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조성복 시인-"어떤 일기"》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어떤 日記〉


조성복 시인


스쳐 지나듯 데면데면 그를 만났다


뭣하고 지내는지

밥은 먹고 사는지

가끔은 하늘도 바라보는지


그런가 하면 꼭 집어서


전에 한 번 어디가 아프다 했었는데

다 나았는지



지난 세월이라 나도 잊고 사는 걸

눈 맞춰 가며 세세히 되물어 보던 그

건성건성 몇 마디 답했을 뿐,

헤어지는 길에도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돌아서 거울 앞에 서서 자문자답하기를


그는 진심으로 와 물었거늘 나는 왜 거리를 두었나


그는 가슴으로 다가섰거늘 나는 왜 바람처럼 지나쳤나



나의 사소한 것까지 자책과 되물어 보곤

안심이라도 했던지 한발 물러서던 그

그는 이미 높은 곳에 서 있었고

아둔한 나는 해 기울도록 발만 동동 굴렸다


밤새 뒤척이길

내일은 그를 찾아가 스승이 되어 달라고

절절한 심경으로 읊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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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스쳐 지나듯” 인간 존재의 간격>


조성복 시인의 〈어떤 日記〉는 인간관계의 ‘간격’에서 출발한다.

“스쳐 지나듯 데면데면 그를 만났다”는 첫 문장은 이미 시 전체의 정조를 결정한다.

‘스쳐’ 지나듯 ‘데면데면’은 물리적 거리와 정서적 거리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 짧은 구절 안에는 현대인의 관계 단절, 감정의 피로, 그리고 회한의 씨앗도 함께 들어 있다.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지만, 마음은 멀다.

이 첫 장면은 시 전체를 지탱하는 윤리적 기반과 무심함 속의 미안함을 고백한다.

시인은 단순히 만남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는 ‘무심한 존재의 고백’을 시로 옮기었다.


<안부의 언어 가장 인간적인 문장>


“밥은 먹고 사는지”, “가끔은 하늘도 바라보는지”라는 문장은 일상 대화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관심의 가장 순수한 형태, 즉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조성복 시인은 시적 수사를 거부하고, 소박한 말로 인간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 언어의 결은 ‘자연어의 시학’이다.

사람은 위로를 거창한 말로 주지 않는다.

그저 ‘밥은 먹고 있느냐’ 한마디에 모든 온기가 담긴다.

시인은 일상의 언어를 시의 언어로 끌어올린다.

그 속에서 인간이 지닌 근원적 연민의 빛을 포착하였다.



<기억의 결, 상처의 문법>


“전에 한 번 어디가 아프다 했었는데

다 나았는지.”

이 구절은 인간이 지닌 기억의

방식과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시간은 잊게 하지만, 마음은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 나았는지’라는 말에는 부드러운 체념이 섞여 있다.

‘이미 늦은 물음’의 기색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한 줄로 ‘늦은 관심의 미학’을 완성한다.

질문은 답을 원하지 않는다.

묻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따뜻함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세월의 강 위에 떠 있는 인간>


“지난 세월이라 나도 잊고 사는 걸.”

이 문장은 회한과 자기 성찰의 경계에 있다.

‘잊는다’는 것은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삶의 생존 방식이다.

인간은 너무 많은 감정을 안고는 살 수 없다.

그러나 그 잊음 속에서 다시 불현듯 떠오르는 미안함, 그것이 바로 시의 출발점이다.

시인은 ‘잊음’을 죄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기억을 위한 숨 고르기’로 본다.

그의 시에는 인생을 바라보는 관용의 철학이 흐르고 있다.



<말보다 큰 손짓의 시학>


“헤어지는 길에도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이 짧은 행위 묘사는 시적 함축의 정수다.

말로 다 하지 못한 진심이 ‘손짓’ 하나로 완성된다.

이 한 장면은 인간관계의 마지막 빛을 상징한다.

우리는 늘 말보다 행동으로 더 많은 것을 전한다.

조성복 시인은 그 ‘손의 언어’를 시 속에 포착한다.

그 손짓은 이별이 아니라, 미안함의 인사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다.



<불편한 마음의 철학, 양심의 잔불>


“편치 않은 마음으로 돌아서 울 앞에 서서 자문자답하기를.”

이 구절은 인간이 자신에게 내리는 도덕적 판결이다.

그 ‘편치 않음’은 감정의 불균형이 아니라 양심의 잔불이다.

진정한 인간은 불편함을 피하지 않는다.

그 불편함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조성복 시인의 시는 ‘편치 않음’ 속에서 인간의 진심을 발견한다.

그것이 시적 윤리이며, 삶의 철학이다.



<진심과 거리 인간관계의 미학>


“그는 진심으로 와 있었거늘 나는 왜 거리를 두었나.”

이 문장은 시 전체를 지배하는 근본적 물음이다.

여기서 ‘거리’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감정의 틈이다.

사람은 사랑할수록 거리 두기를 배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자존을 지키기 위해.

그러나 그 거리는 결국 후회를 낳는다.

시인은 그 후회의 한가운데 서서, 인간의 본질적 약함을 인정한다. 자신을 탓하면서도, 타인을 이해하는 길을 택한다.

그 길이 바로 시인의 인문학이다.



<바람처럼 지나친 사랑 후회의 구조>


“그는 가슴으로 다가섰거늘 나는 왜 바람처럼 지나쳤나.”

‘바람’은 덧없음의 은유이다.

자유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바람은 후회의 바람이다.

화자는 자신이 느끼지 못한 진심의 온도를 뒤늦게 깨닫는다.

그 순간 바람처럼 사라진 자기 자신을 본다.

시인은 이 구절에서 인간이 왜 늘 늦게 후회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시의 윤리’다. 깨달음은 언제나 뒤늦게 온다.



<동동거림의 시간 무력한 존재>


“해 기울도록 발만 동동 굴렀다.”

이 장면은 인간의 무력함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한다.

행동하지 못한 채, 마음만 불타는 인간의 초상.

그 동동거림은 죄책감의 리듬이자, 인간다움의 증거다.

조성복 시인은

그 무력함을 부끄러움이 아닌 온기의 증거로 바꾼다.

완전하지 않기에 아름답다.

시는 바로 그 불완전함의 미학을 포용하였다.




<절절한 고백 인간의 회복력>


“절절한 심경으로 읊소 해야겠다.”

이 마지막 구절은 결심이 아니라 속죄의 언어다.

‘내일은 그를 찾아가겠다’는 다짐 속에는,

오늘의 회한과 내면의 반성이 깊게 깔려 있다.

밤새 뒤척이는 마음, 그것이 바로 인간의 양심이다.

시인은 자신을 책망하면서 동시에 용서한다.

그 과정이 바로 "성숙의 서정"이다.



<일기에서 시로 존재의 문학적 변주>


〈어떤 日記〉의 ‘日記’는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

시간과 존재를 잇는 장치다.

일기는 과거를 정리하는 글이지만,

이 시에서는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예감하는 언어로 작동하였다.

조성복은 자신의 일기를 통해 우리 모두의 일기를 쓴다. 문장은 조용하지만, 그 울림은 길고 깊다.

삶의 모든 스침과 후회를 품은 이 시는,

결국 ‘나의 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일기로 남게 되었다.



<관계의 윤리학>


시의 밑바탕에는 도덕적 회한이 흐르지만, 결론은 슬픔이 아니다.

후회를 통해 자신을 비추고, 그 비침 속에서 타인을 이해한다.

이것이 조성복 시의 따뜻한 힘이다.

시는 판단하지 않는다.

묻고, 스스로에게 대답하였다.

대화의 부드러움은 화해의 시학이다.



<언어의 침묵, 인간의 목소리>


시인의 문장은 소리보다 침묵에 가까운 언어다.

그는 감정을 외치지 않고, 낮은 톤으로 읊조린다.

그 침묵이 독자의 마음에 더 깊이 스민다.

그의 시는 ‘목소리의 문학’이 아니라 ‘숨결의 문학’이다.

말보다 숨이, 리듬보다 여백이 더 크게 울리고 있다.




<일상의 거울, 우리의 자화상>


〈어떤 日記〉의 화자는 시인이자, 동시에 우리 자신이다.

누구나 지나친 인연 앞에서 뒤늦게 마음을 쓰게 된다.

시인은 개인의 후회를 보편의 정서로 확장시킨다.

그의 시는 ‘개인적 체험의 고백’에서 출발해

‘인간 전체의 반성’으로 도달한다.



<시의 결론> 인간은 여전히 따뜻하다


이 시는 냉소의 기록이 아니다.

후회 속에서도 따뜻함이 있다.

그 따뜻함은 늦었기에 더 진하다.

시인은 인간의 미숙함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미숙함 속에서 진심의 불씨를 본다.

그 불씨는 시가 오래 남는 이유가 되었다.



조성복 프로필


조성복

전남 곡성 출생.

한국문인협회 회원, 인사동시인협회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문학신문 등단(2016).

시집 《향기로 핀 그리움》, 《먼 길을 가는 새》, 《다시 피는 꽃》 등 다수.

한국문학상, 인사동문학상, 한국현대시인상 수상.

현재 인사동문학회 이사, 시와 사람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에서 인간의 정서를 포착하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인의 시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랑의 온도를 높이는 밀착형 서정시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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