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시-"동파육의 우주"》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박성진 시인 시


시 ― 동파육의 우주


은빛 솥 속에서

별빛처럼 기름이 떠다닌다.

한 조각 돼지고기,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고기가 아니라

천 년 제국이 졸아든 시간의 결정체.


간장빛 바닷속에서

달빛이 가라앉고,

별들이 익어간다.

입술 위에 스미는 순간,

우리는 황허강의 물결을 삼키고,

소동파의 유배를 삼키고,

인간이 견뎌온 고난과 위로의 맛을 삼킨다.


동파육이여,

너는 고기가 아니라 詩다.

불길과 시간, 인내와 기다림이

한 덩이 살 속에 쌓아 올린 우주.


오늘 우리가 너를 먹는다는 것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한 문명을 다시 삼켜

내 몸 안에 잠시 빛나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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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접시의 은하수


동파육은 음식이라는 범주를 초월한다. 그것은 단순히 돼지고기를 간장과 술에 졸인 요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의 예술이며, 문명과 철학의 결정체다. 한 접시의 동파육에는 천년 제국의 역사와 시인의 고난, 그리고 인간의 감각이 빚어낸 숭고함이 응축되어 있다.


*이름의 기원 소동파와 음식의 만남


동파육이라는 이름은 송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소동파에게서 비롯된다. 그는 부패한 권력과 맞서다 유배를 당했고, 생활고 속에서도 음식을 연구하며 삶을 버텼다. 그가 돼지고기를 푹 삶아 간장과 술, 향신료로 천천히 조려낸 것이 바로 동파육이다. 음식의 이름에 시인의 호가 붙었다는 것은, 이 요리가 단순한 요리를 넘어 문학적 상징으로 남았음을 보여준다.


*동파육과 시학


소동파는 인생은 짧고 미식은 길다라고 읊었다. 그의 음식론은 단순히 미각이 아니라 철학의 은유였다. 동파육은 그 철학이 가장 잘 구현된 음식이다. 느리게 조리되는 과정은 마치 시 한 편이 천천히 다듬어지는 과정과 닮아 있다. 불과 시간의 교직 속에서 고기는 부드러움으로 변하고, 시어는 서정으로 익는다.


*유배와 음식 고난의 미학


동파육의 본질은 고난 속의 기쁨이다. 소동파는 권력의 중심에서 추방되어 변방에서 굶주리던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음식을 통한 자족으로 삶을 이어갔다. 동파육은 바로 그 자족의 상징이다. 즉, 이 음식은 부귀의 상징이 아니라, 고난을 견딘 인간의 위엄이다.


*조리 과정의 은유


동파육은 빠름을 거부한다. 고기를 삶는 시간은 몇 시간에 걸쳐야 하고, 불의 세기는 항상 낮아야 한다. 이 과정은 인간 삶의 은유다. 성급함은 고기를 질기게 하고, 인내는 고기를 부드럽게 한다. 동파육은 기다림의 미학을 담고 있는 음식이다.


*동파육과 역사적 풍경


송나라 시절은 정치적 격동과 문화적 황금기가 공존한 시대였다. 동파육은 그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탄생한 음식이다. 그러므로 이 요리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의 맛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송나라의 공기, 시인의 영혼, 문명의 서정을 함께 삼키는 일이다.


*색채의 상징성


동파육의 색은 깊은 갈색이다. 이는 단순한 간장의 색이 아니라, 시간이 덧칠한 색이다. 빛나는 검붉음은 고난의 흔적이자, 성숙의 증거다. 동파육은 눈으로도 먹는 음식인데, 그 색채는 인간의 삶이 어둠을 걷혀 빛으로 나아가는 궤적을 닮았다.


*향기와 기억


음식의 향기는 기억을 불러낸다. 동파육의 향기는 단순히 후각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깊은 층위를 일깨운다. 간장과 술의 향은 중국인의 고향을, 생강과 팔각의 향은 이국의 바람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곧 집과 방랑, 고난과 위로의 기억을 동시에 불러온다.


*동파육과 공동체


동파육은 혼자 먹기보다는 여럿이 나누어 먹는 음식이다. 이는 공동체적 성격을 반영한다.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소동파가 동파육을 사람들과 나누며 관계를 이어갔듯, 이 음식은 함께 먹는 행위의 시학을 내포한다.


*동파육과 철학 느림의 미학


현대 사회는 속도를 숭배한다. 그러나 동파육은 그 흐름을 거부한다. 그것은 느리게 살아가기 의 철학이다. 소동파가 유배지에서 깨달은 것도 결국 속도와 권력이 아니라, 느림과 기다림의 가치였다.


*동파육과 음악적 비유


동파육은 마치 장중한 첼로 협주곡과도 같다. 깊은 현의 울림처럼 국물의 진동이 혀에 퍼지고, 고기의 결마다 다른 선율이 흘러나온다. 특히 쇼스타코비치의 느린 악장과 잘 어울린다. 이는 고난과 위로, 역사의 파동을 닮았기 때문이다.


*동파육과 미술


만약 동파육을 화폭으로 옮긴다면, 그것은 렘브란트의 어두운 명암법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고기의 윤기는 바로 빛과 그림자의 미학을 닮았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의 외형이 아니라, 회화적 깊이를 지닌 예술작품이다.


*동파육과 문명사


음식은 문명의 지문이다. 동파육은 중국 문명의 지문이자, 동아시아 음식문화의 정수다. 그것은 유교적 공동체 정신, 도가적 자연 철학, 불교적 자비심이 동시에 스며든 음식이다.


*동파육과 현대


오늘날 동파육은 전 세계의 식탁 위에 오른다. 그러나 현대인의 동파육 경험은 종종 피상적이다. 진정한 동파육의 맛을 알기 위해서는, 소동파의 생애와 그 시대의 공기를 함께 삼켜야 한다.


*동파육과 인간 존재


동파육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은유다. 고기라는 생물의 잔해가 불과 시간 속에서 다시 태어나듯, 인간도 고난 속에서 성숙해 간다.


*동파육과 종교적 상징


동파육은 일종의 성찬이다. 그것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공유하고 위로를 나누는 의례적 의미를 지닌다.


*동파육과 문학적 상상력


만약 윤동주가 동파육을 먹었다면, 그는 한 조각의 고기 속에서 별빛을 보았다 고 썼을 것이다. 동파육은 문학적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한다.


*동파육과 세계화


동파육은 이제 중국만의 음식이 아니다. 한국, 일본, 서양에서도 다양한 변형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문명이 교차하고, 서로 다른 문화가 섞여가는 세계화의 맛이다.


*동파육과 인플루언서 문화


오늘날 동파육은 먹방과 SNS 인스타그램의 대표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진정한 동파육의 가치는 화려한 사진이 아니라, 그 느림과 인내의 과정에 있다. 인싸 음식이라는 타이틀은 겉모습에 불과하고, 그 속에는 깊은 철학이 숨어 있다.


*동파육 인문학


동파육은 하나의 음식이면서 동시에 역사, 철학, 예술, 문학을 포괄하는 인문학적 텍스트다. 그것을 맛본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을 다시 체험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동파육을 먹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미각을 넘어 인간과 문명의 전체성을 맛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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