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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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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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희 시인 시
풀 먹인 이불 소창
빨랫줄에 널면
대바늘은 귀를 씻고
바늘침을 간다
소창이
바람에 나붓거릴 때
풀향 번져가고
촉촉한 소창 가을을 접어
밟고 다듬이질하여,
이불 겉감 모양 살리고
쌔매어, 대바늘 아님,
어림없는 이불 두께 뚫고
추위를 꿰맨다
어머니 품속 같은 푸근함
바늘이 이루어 낸 행복
이불 속에 들어가면 은근한 풀향 속에 밤이 잠든다.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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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이 꿰맨 삶의 온기
<서론>
바늘과 이불, 그리고 어머니의 품 이 시는 바늘이라는 작은 도구를 통해 인간의 삶과 정서를 잇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불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어머니의 손길과 계절의 향기를 머금은 ‘삶의 온기’로 확장된다.
풀 먹인 소창의 냄새와 다듬이질 소리, 그리고 바늘이 지나간 자리마다 남는 바느질의 흔적은 단순한 수공예가 아닌, 삶을 지탱하는 기억과 애정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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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먹인 소창과 바람의 은유
첫 연에서 “풀 먹인 이불 소창”은 순백의 천이 단단히 힘을 얻어 바람결에 나부끼는 장면을 그린다.
이는 단순한 빨래 풍경을 넘어, 인간 삶이 자연과 공존하는 모습을 은유한다.
풀향이 퍼져나가는 장면은 일상의 고단함을 씻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정화 의식처럼 읽힌다. 바람 속의 소창은 ‘삶을 견디는 인간의 영혼’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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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귀, 침의 상징성
“대바늘은 귀를 씻고 바늘침을 간다”는 표현은 의인법이자 상징적 장치다. 바늘이 마치 사람처럼 귀를 씻는다는 이미지는 ‘듣는 태도’를 환기한다.
이는 노동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사물을 세심하게 듣고 느끼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또, ‘침을 간다’는 표현은 바늘이 예리함을 다듬는 행위로, 인간이 삶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마음을 벼리는 자세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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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이질의 리듬과 여성 노동
“밟고 다듬이질하여”라는 구절은 여성의 전통적 가사노동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다듬이질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마치 북소리 같은 리듬을 통해 삶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 시에서 다듬이질은 가사노동의 무거움이 아니라, 공동체와 가정을 유지하는 음악적 행위로 승화된다. 노동은 억압이 아니라 생명과 정성을 잇는 창조적 행위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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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과 추위, 인간적 생존의 조건
“어림없는 이불 두께 뚫고 추위를 꿰맨다”는 구절은 바늘의 본질적 역할을 집약한다.
바늘은 단순히 천을 꿰매는 도구가 아니라, 추위와 고통을 막아내는 방패이다.
바늘이 꿰맨 자리는 삶의 틈을 메우는 자리가 된다. 이는 곧 인간이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돌보며 생존해 온 방식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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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품속의 푸근함
시의 후반부는 노동의 결실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어머니 품속 같은 푸근함”이라는 대목은 이불이 단순히 몸을 덮는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보호를 제공하는 정신적 공간임을 말한다. 바늘은 단순히 천을 꿰맨 것이 아니라, 추억과 애정을 함께 꿰매어 이불을 ‘어머니 품’으로 바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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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이 이룬 행복의 의미
“바늘이 이루어 낸 행복”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정점이다.
행복은 거창한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늘 끝에서 시작된다. 작은 노동, 반복되는 바느질, 그리고 손끝의 정성이 모여 공동체적 행복을 만들어낸다.
이는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성과 사랑에서 비롯되는 행복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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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풀향과 밤의 정서
마지막 연의 “은근한 풀향 속에 밤이 잠든다”는 문장은 시 전체를 감싸는 서정적 종결이다.
풀향은 노동의 산물이며, 밤은 쉼과 안식의 시간이다.
풀향 속에 잠드는 밤은 단순한 수면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얻어지는 평화와 감사의 상태를 드러낸다. 이는 ‘소박한 행복의 완성’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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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시편의 미학적 구조
이 시는 4연의 짧은 시이지만, 각 연은 뚜렷한 단계적 구조를 가진다.
빨래와 바람
(첫 연), 다듬이질(둘째 연), 꿰매는 노동(셋째 연), 푸근한 행복(마지막 연)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마치 삶의 궤적을 요약한다.
출발은 노동이고, 결말은 사랑과 행복이다.
이는 삶의 보편적 리듬을 시적으로 압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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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정서와 현대적 해석
이 시는 전통적 가사노동의 장면을 소재로 하지만,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다.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작은 노동의 의미’와 ‘삶의 온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현대 사회가 잊고 있는 손의 정성, 정서적 돌봄을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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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바늘, 삶을 잇는 시적 장치로
바늘은 천을 꿰매는 도구를 넘어, 인간과 자연, 노동과 행복, 추위와 온기, 고통과 사랑을 꿰매는 장치로 확장된다. 시인은 작은 바늘 하나에서 시작해 어머니 품속 같은 푸근함과 은근한 풀향 속의 밤까지 도달한다.
이 시는 곧 ‘바늘의 시학’이며, 인간의 삶이 결국 작은 정성과 사랑으로 꿰매어진다는 깊은 성찰을 시인은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