을 불러내는 선언이자 근대시의 성취였다. 문학적으로는 충절의 이야기를 근대적 상징으로 재구성했고, 역사적으로는 일제의 억압 속에서 저항의 혼을 일깨웠다.
“그 마음 흘러라”라는 refrain은 과거의 노래가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명령이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논개의 붉은 마음은 오늘의 독자에게도 저항의 불꽃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