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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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 분화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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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일 시인
아소산 분화구 깊은 곳에서
뿜어 나오는 유황 연기가
푸른 하늘로 떠오른다.
떠오른 흰 연기가
그대로 흰구름이 된다.
내 눈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이 장엄한 변신이 신비롭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구사센리에 핀 억새풀들은
바람결에 흔들리는데,
분화구에 고여 있는
옥색의 유황물이
나그네의 가슴을 흔든다.
옥색 빛의 달콤한 유혹 때문인가?
아니면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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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 분화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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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호흡과 인간의 시선, 숨결
주광일 시인의 시는 첫 구절부터 강렬하다. “분화구 깊은 곳에서 뿜어 나오는 유황 연기”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구의 심장이 내뿜는 숨결이며, 인간이 감히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원초적 생명의 기운이다. 시인은 그 뜨거운 기운을 눈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대지와 인간이 호흡을 공유하는’ 체험의 문을 연다.
이 장면에서 시인은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다. 그는 화산을 보기보다 그 속에 ‘들어간다’. 유황의 냄새가 코를 찌르고, 시야가 아득해지는 그 순간, 시인은 이미 자연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가 기록한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의 심장이 초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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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연기에서 구름, 변신의 시학
“떠오른 흰 연기가 그대로 흰구름이 된다.” 이 짧은 문장은 마치 한 폭의 수묵화와 같다. 대지의 불길한 연기가 하늘의 순결한 구름으로 바뀌는 이 장면은, 자연의 정화 작용이자 존재의 환생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 변화의 찰나를 잡아내었다.
그는 불길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끌어안는다. 지옥의 숨결 같은 유황이 하늘의 하얀빛으로 승화될 때, 시인은 생명과 죽음, 오염과 정화의 경계를 함께 바라본다. 이것은 인간의 내면에서도 일어나는 변신이다.
우리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순간, 바로 그때 유황의 연기는 구름이 된다. 시인은 이 신비한 변화를 목격한 인간의 눈으로, 세계의 재탄생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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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어지럼과 경외의 체험
“내 눈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이 장엄한 변신이 신비롭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시인은 자연의 압도적 장면 앞에서 자기의 ‘시각’을 잃는다. 눈이 어지럽다는 것은 단순한 현기증이 아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크기 앞에서 느끼는 경외(敬畏)다.
그 어지럼은 깨달음의 흔들림인 것이다. 인간이 지구의 거대한 호흡과 맞닥뜨릴 때, 그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한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시는 태어난다. 어지럽고 불안한 순간, 언어는 새로워지고, 감각은 확장되었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그 ‘경외의 체험’을 가장 인간적인 문장으로 붙잡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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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풀의 춤과 생명, 순응의 미학
분화구의 불길한 기운 속에서도 억새풀은 흔들린다. “구사센리에 핀 억새풀들은 바람결에 흔들리는데”라는 구절은 자연의 단단함보다 부드러움의 힘을 보여준다.
억새는 불길을 피하지 않는다.
다만 바람에 따라 몸을 맡기며 살아남는다. 그것이 생명이다.
시인은 이 흔들림을 단순한 풍경으로 두지 않는다.
억새풀의 춤은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한 은유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분화구 속에서도 우리는 흔들리며 살아야 한다. 꺾이지 않고, 바람과 더불어 흔들리는 그 유연함이야말로 생의 존엄이 되었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이 작은 식물 하나에서 철학을 길어 올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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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색 유황수의 아름다움과 위험의 경계
“분화구에 고여 있는 옥색의 유황물이 나그네의 가슴을 흔든다.”
이 장면은 시 전체의 정점에 근접한다.
그 옥색은 신비롭지만 동시에 치명적이다. 유황수는 독을 품은 아름다움이다. 시인은 그 빛에 매혹되지만, 그 매혹이 불안을 불러온다.
이 이중성은 인간의 욕망을 닮았다.
우리는 늘 아름다움에 끌리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위험을 안다. 그러나 그 위험이야말로 삶을 깊게 만든다.
시인은 그 진실을 정직하게 마주한다.
옥색의 물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흔드는 거울이다.
그는 그 빛에 홀리고, 동시에 경계하며, 결국 ‘흔들림 그 자체’를 시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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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심리학 감정, 그 미세한 진동
“옥색 빛의 달콤한 유혹 때문인가?”
이 물음은 감정의 진원지다.
시인은 유혹의 근원을 찾아간다.
그것이 단순히 색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의 마음속 본능 때문인지를 묻는다.
여기서 시는 풍경의 기록을 넘어, ‘심리의 탐험’이 된다.
시인은 감정의 결을 매우 섬세하게 다룬다. 시에서의 유혹은 금지된 욕망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여전히 감각이 살아 있고,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시인은 이 유혹을 죄악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인간의 순수한 감정으로 받아들이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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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인가’ 존재, 근원의 회귀
마지막 행 “아니면 무엇 때문인가?”는
시 전체를 다시 처음으로 돌려놓는 질문이다.
대지는 여전히 숨 쉬고, 인간은 여전히 그 이유를 모른다. 이 한 문장은 모든 해답을 부정하며, 인간의 사유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이 물음은 과학이나 철학의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경험의 자리’에서 나온다.
시인은 해답을 찾기보다, 그 모름의 상태를 아름답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바로 시의 본질이다. ‘모른다’는 말속에 인간의 겸허함이 있고, ‘묻는다’는 행위 속에 시의 영혼이 있다. 주광일 시인의 물음은 우주의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지는 인간의 목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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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구름 사이에서 인간의 자리
〈아소산 분화구에서〉는 한 편의 시이자 한 편의 철학이다. 불의 산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구름으로 바뀌듯, 인간의 감정 또한 고통에서 아름다움으로 변한다.
시인은 대지의 호흡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성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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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위대함은 ‘감탄’이 아니라 ‘사유’에 있다. 시인은 화산을 바라보면서 자기 내면세계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자연은 풍경이 아니라 존재의 거울이다. 유황불 속에서도 시인은 희망의 색을 보고 있다. 그것은 ‘옥색의 유혹’이며, ‘구름의 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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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가슴이 흔들렸는가?”
물음이 남는 한, 시는 살아 있고, 인간은 여전히 불의 중심에서 시의 빛을 찾을 것이다.
시는 자연을 노래하지만, 결국 ‘인간의 근원’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분화구에 분출은 솟아오르고 삶은 면면히 지나간다. 시인은 분화구를
바라보면서 삶을 뒤돌아보고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