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송편을 빚으며"-이인애 시인》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시 ― 송편을 빚으며


多情 이인애


추석 전야

휘영청 밝은

대보름달 향하여

두 손을 모은다


우리 가족

무사무탈 하기를

콩알 소 하나에 가족 얼굴 하나

정성스레 속을 넣으며

빌고 또 비는 어미의 마음


오금이 저려오도록

붉은 팥소를 넣으며

물가 안정과 비싼 임대료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주름진 아비의 마음


흑임자 소를 채우는

장성한 아들과 딸

무슨 소원 비냐 물으니

세계 평화를 빌고 있단다


빚은 송편이 쟁반을

가득 메울수록 달은 기울고

이야기꽃이 만발하다

세계 평화도 좋지만

내년엔 제발 결혼이나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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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송편을 빚으며’의 시학: 공동체의 기억과 세대의 기도



<명절의 미학 달빛과 인간의 합창>


이인애 시인의 첫머리는 “추석 전야, 휘영청 밝은 대보름달”이라는 이미지로 시작된다.

달빛은 단순한 자연의 조명이라기보다, 인간의 마음을 반사하는 ‘정신의 거울’이다.

달 아래서 두 손을 모으는 행위는 기도의 제스처이자,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통과의례이다.

이 순간 시인은 인간이 우주와 연결되는 의식을 그려낸다.

‘달’은 시간의 순환을 상징하고, ‘두 손’은 인간의 간절함을 상징한다.

이 두 상징의 결합은 한국적 명절의 본질, 즉 자연과 인간이 공명하는 조화의 미학을 구현한다.



<‘속’을 넣는 행위, 마음의 노동, 사랑의 상징>


“콩알 소 하나에 가족 얼굴 하나”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적 미학이다.

단순한 요리의 행위가 아니라, 사랑을 빚는 행위로 재탄생한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속 넣기’는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주술이자, 세대 간 기억의 전승이다.

이 행위는 물질적 노동이 아닌 정신적 노동, 즉 ‘정성’의 형상화다.

송편을 빚는 어머니의 모습은 가부장제의 재현이 아니라, 생명을 이어가는 원형적 여성성의 찬미이다.

이 시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 한국적 정서의 근원을 복원한다.



<아버지의 기도와 경제와 양심의 접점>


“물가 안정과 비싼 임대료”라는 현실적 언어가 시에 삽입되는 순간, 시의 온도는 달라진다.

이 문장은 단지 풍속화적 묘사가 아니라 시대의 윤리적 진술이다. 아버지의 기도는 경제적 현실을 떠안은 가장의 슬픔이자, 사회 구조의 모순에 대한 윤리적 호소다.

이 대목은 민중의 기도, 서민의 언어로 한국 현대시의 사회적 감각을 되살린다. 이 시의 현실 인식은 단순한 개인의 바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고통을 품은 시대적 기도다.



<세대의 대화 세계 평화와 결혼 사이>


“세계 평화를 빌고 있단다 / 내년엔 제발 결혼이나 했으면”이라는 대목은 시적 유머이자 세대 간 긴장의 완화다. 여기서 ‘세계 평화’는 젊은 세대의 이상주의를, ‘결혼’은 부모 세대의 현실주의를 상징한다.

시인은 두 세대의 소망이 충돌하면서도 하나의 웃음으로 녹아드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장면은 가정의 미시세계 속에 세계사의 거시적 꿈이 공존함을 보여준다. 송편이라는 작은 음식이 ‘지구적 평화’와 ‘가족의 바람’을 이어주는 매개로 등장하는 것이다.



<민속의 형식 속 현대의 언어>


이 작품은 전통 민속의 서정성을 따르면서도, “임대료”, “세계 평화” 등 현대적 언어를 자연스럽게 융합한다.

이는 이인애 시인이 민속적 소재를 ‘복고적 풍경화’로 머물게 하지 않고, 현대인의 체온과 윤리의식으로 재구성한 결과다. 송편이 단지 ‘음식’이 아닌 ‘소통의 매개’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시는 민속의 현대적 갱신을 실현한다.



<‘가족’의 재정의 혈연에서 마음의 공동체로>


이 시의 가족은 단순한 혈연이 아니다.

서로의 기도를 엮어 공동체의 기운을 빚는 영적 가족이다. 어머니의 정성, 아버지의 근심, 자녀의 이상, 이 모두가 송편의 ‘소’로 들어가 하나의 인간적 총체를 이룬다. 이는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공감의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시인의 윤리적 제안으로 읽힌다.



<달의 시학 순환과 기원의 상징>


시의 배경인 ‘대보름달’은 시간의 순환, 생명의 리듬을 암시한다.

달이 차오르고 기울 듯, 인간의 삶 또한 소망과 상실을 반복한다. 시의 마지막 “달은 기울고 이야기꽃이 만발하다”는 구절은, 달의 소멸을 통해 삶의 지속을 역설하는 역동적 미학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기울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은유다.


<음식의 문학적 상징과 공동체적 예술>


한국문학에서 ‘음식’은 단순한 생활소품이 아니라, 정서의 그릇이다. ‘송편’은 빚는 이의 손끝에서 ‘기도의 형태’로 바뀌고, 나누는 순간 ‘사랑의 예술’이 된다. 시인은 이 음식을 통해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한국적 미학을 완성한다.

이것은 문학과 일상이 만나는 지점, 즉 생활의 시학이다.



<유머의 미학 인간미의 완성>


이 시는 끝에서 “세계 평화도 좋지만 / 내년엔 제발 결혼이나 했으면”이라며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나 이 유머는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긴장된 현실을 유연하게 감싸는 생활 철학의 언어다. 유머는 절망을 밀어내는 인간의 마지막 방어선이며, 시인은 그 방어선을 ‘사랑의 언어’로 바꾼다. 웃음 속에서 공동체는 다시 살아난다.



<시적 구조 순환과 누적의 리듬>


‘속을 넣고, 빚고, 쟁반에 채워가는’ 시적 구조는 삶의 누적적 시간감을 형상화한다.

각 연은 ‘행위’의 진행으로 이어지며, 마지막에 달의 기울음과 함께 완성된다.

시 전체는 마치 한 편의 미니 서사처럼 구성되어,

노동--기도--소망-- 유머로 이어지는 리듬을 만든다.

이는 한국적 서정의 리듬이자, 공동체적 이야기의 구조이다.



<종합적 평가 생활 시의 최고봉>


"송편을 빚으며"는 명절의 풍속을 시적 철학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이 시는 향토성과 보편성을 모두 지닌다.

한 가정의 풍경에서 시작해 인류적 기도와 유머로 끝맺는 확장성은 탁월하다.

전통의 언어를 현대의 감성으로 번역한 시인이기에 가능한 균형이다. 시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삶을 빚는 손끝에서 시가 탄생하고, 사랑을 나누는 순간 문학이 완성된다.



<마무리>


이인애 시인의 「송편을 빚으며」는 ‘생활의 시학’과 ‘공동체의 영성’을 조화시킨 대표적 현대 서정시다.

민속의 정서, 세대의 대화, 유머의 미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국인의 마음속 깊은 추석의 풍경을 되살린다.

이는 한 그릇 송편 속에 ‘세계 평화’와 ‘가족의 사랑’을 함께 담은 시적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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