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박사 정근옥-순명》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정근옥 시인

순명(殉命)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듯

꽃잎이 우물가 물무늬에 흔들린다


밤늦은 대금 소리, 바람으로

산사의 풍경을 흔들어 놓는다


사람 사는 인생사, 날마다 진흙탕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별빛처럼 반짝거리다,


죽은 혼백을 하늘로 날려 보내고

별똥별 하나 흙 속에 묻어두고 가는 일


은하에 반짝이는 별빛, 우주 속으로

깊이 흐르다 구름 속에 묻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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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명(殉命)》 흔들림 속에 피어나는 평안의 철학


박성진 문화평론


<서문>

한 줄의 떨림이 생을 다 말해준다


정근옥 시인의 〈순명〉은 짧지만 놀라운 무게를 가진 시다.

촛불이 흔들리는 순간, 우리는 생의 근원을 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불빛처럼, 인간의 삶도 불안하고, 위태롭고, 그러나 그 안에서만 빛난다.

시는 그 흔들림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흔들리는 그 순간을 통해 ‘순명(殉命)’, 곧 운명에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삶의 철학을 보여준다.


시인의 언어는 결코 꾸며지지 않는다. 그것은 인생의 구체적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

이 시의 모든 구절은, 오래 살아본 사람의 체념이 아니라 “살아내고 난 뒤의 고요한 수긍”에서 비롯된다. 그 고요함이 곧 이 시의 생명이다.




<첫 장면>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듯”의 인간학


이 첫 행은 단 한 줄로 인간의 존재를 설명한다.

촛불은 생명이고, 바람은 세상이다.

우리는 누구나 바람을 피해 숨고 싶지만, 결국 그 바람을 맞으며 타오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정근옥 시인은 이 촛불의 ‘흔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 흔들리기 때문에 빛이 있고, 흔들려야만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 한 줄에 이미 ‘순명’의 철학이 담겨 있다. 바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 속에서 자기 자신을 태워내는 삶, 그것이 이 시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이다.




“꽃잎이 우물가 물무늬에 흔들린다” 기억의 파문


이 구절은 마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처럼 잔잔하다.

우물가, 꽃잎, 물무늬. 이 세 단어는 시인의 내면 풍경을 보여준다.

우물은 기억의 심연이고, 꽃잎은 그 위에 떠 있는 인간의 감정이다.

그리고 ‘물무늬’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다.


그 물결이 번지며 일렁일 때, 우리는 살아온 날들을 본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바람이 불면 금세 흔들리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파문이 번진다. 그러나 시인은 그 흔들림을 아름다움으로 본다.

시인에게 ‘흔들림’은 불안이 아니라, 존재의 증거다.

그는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보여준다.




“밤늦은 대금 소리, 바람으로 산사의 풍경을 흔들어 놓는다” 소리의 세계와 영혼의 울림



이 구절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다.

고요한 밤, 산사의 바람 속에서 대금이 울린다.

그 소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세상과 저 너머의 경계를 잇는 다리다.


정근옥 시인은 ‘소리’를 영혼의 언어로 사용한다.

그에게 대금 소리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이어주는 숨결이다.

풍경이 흔들리고, 공기가 떨리고, 그 떨림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큰 세계 안에 속해 있는지를 깨닫는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순명’이란 말이 단순히 숙명론적 체념이 아니라, 우주적 조화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행위임을 알게 된다.




“인생사, 날마다 진흙탕 속에서” 현실의 투명한 고백


이 구절은 참으로 인간적이다.

시인은 세상을 진흙탕이라 부른다. 화려한 비유도, 위로의 말도 없다.

그저 사실 그대로의 세계다. 하지만 진흙 속에서만 연꽃이 핀다.

그것이 정근옥 시인의 철학이다.


시인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반짝이는 한순간을 찾는다.

“찰나의 순간을 별빛처럼 반짝거리다”라는 표현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말해준다.

삶은 더럽고 힘들지만, 그 속에서도 반짝이는 찰나가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난다.

이 구절은 마치 오래된 경전의 구절처럼, 슬픔을 품은 희망이다.




“죽은 혼백을 하늘로 날려 보내고”하는 슬픔의 의식


시인은 죽음을 일상의 한 장면처럼 노래한다.

‘혼백을 하늘로 날려 보낸다’는 표현은 장례의 의식이면서도 동시에 마음의 정화다.

그는 슬픔을 애도하지 않고, 조용히 떠나보낸다.

여기에는 절제된 슬픔, 절제된 사랑이 있다.


정근옥 시인의 세계는 울부짖지 않는다.

그녀는 울음 대신 ‘기도’를 선택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순명이다. 운명을 따라 보내는 일,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다.




“별똥별 하나 흙 속에 묻어두고 가는 일” 기억의 매장


별똥별은 하늘에서 떨어진 영혼의 조각이다.

시인은 그 별을 다시 흙 속에 묻는다.

그 행위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깊은 애도의 표현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을 때, 결국 그를 ‘흙 속에 묻는다’.

그러나 그 흙은 망각의 자리가 아니라, 기억의 자리다.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피어난다.

별똥별은 사라졌지만, 그 빛은 흙 속에서 다시 싹을 틔운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순명’의 핵심이다 떠나보내되 잊지 않는 사랑이다.




“은하에 반짝이는 별빛, 우주 속으로 깊이 흐르다” ---"생과 죽음의 경계"---


이 대목은 시의 절정이다.

인간의 생명이 우주로 흐르는 순간, 우리는 한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흐름의 일부가 된다.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귀향(歸鄕)이다.

별빛이 은하로 스며드는 듯, 우리의 영혼도 결국 우주로 돌아간다.


정근옥 시인은 인간의 생을 우주적 시선으로 본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시 흐름으로 돌아감’이다.

이 부분에서 시는 개인의 슬픔을 넘어, 존재 전체의 순환으로 확장된다.

이것이 바로 동양적 구원의 미학이다.




<시의 구조 파문처럼 번지는 리듬>


〈순명〉은 흔들림, 흘러감,

떠남, 사라짐, 의 파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 흐름은 곡선적이며, 마치 물결이 퍼져나가듯 이어진다.

이 시에서 ‘흔들림’은 불안의 표시가 아니라, 삶의 리듬이다.

처음의 촛불의 떨림이 마지막 별빛의 흐름으로 이어질 때, 독자는 한 편의 생애를 다녀온 듯한 여운을 느낀다.




<언어의 숨결 ‘흔들리다’의 반복이 주는 인간미>


정근옥 시인의 시어는 투명하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 그러나 그 속엔 천 년의 사유가 담겨 있다.

‘흔들리다’는 단어가 시 전체를 관통한다.

이 단어는 그의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삶, 그것이 바로 인간의 품격이다.




<미학적 기반 침묵과 깨달음의 미학>


이 시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모든 표현은 절제되어 있고, 그 절제 속에 깊은 울림이 있다.

불교의 선(禪) 사상과도 통하지만, 종교적 설교가 아니라 인간적 체험의 언어로 풀어낸다.

‘산사’, ‘바람’, ‘풍경’은 종교적 상징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내면 풍경이다.



<철학적 차원> 허무를 껴안는 희망


〈순명〉은 허무를 말하면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죽음을 노래하지만, 그 속에 따뜻한 생의 온기가 흐른다.

시인은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준다.

그것이 순명이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인생은 그 흔들림 속에서 빛난다.



<맺음말> 흔들림 속의 평온, 순명의 미학


정근옥 시인의 〈순명〉은 인간의 마지막 태도를 보여주는 시다.

이 시는 슬픔이 아니라 평화로 끝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도, 물결에 흔들리는 꽃잎도, 결국 하나의 진실로 귀결된다.

“흔들림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순명은 사랑의 완성이다.”


정근옥 시인은 죽음을 말하면서 삶을 찬양한다.

그의 시는 고요하지만, 그 속에는 눈물보다 깊은 깨달음이 있다.

〈순명〉은 그래서 아름답다.

그것은 슬픔의 시가 아니라, 생의 마지막을 온전히 끌어안는 평온의 시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그것이 인간의 길이며, 순명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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