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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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손주 자욱 문풍지에 가을이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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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운 시인
가을 햇살 스미는 고운 문풍지
아, 내 손주 녀석 장난스러운 손길에
새끼손톱자국 콕 박혀
예쁜 구멍 하나 송골송골
미워할 수도 마냥 사랑할 수도
없는 할아버지(할미)의 가슴팍엔
오히려 피식 웃음이 번지고 마네
그저 고운 살결 위에 새겨진
작은 추억 한 조각 같아
구멍 뚫린 그 틈 새로
차가운 바람 살랑 들어와
귓가를 간지럼 태우듯 맴돌고
저 멀리 들녘의 황소울음마저
내 안온한 방 안으로 스르륵
그래 이렇게 구멍 난 문풍지처럼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어도
사랑은 더욱 깊어지는가 봐
소리 없는 속삭임처럼
내 마음엔 가을이 사랑이 짙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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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가을빛으로 새겨진 ‘손주의 자욱’, 세대와 시간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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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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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의 첫 문턱 문풍지에 스민 가을의 체온>
윤용운 시인의 이 시는 ‘문풍지’라는 오래된 물성을 통해 가을의 정서를 감각화한다. 문풍지는 바람을 막는 얇은 종이이지만, 시인에게 그것은 세월과 가족, 온정의 상징이 된다. “가을 햇살 스미는 고운 문풍지”는 단순한 배경 묘사가 아니다. 가을 햇살이 스며드는 그 미세한 틈새는 곧 시간의 숨결이며, 인생의 마지막 구간에 서 있는 노인의 가슴속 따스한 회상이다. 시인은 가을의 냉기와 온기가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인간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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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의 손끝, 사랑의 자국>
“내 손주 녀석 장난스러운 손길에 / 새끼손톱자국 콕 박혀”---이 대목은 일상의 사소한 흔적이 ‘세대의 시간’을 기록하는 감정의 중심이다.
손주의 손톱자국은 문풍지에 남았지만, 실은 시인의 마음에 새겨진다.
‘콕 박혀’라는 의성어적 표현은 물리적 자국을 넘어, 세대의 정을 꽂는 상징적 행위로 전이된다. 시는 가족의 계보가 물질로 이어지는 방식, 즉 ‘시간의 촉감화’를 통해 사랑을 시각적·청각적으로 동시에 체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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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승화된 세월의 주름>
“미워할 수도 마냥 사랑할 수도 / 없는 할아버지의 가슴팍엔 / 피식 웃음이 번지고 마네” ---- 여기에는 노년의 체념이 아니라 성숙한 수용이 있다. ‘피식’이라는 가벼운 웃음 속에는 세월이 준 관조와 관용의 정서가 응축되어 있다. 윤용운 시인의 미덕은 감상적 노인상을 피하고, 웃음 속에 담긴 ‘생의 긍정’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노인의 웃음은 자기 연민이 아니라 ‘세월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아는 지혜의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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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통로, 기억의 통로>
“구멍 뚫린 그 틈 새로 / 차가운 바람 살랑 들어와” ---구멍은 결핍이 아니라 기억의 통로이다.
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현실의 추위이면서 동시에 기억의 냉기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냉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바람을 통해 ‘황소울음마저 방 안으로 들어오는’ 확장된 감각의 세계를 맞이한다.
시적 공간이 ‘문풍지 너머의 세계’로 열리며, 실내와 실외, 개인과 자연, 인간과 우주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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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구멍으로 스며드는 사랑>
시의 마지막 연 “그래 이렇게 구멍 난 문풍지처럼 /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어도 / 사랑은 더욱 깊어지는가 봐”는 시적 주제의 응결이다.
‘구멍 난 문풍지’는 흠결이 아니라 인생의 투명한 증거이다.
시간은 구멍을 내지만, 그 틈으로 사랑이 들어온다.
시인은 노년의 감정선을 단 한 줄로 요약한다.
결핍이 사랑을 깊게 만든다.
이것은 윤용운 시 세계의 중심 윤리이며, 동양적 무심과 서정의 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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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시학의 합일>
윤용운 시인의 시는 일상의 단어를 시의 높이로 끌어올린다. ‘문풍지’, ‘손톱자국’, ‘황소울음’ 같은 생활어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것들은 시인의 시선이 닿는 순간 ‘감각의 은유’로 변한다.
이 점에서 윤용운 시인의 시는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가 보여준 일상 서정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그는 한층 더 구체적인 사물(문풍지)을 통해 가족 서정을 정밀하게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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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미학 ‘문풍지’의 존재론>
문풍지는 얇고 허약한 물성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약함을 통해 인간 존재의 진실을 본다. 바람을 막지만, 동시에 바람을 통과시키는 그 ‘반투명한 경계’는 인생의 상징이다. 늙음이란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사랑의 미세한 통로를 남기는 일이다.
윤용운 시인의 문풍지는 ‘살아 있는 노년의 미학’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한 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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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질감과 온도의 시학>
이 시는 단순히 가을을 묘사하지 않는다.
‘스르륵’, ‘살랑’, ‘송골송골’ 같은 어감은 가을의 체온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한다. 감각어의 세밀한 운용을 통해, 시인은 가을의 냉기와 인간의 체온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 미세한 온도차가 바로 인간의 감정의 온도이다.
가을은 단순히 계절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정서의 온도조절기’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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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공감의 시적 전이>
이 시는 ‘할아버지와 손주’라는 세대 간의 서정적 공명을 다룬다. 그 관계는 단순한 가족의 사랑이 아니라, 시간의 윤회 구조를 드러낸다.
손주의 장난은 과거의 자신을 되비추는 거울이다.
노인은 손주를 통해 젊음을 회상하고, 아이는 노인의 웃음 속에서 인간의 근원을 배운다.
시는 세대를 잇는 무형의 사랑의 사슬을 조용히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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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서정의 진화, 슬픔이 아닌 감사의 정서>
대부분의 노년시가 ‘쓸쓸함’을 노래할 때, 윤용운은 ‘감사’를 노래한다. 문풍지의 구멍마저도 감사의 대상으로 바꾼다.
이 관조적 정서는 불교의 무상(無常)과 기독교의 사랑(Agape)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 인생의 상처는 곧 ‘바람이 드는 구멍’이며, 그 구멍을 통해 사랑이 스며드는 것이다.
윤용운 시인의 시는 노년의 감성을 ‘감사로 승화시킨 시학’의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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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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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사랑, 그리고 존재의 투명성
〈손주 자욱 문풍지에 가을이 오네〉는 한 폭의 인생 수묵화다. 문풍지는 세월의 장막이 아니라, 사랑의 통로이며, 구멍은 결핍이 아니라 온기의 창이다.
윤용운 시인은 “가을”을 시간의 은유로, “손주”를 미래의 상징으로 세운다.
이 둘이 만나는 자리에서 시는 완성된다.
결국 이 시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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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구멍을 낼수록, 사랑은 스며든다.”
이 시 한 줄이 바로 윤용운 시인의 서정의 본질이며, 노년과 세대, 시간과 사랑을 잇는 문학의 다리이며 시간과 사랑을 이어주는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준 따뜻한 감성과 포옹이 깃든 서정시라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