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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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예인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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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情 이인애
명월이 만공산하니
박연폭포 아래
귀대어 서면
서화담 너털웃음이
거문고 가락에 파묻혀 있다
높은 문장과 시와 춤
재색을 겸비한
절세가인 그녀
천마산 30년 면벽수행
지족선사 오감을 일깨워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로다
달빛 누각에서
수이감을 자랑 마라
'청산리' 노래 한 자락으로
아쉬워하는
벽계수를 뒤로 하고
석류나무 류榴 편지에
고기 잡을 어漁 자로
보낸 재치 있는 화답
소세양과의 오언율시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고결한 예술가로서
시대를 앞서 살며
진정한 자유를 꿈꾸던 영혼
오늘날까지도
촉촉한 시어로
시대를 뛰어넘어
세인의 가슴에 살아 숨 쉬며
천년 세월을 잇는 교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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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 황진이》에 드러난 자유와 미의 문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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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인문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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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序詩) 예인의 탄생과 우주의 무대>
이인애의 시는 한 여인의 초상으로 출발하지만, 단순한 회고시가 아니다.
첫 행 “명월이 만공산하니 / 박연폭포 아래”는 우주적 스케일의 무대다.
명월(明月)은 정신의 등불이며, 만공산은 인간의 영혼이 오르는 상징적 산이다.
이곳은 ‘속세와 초월의 경계’이자 예인이 탄생하는 시원의 공간이다.
황진이는 이 공간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녀는 ‘달빛의 제자’이며, 자연의 율동에 귀를 기울이는 예술적 영혼이다.
이 구절만으로도 시인은 ‘인간과 자연의 일체’라는 동양미학의 근본 명제를 선포한다.
그녀의 존재는 인간의 욕망을 넘어선 조화의 원리이며, 그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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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대어 서면” 경청의 미학과 예술의 수행성>
“귀대어 서면 / 서화담 너털웃음이 / 거문고 가락에 파묻혀 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풍류가 아니라 예술의 ‘경청’ 행위다.
귀를 대는 순간, 예인은 자연의 숨결 속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듣는 자이자 흡수하는 자이며, 예술을 통한 존재의 투명화를 실현한다.
거문고는 육체의 악기가 아니라
우주의 현(絃)이다.
그 음률 속에는 인간의 비애와 초월이 공존한다.
서화담의 웃음은 세속의 웃음이 아니라, 깨달은 자의 웃음이다.
이 대목에서 이인애 시인은 예술을 단순한 기예가 아닌 수행의 방식으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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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과 면벽수행과 예술가의 내면적 사원>
“천마산 30년 면벽수행.”
이 구절은 전설이자 상징이다.
천마산은 그녀의 ‘예술적 도량(道場)’이며, 인간적 고뇌의 내면 공간이다.
그곳에서 황진이는 ‘춤과 시’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사유한다.
면벽(面壁)은 불교의 공안이자 인간의 침묵의 언어다.
그녀의 30년 수행은 실제의 세월이 아니라, 예술에 몸을 바친 정신의 밀도를 뜻한다.
지족선사가 오감을 일깨운다는 대목은, 감각이 죄가 아니라 깨달음의 통로임을 상징한다.
이는 조선 사회의 금욕적 도덕관념을 넘어서는 급진적 인문주의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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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 헛됨의 깨달음>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은 한 줄의 철학이다.
여기서 ‘도로(徒勞)’는 헛됨이 아니라, 모든 집착이 사라진 ‘비움의 미학’이다.
황진이는 수행을 통해 자신이 쫓던 명예·사랑·지식을 모두 놓아버린다.
그녀의 예술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이며, 노래하는 無이다.
이 말은 니체의 “위버멘쉬(초인)”과 상통한다.
결국 그녀는 인간적 완성을 예술을 통해 이루며, 그 초월은 절망이 아니라 웃음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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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누각과 청산리, 감성의 초월 공간>
“달빛 누각에서 수이감을 자랑 마라 / ‘청산리’ 노래 한 자락으로.”
달빛은 여성적 감수성, 누각은 예술의 무대다.
황진이는 그곳에서 인간의 감정(수이감)을 초탈하여, 자연의 율동으로 환원한다.
‘청산리’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자유를 상징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이 속한 세계를 조용히 뒤돌아본다.
이 순간, 황진이는 예술을 통해 삶의 고통을 해방시킨다.
그녀의 노래는 단순한 풍류가 아니라, 자유의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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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계수를 뒤로 ― 사랑의 초월과 인간의 자존>
“아쉬워하는 벽계수를 뒤로 하고.”
벽계수는 세속적 사랑, 즉 남성 중심적 관계의 상징이다.
황진이는 그를 뒤로 한다.
이는 사랑의 거부가 아니라, 자기 완결적 인간으로의 귀환이다.
조선의 유교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을 떠난다는 것은 사회적 죽음이었다.
그러나 황진이는 그 죽음을 택한다.
그녀의 ‘이별’은 패배가 아닌 선언이다.
이 장면에서 시인은 여성의 존재가 미의 주체로 우뚝 서는 순간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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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나무 류榴와 어漁 ― 문자 속의 자유>
‘석류나무 류榴’와 ‘고기 잡을 어漁.’
이 두 글자는 시와 삶이 교차하는 문자의 유희다.
황진이는 이 언어놀이를 통해 지성의 유희(遊戱)를 실현한다.
남성 문인들이 지배하던 시의 세계 속에서, 그녀는 한 글자 바꿈으로 세계를 전복시킨다.
석류(榴)는 다산과 여성의 생명력, 어(漁)는 자유로운 유영이다.
그녀는 이 두 글자를 엮어, ‘생명과 자유의 시’를 완성한다.
이인애 시인은 그 장면을 문학사적 은유로 불러내며,
‘문자’가 곧 여성의 무기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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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양과의 오언율 시의 대등한 문학적 연대>
소세양과 황진이의 오언율시는 조선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지적 대화’다.
그녀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언어의 파트너로 등장한다.
당시 유교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과 시로 논한다는 것은 혁명적 사건이었다.
이인애 시인은 이를 단순한 고사로 회상하지 않는다.
그는 이 사건을 ‘문학의 민주주의’로 본다.
황진이는 성별을 넘어선 ‘사유하는 인간’이자, 문학의 평등을 실천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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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예술가로서 윤리보다 미의 존재론>
“고결한 예술가로서 시대를 앞서 살며.”
여기서 ‘고결’은 도덕적 순결이 아니다.
그녀의 고결함은 자유에 대한 의지이며, 예술의 진실성이다.
조선의 도덕률은 여성에게 복종을 강요했다.
그러나 황진이는 미를 통해 자신을 구원했다.
그녀의 미학은 플라톤적 미
(眞·善·美)의 통합이라기보다,
‘진실로부터 나온 미’였다.
그녀에게 예술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증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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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선 영혼 ― 여성 해방의 원형>
이 시는 황진이를 여성 해방의 원형으로 재탄생시킨다.
그녀는 신사임당의 도덕과도 다르고, 허난설헌의 비애와도 다르다.
그녀는 고통을 춤추고, 제약 속에서 웃었다.
이인애 시인은 그녀를 통해 ‘자유의 영혼이 어떻게 여성의 몸 안에서 피어날 수 있는가’를 탐구한다.
그녀의 예술은 성별을 초월한 인간의 선언이며,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 ‘진정한 독립’의 본질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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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감각, ‘촉촉한 시어’ 생명의 시>
“촉촉한 시어”는 이 시의 핵심어다.
촉촉함은 감각의 부활, 생명의 회복이다.
황진이의 언어는 마른 역사 위에 다시 스며드는 물이다.
그녀의 말에는 공감각적 울림이 있다.
‘보여주고 들려주며 냄새 맡게 하는 시’가 바로 그것이다.
이인애 시인은 그 촉감을 현대적으로 재현함으로써,
과거의 인물을 현재의 생명으로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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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교감 예술과 시간의 불멸>
“천년 세월을 잇는 교감.”
이 문장은 인간 예술의 영원성을 압축한다.
황진이의 정신은 시와 음악, 춤 속에서 이어졌다.
그녀는 죽지 않았고, 예술의 생명으로 변했다.
이 교감은 단순히 과거의 추억이 아니다.
그녀의 자유와 감성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도 살아 있는 영감이다.
그녀는 시대를 잇는 다리이며, 예술의 영혼이 세대를 넘어 흐르는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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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결론 인간의 자유와 예술의 성스러움>
〈예인 황진이〉는 한 인물의 미화가 아니라,
인간이 예술을 통해 어떻게 자유로워지는가에 대한 장엄한 서사시다.
그녀의 거문고는 단순한 음향이 아니라,
‘구속된 영혼이 터뜨린 자유의 진동’이었다.
이인애 시인은 황진이를 통해 묻는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 답은 분명하다.
예술은 시대의 굴레를 넘어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게 하는 힘이다.
그녀는 아름다움으로 구원받은 인간이며, 그 자유의 불꽃은 지금도 우리를 비춘다.
<총평>
황진이는 단지 기생이 아니라,
시대의 금기를 미의 힘으로 넘어선 ‘예술 철학자’였다.
그녀는 인간의 한계를 웃음으로, 사랑의 결핍을 시로,
세속의 억압을 춤으로 승화했다.
이인애 시인의 시는 그 황진이를 예인 황진이로 이름 하며 한 편의 시로 황진이를 품격 있게 노래하였다. 보기 드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