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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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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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情 이인애
인생의 종착역에서
침묵의 시간을 일깨워
원효대사에 깨달음 안기고
묵언 수행에 든 해골바가지
보이는 듯 보이지 않고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
눈 코 입이 있던 자리엔
못다 한 허무만 가득하다
복 지을 걸, 착하게 살걸
많이 즐길 걸, 여행도 할걸
좀 더 배우고 좀 더 베풀걸
자주 웃을 걸, 많이 사랑할걸
백골에 귀 대면
가서 보니 그래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더라는
환생의 염원 품은 뜨거운 넋두리
껄껄껄 후회의 바람소리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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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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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사유의 시
이인애 시인의 〈백골〉은 인생의 끝, 곧 죽음의 자리를 ‘허무의 종착역’으로 그리되, 그 안에서 다시 생의 의미를 되묻는다.
시의 화자는 이미 백골이 되어 침묵 속에 들려오는 소리를 ‘귀 대어 듣는다.’
이 순간, 죽음은 침묵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사유의 문으로 전환된다.
육체는 사라졌지만 언어는 남아, 인간의 내면적 고백으로 되살아난다.
즉, 이 시는 ‘죽음의 고요 속에서 다시 부활하여 얻는 인간의 시학의 정신이다.
<제1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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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 수행의 해골바가지”
첫 연의 이미지는 불교적이다.
‘묵언 수행’이라는 말은 언어를 내려놓은 깨달음의 상태를 상징한다.
시인은 죽음을 수행의 최종 단계로 본다.
원효대사의 ‘해골 물’ 일화처럼,
죽음을 통해서만 비로소 생의 의미가 드러난다.
‘침묵의 시간을 일깨워’라는 구절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 모순 속에서 인간의 영혼은 깨어난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마음의 각성’ 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생과 사를 통합하는 불교적 명상 시로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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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 “보이는 듯 보이지 않고”는 감각의 해체와 존재의 공허이다.
두 번째 연은 감각의 붕괴를 노래하였다.
‘보이는 듯 보이지 않고,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다’는 반복은
감각의 소멸을 넘어서 존재의 경계 붕괴를 암시한다.
죽음 이후의 공간에서는 감각이 아니라 기억만 남는다.
‘눈 코 입이 있던 자리’는
육체가 사라진 자리이자, 존재가 비워진 자리이다.
그곳에는 ‘못다 한 허무만 가득’하다.
이 허무는 절망이 아니라 ‘모든 것이 덧없음을 깨닫는 투명한 지점’이다.
이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육신이 아니다. 사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제3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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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지을 걸, 착하게 살걸” 후회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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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연은
시 전체의 정서적 중심을 차지한다.
이 부분은 마치 죽기 직전 인간이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내면의 참회록처럼 읽힌다.
“복 지을 걸, 착하게 살걸…”의 반복은
하나의 탄식이자 윤리적 회한의 합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후회는 단지 개인의 반성에 머물지 않는다.
‘좀 더 배우고 좀 더 베풀걸’은
삶의 본질이 배움과 나눔에 있음을 깨닫는 철학적 성찰이다.
이 구절은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삶은 늦기 전에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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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연> “백골에 귀 대면” 사후의 목소리와 생의 회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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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은 이 시의 하이라이트이다.
‘백골에 귀 대면’이라는 구절은 죽음과의 대화를 상징하였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단순한 허무의 메아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승이 낫더라”는 깨달음은,
삶이 고통으로 가득해도 여전히 살아 있음이 축복이라는 통찰이다.
죽음을 겪은 자만이,
비로소 삶의 의미를 절절히 이해한다는 역설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껄껄껄’이라는 웃음은 조롱이 아니다.
그 웃음은 후회와 집착이 사라진 해탈의 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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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상징의 전개, 원효에서 윤회의 미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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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원효대사의 해골 깨달음을 인용하며,
죽음을 단순한 ‘공포의 사건’이 아닌 ‘진리의 통로’로 그린다.
‘해골바가지’는 부패와 소멸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영혼의 그릇이다.
이 그릇에 담긴 것은 피가 아니라, 깨달음이다.
시인은 그 깨달음을 ‘환생의 염원’으로 전환시킨다.
죽음은 무가 아니라 윤회의 원점으로 본다.
즉, 다시 사랑하기 위한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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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목소리 바람 속의 넋두리>
‘껄껄껄 후회의 바람소리’는 시적 절정이자 해학의 정점이다.
이 웃음은 인간의 고통을 조롱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웃음 속에는 눈물이 스며 있다.
‘바람소리’는 죽은 자의 목소리이자 살아 있는 자의 귀에 들리는 영혼의 울림이다.
시인은 죽음을 통해서도 인간의 온기를 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백골’은 차가운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향해 다시 웃는 존재로 재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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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적 사유 죽음은 소멸이 아니다.>
이 시는 단 하나의 진실을 향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깨달음의 순간이다.’
“저승보다 이승이 낫더라”는 문장은
아이러니하지만 인간 실존의 본질을 꿰뚫는다.
삶은 고통스러우나, 그 고통 속에만 진실이 있다.
이 시 한 줄이 시 전체를 해탈로 끌어올린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서 생의 의미를 다시 읽는 태도는
바로 이인애 시인의 윤리적 깊이이자 철학적 미학의 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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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의 구조와 리듬과 생과 사의 호흡>
〈백골〉은 짧지만 정교한 리듬 구조를 가진다.
‘보이는 듯 보이지 않고 /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의 반복적 대칭,
‘복 지을 걸, 착하게 살걸’의 4행 리듬을 보면
마치 생의 호흡과 죽음의 박동이 교차하는 듯한 음악적 효과를 낸다.
이 리듬은 단순한 형식미가 아니라, 존재의 리듬이다.
삶과 죽음, 말과 침묵이 교차하는 호흡 속에서
시인은 ‘죽음 속에서도 언어는 숨 쉰다’는 진리를 증명하였다.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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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후회 없는 삶의 철학 시
《백골》은 인간의 종말을 노래하면서도,
그 어떤 비극시보다 따뜻한 울림을 남긴다.
죽음의 문턱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후회는,
사실상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마지막 예술 행위이다.
시인은 백골의 침묵을 통해 이렇게 속삭인다.
살아 있을 때 더 사랑하자
웃자, 그리고 후회하지 말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 시는 인간의 숙명적 덧없음을 직시하면서도,
그 허무 속에서 오히려 삶의 찬미를 발견하는
철학시적 명상의 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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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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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인의 〈백골〉은 죽음과 허무, 회한과 깨달음을 동시에 품은 인간 존재의 서사시이다.
그 속에서 시인은 ‘죽음의 끝’이 아닌 ‘사랑의 시작’ 임을 들려준다.
백골은 죽음의 잔해가 아니다.
영혼이 다시 웃는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