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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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는 나르키소스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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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년 시인
봄비는 나르키소스를 닮았습니다.
그 손끝은 저 하늘 끝에서 시작되어,
땅에까지 닿아 다시 하늘로 이어집니다.
그는 나에게 닿기까지 세상을 물들이고서,
세상에 물듭니다.
나를 물들이고, 나에게 물듭니다.
그 모습은 염료를 한껏 뒤섞어 쓴 옷감과도 같습니다.
나는 봄비를 닮고 싶습니다.
저 봄비처럼 무한의 궤도를 걷고 싶습니다.
그를 닮아, 나를 희생하고도 싶습니다.
지금은 나를 잃어도, 언젠간 돌아오는 그처럼
다시금 돌아와, 영원의 길을 걷고도 싶은 심정이 됩니다.
그렇게 나는 언제나 영원을 꿈꿉니다.
아직 잊히길 거부하는 희미한 기억들을
한 땀, 한 땀 조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 죽음이 두려워도,
“죽음이 생의 뒤를 따라다닌다” 하여도
두려움은 이미 내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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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의 형이상학과 나르키소스의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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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년 시인의 시 「봄비는 나르키소스를 닮았다」는
봄이라는 계절적 이미지 속에 인간 존재의 근원적 사유를 녹여낸 작품이다.
이 시는 단순히 자연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 생과 사, 빛과 어둠의 경계를 오가는 한 존재의 윤회,
즉 존재의 순환적 구조를 시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 속에서 ‘나르키소스’라는 신화적 인물은 더 이상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자기를 잃음으로써 우주와 하나가 되는, 자기 해체의 상징적 존재로 새롭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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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는 세상과 인간, 하늘과 대지를 이어주는 유기적 연결체다.
“그 손끝은 저 하늘 끝에서 시작되어, 땅에까지 닿아 다시 하늘로 이어집니다.”
이 한 문장은 순환의 원리를 시적 리듬으로 표현한 선언문과 같다.
봄비는 하늘의 생명이자, 땅의 기억이다.
하늘이 땅을 적실 때, 존재는 그 사이에서 스스로의 의미를 발견한다.
따라서 봄비는 단순한 ‘떨어짐’이 아니라,
‘돌아감’의 철학이다.
그의 여정은 생에서 사로, 다시 생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순환의 궤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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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여기서 인간의 삶을 봄비에 비유한다.
인간은 세상 속으로 흘러들어 가 자신을 잃고,
다시금 하늘로 증발하며 본질로 돌아간다.
그 과정 속에서 남는 것은 ‘물듦’, 즉 관계의 흔적이다.
“나를 물들이고, 나에게 물듭니다.”
이 구절은 김진년 시 세계의 핵심이며,
타자와 자아, 세계와 개인이 서로 물들며 교섭하는 형이상학적 공간을 보여준다.
이때의 ‘물듦’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에 물들며, 그 물듦 속에서 스스로를 잃고,
또 새로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곧 사랑이자, 시간이며,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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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소스는 본래 자기 자신에게 매혹되어 죽은 자다.
그러나 김진년의 시에서 그는 그 죽음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그는 물에 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다른 형태로 환생한다.
그가 떨어진 호수의 물결은 봄비가 되어 대지로 내리고,
그 대지는 다시 생명을 낳는다.
나르키소스는 죽음이 아니다. 생명의 변주이다.
시인은 그를 통하여 ‘희생’을 ‘순환의 시작’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를 닮아, 나를 희생하고도 싶습니다.”라는 시구는
자기 비움의 선언이며 인간적 완성의 갈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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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봄비는 끊임없이 자신을 잃는다.
그러나 그 잃음 속에서 세상은 살아난다.
한 방울의 소멸이 전체의 생명을 낳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희생의 미학"을 말한다.
그것은 종교적 헌신의 차원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넘어서기 위한 철학적 행위다.
자신을 비워야만, 세상은 채워진다.
그 비움의 길은 곧 봄비의 길이며, 인간 존재의 근원적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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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은 염료를 한껏 뒤섞어 쓴 옷감과도 같습니다.”
이 시구는 언어의 회화적 미학을 보여준다.
봄비는 색과 빛, 시간의 잔상을 섞어 한 폭의 인생화를 그린다.
그 염료의 층위는 단순히 감각의 장식이 아니라,
존재의 혼합과 기억의 잔향이다.
인간의 삶은 수많은 색이 뒤섞인 옷감과 같다.
시인은 그 위에 봄비를 내리게 하여,
시간이 씻어내지 못한 얼룩들을 정화하고, 새로운 색으로 물들인다.
그리하여 봄비는 예술 그 자체의 상징이 된다.
예술은 결국 세계를 물들이고, 자신을 비우는 봄비의 행위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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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시인의 인식 또한 깊다.
“지금은 나를 잃어도, 언젠간 돌아오는 그처럼.”
이 문장은 시간의 직선을 원의 리듬으로 바꾼다.
김진년의 시 세계에서 시간은 흐름이 아니라 회귀이다.
우리는 떠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다.
봄비는 떨어지지만, 증발하여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 진리이자 위로다.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의 사유가 이 시의 언어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모든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돌아온다.
죽음마저 생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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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은 이 시의 철학을 정점으로 끌어올린다.
“아직 잊히길 거부하는 희미한 기억들을 한 땀, 한 땀 조각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기억을 단순히 붙잡지 않는다.
그는 잊혀야 할 것들을 ‘조각’하며 다듬는다.
조각은 보존이 아니라 창조다.
그는 사라져 가는 것을 새로이 형상화하며,
소멸 속에서도 새로운 존재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이 장면에서 봄비는 기억의 조각가이며,
시간의 장인이 된다.
기억과 망각, 생과 죽음은 더 이상 대립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순환 안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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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생의 뒤를 따라다닌다 하여도 두려움은 이미 내 것이 아닙니다.”
이 문장은 깨달음의 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삶의 본질을 이해했다는 뜻이다.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귀향이며,
생은 떠남이 아니라 돌아감이다.
이 철학은 불교의 윤회와 기독교의 부활,
그리고 동양의 순환적 자연관을 모두 품는다.
그리하여 이 시는 동서양의 형이상학이 만나는 교차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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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또한 인상적이다.
‘닮았다’, ‘물듭니다’, ‘돌아옵니다’의 반복은
물의 낙하와 증발, 순환을 그대로 옮겨놓은 음악이다.
그 리듬은 봄비의 호흡이며, 존재의 맥박이다.
시인은 언어로 물소리를 빚는다.
그의 문장은 파문처럼 번지고, 고요 속에서도 울린다.
이러한 언어적 진동은 독자에게 사유의 깊이를 이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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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봄비는 나르키소스를 닮았다」는
자연과 인간, 생과 죽음, 시간과 기억의 모든 대립을 하나의 순환으로 통합한 시다.
나르키소스는 더 이상 자기 사랑의 희생자가 아니다.
그는 봄비로 부활하며, 세상에 스며드는 존재가 된다.
김진년 시인의 시는 인간이 자신을 잃음으로써 영원을 얻는 길,
즉 ‘자기 해체를 통한 구원’을 노래한다.
그것은 철학이 아니라, 시의 언어로 쓴 구도(求道)이다.
봄비는 세계의 거울이며, 나르키소스는 그 거울 속에서 다시 눈을 뜬다.
이 시는 그렇게 ‘자연의 물리학’처럼 ‘존재의 신학’처럼 시세계의 흐름이
명확하다.
시인의 또 다른 시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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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년 1978년 봉화 출생
고등학교 1학년때 교통사고로
뇌손상을 입었다. 언어상실로
지체장애로 현재에 이른다.
언어재활 중에 우연히 접하게 된
시집 한 권이 시세계로 이끌었다.
누가 물어도 그는 당당하게
작업이 시인이라 말한다.
2016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우연히 안동시에 위치한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하면서 문학바탕
문예지를 보고서 곽혜란 대표에게
원고를 보내왔고 문학바탕의 격려와
지원으로 당당하게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춘양중, 고교, 안동공업고등학교
전자과를 거쳐 안동과학대학
사회복지과를 졸업하였다.
경상북도 장애인 종합복지관에서
첫 시집 "이중문 안에서 비익조가 되다."
(2019년 11월, 동인출판사 발행)
출간하여 내주었으며 월간 문학바탕을
통해 몇 차례 시를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