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황진이 시인을 기리며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추모시 < 황진이 시인을 기리며 >


박성진 시인


달빛 고운 강 언덕에

거문고 고운 가락을 얹으시던 님,

꽃잎 같은 웃음 속에

별빛의 쓸쓸함을 감추셨지요.


사랑은 매화 향기처럼 번지고

삶은 물결처럼 흘러가도

님은 노래와 춤으로

세상을 품으셨습니다.


이제 매화 향기 되어 돌아오시고

별빛이 되어 남으신 님,

그 맑은 숨결은 오늘도

우리 가슴을 환히 밝히십니다.


아, 황진이여.

풍류의 여왕이시여.

당신의 혼은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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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황진이 문학세계의 집대성



<서론> 황진이를 다시 부르는 이유


황진이는 단순히 조선의 한 기녀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한 시대의 억압적 질서를 넘어선 시적 영혼이었고, 인간의 근원적 자유와 사랑을 문학 속에 담아낸 존재였다. 오늘 우리가 황진이를 다시 부르는 이유는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가 여전히 오늘의 시대에도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황진이의 문학은 사랑과 풍류, 자유와 저항, 여성성과 인간성, 그리고 존재의 고독을 모두 아우른다. 그녀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과 사회적 억압을 동시에 노래함으로써, 한국문학사의 독보적인 지점을 차지한다. 서정과 풍류, 기품과 자유가 교차하는 그 문학세계는 오늘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우리 시대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생애와 시대적 배경>


황진이가 살았던 조선 중기는 유교적 도덕률과 신분제가 가장 강력하게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였다. 기녀라는 신분은 한편으로는 가장 억압받는 위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문인, 관료, 학자들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한 특별한 자리를 제공했다.

황진이는 이 경계적 위치에서 스스로를 ‘단순한 기녀’가 아닌, 시와 음악, 예술을 통해 자유로운 주체로 세웠다. 그녀의 삶은 당시 여성들이 처한 굴레를 뛰어넘은 예외적 존재였으며, 동시에 보편적 갈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황진이는 자신만의 언어와 풍류를 창조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예술로 증명했다.



<풍류와 자유 시와 노래의 본질>


황진이의 문학은 풍류라는 말로 요약되지만, 그것은 단순히 멋과 흥취에 머물지 않는다. 풍류는 그녀에게 자유의 다른 이름이었다. 노래하고 춤추며, 시를 읊는 행위는 억압적 사회 질서를 가볍게 비켜가는 동시에, 그 너머의 자유로운 세계를 선언하는 행위였다.

그녀의 풍류는 단순한 개인의 기분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시대와 맞서는 심미적 저항이었다. 시조 한 수, 가곡 한 곡 속에는 자유에 대한 그녀의 갈망이 스며 있었다. 그것은 풍류이자 동시에 혁명적 선언이었다.



<사랑의 미학>


황진이 문학의 중심에는 사랑이 자리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 욕망이나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다. 황진이의 사랑은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불꽃과 같았다. 그녀는 사랑을 통해 삶의 본질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시적 언어로 승화시켰다.

대표작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는 기다림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한 연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감싸는 숭고한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여성성과 저항성>


조선 사회에서 여성은 유교적 규율에 의해 철저히 억압되었다. 그러나 황진이는 그 굴레를 스스로 넘어섰다. 그녀의 시는 여성적 한계 안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인간 보편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황진이는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 당당히 시를 짓고, 노래하고, 춤추며 자신의 존재를 세웠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나 재능을 넘어선 일종의 사회적 저항이었다. 황진이의 시는 ‘여성문학의 시원’이자 ‘저항문학의 시원’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과 인간의 교감>


황진이의 시조에는 매화, 달빛, 강물, 바람 등 자연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그녀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자연은 곧 그녀의 내면을 드러내는 거울이자, 인간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체였다.

예컨대 매화는 그녀의 사랑을, 달빛은 그녀의 고독을, 바람은 그녀의 자유를 상징한다. 황진이의 시는 이처럼 자연과 인간이 서로 호응하고 교감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곧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드러내는 시적 진실이었다.



<음악성과 율조>


황진이의 문학은 단순히 글자에 머물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은 본래 노래되고 연주되며 춤추는 종합예술이었다. 시조와 가곡은 실제 음악으로 울렸고, 그녀의 삶은 늘 음악과 함께 있었다.

이 때문에 황진이의 문학은 문학사뿐 아니라 음악사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그녀의 시는 곧 음악이었고, 음악은 곧 삶이었다. 그녀가 남긴 리듬과 율조는 오늘날에도 한국 예술의 원형으로 작동한다.



<황진이와 유교적 세계관의 충돌>


성리학적 규율은 기녀를 천시했다. 그러나 황진이는 그 질서 안에 갇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경계를 활용해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냈다. 그녀의 삶은 유교적 도덕률과의 충돌이자, 그 너머의 자유로 향하는 길이었다.

황진이는 도덕적 비난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문인들과 학자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것은 단순한 모순이 아니라, 그녀가 가진 독보적인 힘이었다. 그녀는 제도적 억압을 시와 풍류로 넘어섰다.



<추모와 전승>


황진이는 죽은 뒤에도 잊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이름은 더 빛났다. 문인들은 그녀를 시의 주제로 삼았고, 민중은 그녀의 노래를 입에서 입으로 전했다. 황진이는 개인을 넘어 전설이 되었고, 신화가 되었다.

오늘 우리가 황진이를 추모하는 것은 단순한 옛 여인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적 자유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며, 우리 문학이 걸어온 길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황진이와 한국 여성문학>


황진이는 한국 여성문학의 근원이다. 그녀는 남성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창조했다. 그녀의 시조는 단순히 여성적 감성에 머물지 않고, 인간 보편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녀의 문학은 오늘날 여성문학의 원형으로서 여전히 살아 있다. 여성적 주체성과 자유의 목소리를 최초로 예술적으로 구현한 인물이 바로 황진이다.



<황진이의 세계문학적 가치>


황진이의 시는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세계문학적 보편성을 지닌다. 사랑과 그리움, 자유와 고독은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서도 울림을 가진다.

그녀의 시는 한국의 에로스와 아가페를 동시에 상징하며, 인간 보편의 감정을 가장 세련된 형식으로 표현한 문학이다. 따라서 황진이는 한국문학을 넘어, 세계문학의 보편적 가치 속에서도 빛난다.



<박성진 평론가의 시선 ― 분단과 화해로 확장된 황진이>


박성진 평론가는 황진이의 자유정신을 오늘의 현실 속으로 불러낸다. 황진이가 신분제와 유교적 억압 속에서 자유를 노래했다면, 박성진은 분단과 이념의 억압 속에서 화해와 평화를 노래한다.

이 두 세계는 서로 닮아 있다. 시대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황진이의 자유와 박성진의 화해는 모두 억압을 넘어서는 보편적 인간 정신이다.



<황진이 추모의 현대적 의미>


황진이를 기리는 것은 과거의 기억에 머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시대에 자유와 존엄, 사랑과 풍류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추모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실천이다.


황진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그녀를 기리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결론>

영원한 불꽃


황진이는 죽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시와 노래는 오늘도 울리고, 내일도 계속 울릴 것이다.


그녀는 한국문학의 영원한 불꽃이며, 여성문학의 시원이며, 자유정신의 상징이다. 오늘 우리가 황진이를 기리는 것은 곧, 우리 안에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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