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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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검은 별 카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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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깊은 강, 느리게 흐르는 세월 속에서
철갑상어는 묵묵히 기다린다.
반세기의 침묵 끝에 내어놓은
작디작은 검은 알.
혀끝에 닿는 순간
알갱이는 별처럼 터져 오르고,
짭조름한 바다의 숨결 속에
바람과 파도, 계절이 함께 스며든다.
한 숟가락의 어둠은
사치가 아니라 시간이다.
그 속에는 제국의 연회와
황제의 꿈이 흘러가고,
인간의 오래된 욕망과 바다가 만난다.
카비아여,
너는 음식이 아니라
세월을 삼킨 바다의 시.
우리가 너를 맛본다는 것은
잠시나마 우주를 입안에 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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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신비로운 카비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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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태어난 검은 별
카비아는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인간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시간의 심연 속에서 빚어진다. 철갑상어는 수십 년간 침묵하며, 바다와 강을 오가며, 물살과 계절의 무게를 견뎌낸다. 그 인내의 결과로 탄생한 검은 알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세월이 응축된 별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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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적 미각의 탄생
카비아가 처음 서양의 귀족 사회에 등장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권력과 명예의 상징이었다. 러시아 제정의 황제, 프랑스의 귀족들, 오스트리아의 궁정 연회에서 카비아는 항상 가장 먼저, 가장 특별한 자리에서 등장했다. 그것은 입안에서 터지는 작은 알이 아니라, 권력의 질서와 신분의 상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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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기다림의 의미
철갑상어가 반세기를 바닷속에서 견뎌야만 알을 낳는다는 사실은 인간 사회에도 깊은 은유를 던진다. 속도를 숭배하는 현대 세계와는 달리, 카비아는 ‘시간의 철학’을 가르친다. 오직 기다림만이 진정한 결실을 낳는다는 사실, 인간의 욕망도 결국 기다림을 통과해야만 완성된다는 진리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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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의 우주
알갱이가 터지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미각적 사건이 아니다. 바다의 파도, 강의 냄새, 계절의 변화, 인간의 숨결이 동시에 녹아든 ‘우주적 체험’이다. 우리는 혀끝에서 작은 알이 터지는 순간, 바다의 시간을 삼키며, 우주의 심장을 잠시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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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신비 사이
카비아는 흔히 사치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러나 평론적으로 접근하면, 그것은 단순한 과소비의 표식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보석’이다. 가격은 기다림의 대가이며, 희소성은 자연의 섭리다. 따라서 카비아를 사치로만 규정하는 것은 바다의 신비를 모독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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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욕망의 충돌
카비아는 인간 문명의 가장 화려한 순간에 등장한다. 황제의 만찬, 제국의 축제, 세계 금융가의 파티에서 카비아는 언제나 욕망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그 욕망의 이면에는 바다의 침묵과 기다림이 숨어 있다. 욕망과 인내, 문명과 자연의 충돌 속에서 카비아는 인간 문명의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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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시학
작은 알 하나에 바다가 응축되어 있다는 사실은 시적이다. 카비아는 바다가 쓴 시다. 바람, 파도, 계절, 시간이 모두 알갱이 속에서 언어처럼 발화한다. 시인은 그것을 ‘먹는 시’로, 예술가는 그것을 ‘감각의 은유’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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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비아와 철학적 사유
카비아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기다림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잃고 있는가? 반세기를 인내해야만 맛볼 수 있는 이 작은 알은, ‘시간과 욕망의 본질’을 묻는다. 우리는 즉시 충족을 요구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카비아는 오히려 ‘지연된 충족’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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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과 평등의 역설
한때는 귀족과 황제만이 누릴 수 있었던 음식이 오늘날에는 자본의 힘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카비아의 세계는 여전히 불평등의 상징이며, 인간 사회의 계급적 욕망을 은근히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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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적 경고
카비아의 역설은 또 다른 차원에서 드러난다. 무분별한 남획으로 철갑상어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 그 사실은 카비아가 단순한 미각의 향연이 아니라 ‘생태학적 경고’라는 점을 일깨운다. 인간의 욕망이 지나칠 때, 바다와 생명은 파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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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학의 좌표
오늘날 카비아는 더 이상 왕과 귀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식가의 식탁, 미디어의 화려한 조명 속에서 ‘문화적 오브제’가 되었다. 그것은 음식 이상의 미학적 경험이며, 삶의 은유로 읽히는 현대의 문화 기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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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비아와 예술
음악가에게 카비아는 침묵 뒤의 첫 음, 화가에게는 검은 점묘의 붓질, 시인에게는 바다의 은유다. 카비아는 예술가의 감각을 자극하며, 기다림과 찰나의 환희를 동시에 노래하게 한다. 그것은 예술의 원형적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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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의미와 소비문화
현대 사회에서 카비아는 소비의 과시와 문화적 향유의 교차점에 있다. 어떤 이는 그것을 허영으로 보고, 어떤 이는 그것을 삶의 미학으로 본다. 결국 카비아는 인간 사회가 소비와 미학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문화적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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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비아와 정치경제
국제 무역 시장에서 카비아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정치경제적 상징이 된다. 수출국과 소비국의 관계, 경제 제재 속에서의 밀거래, 카비아의 유통망은 곧 세계 정치의 축소판이다. 바다의 작은 알이 세계 경제의 흐름과 연결된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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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비아와 신화적 상상력
고대인들이 바다를 ‘심연의 자궁’으로 보았다면, 카비아는 그 자궁에서 태어난 ‘검은 별’이다. 신화적으로 보자면, 카비아는 ‘심연이 낳은 보석’이며,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가장 은밀한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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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비아와 종교적 상징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카비아는 희생과 결실의 상징이기도 하다. 철갑상어가 반세기를 바치고 내놓는 알은 마치 제물처럼 바다에 헌정된다. 그것을 인간이 맛보는 순간, 일종의 ‘성찬’과 같은 종교적 체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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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비아와 심리학적 욕망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보면, 카비아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는 ‘쾌락의 은유’다. 작은 알이 터지는 순간, 억눌린 욕망이 순간적으로 해방되며, 무의식의 기쁨이 혀끝에서 발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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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비아의 동서양 문화 비교
서양에서 카비아가 귀족적 권력의 상징이었다면, 동양에서는 그것을 ‘자연이 내놓은 보배’로 본다. 서양의 소비와 동양의 사유가 만나는 지점에서, 카비아는 세계적 문화 텍스트로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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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바다가 쓴 시
카비아는 단순히 고급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바다가 오랜 기다림 끝에 써낸 검은 시다. 우리는 그 시를 혀끝에서 맛보며, 시간을 삼키고, 품는다. 카비아는 사치가 아니라 미학이다. 카비아 비록 작디작아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황제의 도시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