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안나현 시인~널 그리며》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시향 안나현

필명:시향 안나현

본명:안차임

2008년 한울문학 제53기 시부문

(신인문학상 등단)

한울문학언론인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화예술교류진흥위원회 회원

한국문화예술유권자협회 회원

전남한울문인협회 회원

전남 한울문인협회 부회장


시 ― 〈널 그리며〉


시향 안나현


내게 허락된

하늘만큼의 화선지 위에


온 바다를 먹물 삼아

빈 곳 없이 채운들

너를 향한 내 사랑만 할까나


남겨진 단 하나의 사랑보다

질기지는 않으리라


남겨진 온 마음으로

너를 보내버린 내 눈빛은


그대로 먹물 되어

하늘을 메우고


***********


***평론***


《먹향(墨香)의 서정, 그리움의 우주》



<서론>

하늘과 바다 사이에 그려진 한 편의 사랑화(畵)



안나현의 시 〈널 그리며〉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으로 다루지 않는다.

이 시는 사랑을 우주의 질서와 닮은 창조 행위로 승화시킨다.

‘하늘만큼의 화선지’는 무한한 여백이고, ‘온 바다를 먹물 삼아’는 그 여백을 채우는 인간의 감정이다.

그리움은 이 시에서 회화적 언어로 재탄생하며, 시인은 감정의 화가이자 침묵의 묵객이 된다.



<시적 공간 하늘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첫 연의 “내게 허락된 / 하늘만큼의 화선지 위에”는 시의 공간적 스케일을 결정한다.

사랑의 무대가 현실이 아니라 하늘로 확장된다.

여기서 하늘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무한성이다.

즉, 시인은 개인적 사랑을 우주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이 표현 속에는 ‘허락된’이라는 겸허한 태도가 담겨 있다.

그녀의 사랑은 운명과 신의 질서 안에서 허용된 영혼의 행위이다.



<상징의 변주 ‘바다’와 ‘먹물’의 대조>


‘바다’는 감정의 총체이자 인간의 내면 깊숙한 심연을 뜻한다.

‘먹물’은 그것을 언어로 전환하는 매개다.

즉, 시인은 감정을 그대로 쏟지 않고, 그것을 먹빛으로 정제해 낸다.

이때의 먹빛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명상의 빛, 사랑의 잔향이다.


“온 바다를 먹물 삼아 / 빈 곳 없이 채운들”이라는 대목은,

사랑이 아무리 충만해도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인간적 한계의 자각을 품고 있다.

‘너를 향한 내 사랑만 할까나’는 질문형의 어조로,

무한한 감정 속에서도 겸허함과 절제가 살아 있다.



<절제의 언어

‘질기지는 않으리라’의 역설>


“남겨진 단 하나의 사랑보다 / 질기지는 않으리라”는 구절은

사랑의 지속을 부정하면서도, 오히려 그로 인해 더 깊어지는 역설을 드러낸다.

보통 사랑은 영원함으로 미화되지만,

시인은 그것을 ‘질기지 않겠다’고 말하며 감정의 품격을 드러낸다.

이 한 줄은 사랑의 절제된 인간학이다.

진정한 사랑은 소유나 집착이 아니라, 떠나보내는 용기와 고요한 수용임을 보여준다.



<감정의 전이 눈빛에서 하늘로>


“남겨진 온 마음으로 / 너를 보내버린 내 눈빛은”

이 부분은 시적 전환의 중심이다.

여기서 ‘눈빛’은 사랑의 마지막 언어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존재의 빛이다.

그 눈빛이 “그대로 먹물 되어 / 하늘을 메우고”로 이어지면서

사랑은 개인의 감정에서 자연과 우주의 질서로 흡수된다.


즉, 이 시의 클라이맥스는 이별이 아니라 변형(Transformation)이다.

사랑의 기억이 ‘하늘을 메우는’ 순간, 인간의 감정은 형이상학적 완성에 이른다.



<이미지의 미학 ‘먹물’의 시각적, 청각적 공명>


‘먹물’은 시각적으로는 검은색이지만, 그 속에는 온갖 빛의 스펙트럼이 숨어 있다.

시인은 이 한 단어로 사랑의 다층적 깊이를 압축한다.

또한 ‘먹물’은 소리 없는 흐름이다.

그것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먹 번짐의 속도와 잔향으로 감정을 전한다.

이 시의 언어는 색채와 음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회화적 리듬을 지닌다.



<문체적 분석 여백의 숨결과 음성적 리듬>


안나현의 문장은 짧지만, 행과 행 사이의 공백이 감정의 공간을 만든다.

그 공백은 단순한 시각적 여백이 아니라 호흡의 여백, 묵상의 시간이다.

그녀의 시는 ‘말하는 시’가 아니라 ‘숨 쉬는 시’다.

“하늘만큼의 화선지 위에”에서 느린 리듬으로 시작해,

“하늘을 메우고”에서 고요히 닫히는 구조는 완성된 호흡의 원형을 형성한다.


이 리듬은 낭송될 때 더욱 살아난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정적은 마치 바람이 먹냄새를 감싸 안는 듯한 음성적 깊이를 부여한다.

그리움이 소리가 아니라 숨결로 전이되는 언어적 음악성이다.



<미학적 세계관 ‘먹향의 시학’과 동양적 감성>


〈널 그리며〉는 서양적 감정 표현과 달리, 감정의 절제와 여백의 미학을 따르고 있다.

‘먹향’은 곧 동양 정신의 상징이다.

이 시의 세계는 사랑을 소유하지 않고, 기억 속에서 묵향처럼 지속시킨다.

사랑은 불타는 열정이 아니라, 향으로 남는 침묵의 기억이다.


이로써 시인은 ‘그리움’을 고통이 아닌 ‘명상’으로 승화시킨다.

그것이 바로 안나현 시가 지닌 동양적 시의 깊이다.



<구조적 해석 상승하는 서정의 곡선>


시 전체는 수평적 감정의 흐름이 아니라, 상승하는 서정의 구조를 갖는다.

‘하늘만큼의 화선지는 바다로 먹물은---사랑 ---눈빛, 하늘을 메우고’로 이어지는 순환은

감정이 땅에서 하늘로, 다시 우주로 확장되는 상승의 곡선이다.

이 구조는 ‘이별의 시’가 아니라 ‘초월의 시’로서 읽히게 한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꾸어 하늘을 덮는다.



<언어의 농도 묵향처럼 스며드는 말>


안나현의 시어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단어 하나하나가 감정의 침전물처럼 깊다.

‘허락된’, ‘먹물’, ‘질기지는 않으리라’, ‘눈빛’, ‘메우고’ 같은 단어들은

모두 시간의 층위를 가진 언어다.

이 단어들이 모여 시 전체에 조용한 농도를 형성한다.

이 농도야말로 그녀의 문체가 가진 힘이다.



<사랑의 윤리 보내는 사랑의 존엄>


이 시의 사랑은 소유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더 고결하다.

‘보내버린 눈빛’ 속에는 집착이 없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곧 인간의 윤리적 성숙이다.

사랑을 쥐고 있지 않아도, 그 사랑은 세상을 메운다.

이것이 안나현의 사랑관이다.

그녀는 ‘이별의 미학’을 넘어, 존재의 품격으로서의 사랑을 제시한다.



<시적 계보 윤동주, 김소월, 그리고 안나현>


윤동주가 ‘하늘’을 통해 인간의 순수를 노래했다면,

안나현 시인은 그 하늘을 ‘먹물로 메운다.’

김소월이 이별의 상처를 운명처럼 노래했다면,

안나현은 그 상처 위에 묵향의 위안을 그린다.

즉, 그녀의 시는 두 전통, 즉 윤동주의 순정과 김소월의 슬픔을

하나의 ‘동양적 명상 시’로 융합한 결과물이다.




<결론> 그리움은 하늘의 다른 이름이다


〈널 그리며〉는 한 개인의 사랑 시를 넘어,

그리움의 보편적 형이상학을 담고 있다.

이 시에서 그리움은 아픔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이다.

그리움이 하늘을 메우고, 사랑이 묵향으로 남는 순간,

인간은 상실 속에서도 완전해진다.


따라서 이 시는 ‘사랑의 끝’을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랑의 변환(變換)

즉, 그리움이 우주로 흡수되는 과정을 말한다.


하늘은 화선지고, 바다는 먹물이며, 시인은 붓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남는 향 하나,

그것이 바로 안나현의 시적 사랑이다.




<총평>


〈널 그리며〉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여백의 울림으로 이루어진 시이다.

그리움의 침묵이 곧 사랑의 완성이며,

먹향이 하늘을 덮는 순간, 인간은 시인이 된다. 안나현 시인처럼 널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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