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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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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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시인 시
지각변동(地殼變動) 일으킨 무뎌진 말초신경
그루터기 무늬에 잔설 뿌리고
망각의 노을로
소설의 역사 떠다니다 잠겨버린
사색의 아카펠라
꽃잎 위에 꽃잎 낙엽 위에 또 낙엽
수없이 겹쳐보는 허무의 리피트
높고 낮은 산 뒤로 하고
외로운 피사체 들풀에 흔들려도
오버랩 켄트지에 줌인해 보는 시간
언뜻의 부초처럼
주체할 수 없는 원초적 그리움
세월 속에 녹아있는 회한의 침전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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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 기억의 침전 속에서 피어나는 존재의 노래》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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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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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 존재가 흔들리는 시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늙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지진이 일어나는 순간이며, 기억의 대지가 서서히 갈라지는 일이다.
시인은 그 첫 행에서 이미 이를 감지한다.
“지각변동(地殼變動) 일으킨 무뎌진 말초신경.”
그 말은 신체의 고장보다 깊은 곳,
정신의 신경망이 하나씩 끊어지는 존재의 진동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 무너진 자리에 “잔설을 뿌린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품격이다.
허물어짐마저 아름다움으로 덮는 지혜.
그루터기에 남은 온기를 눈송이처럼
덮는 장면 ---이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첫 번째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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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의 빛 망각은 슬픔이 아니라 해방이다>
“망각의 노을로 / 소설의 역사 떠다니다 잠겨버린 / 사색의 아카펠라.”
이 구절은 시의 심장이다.
노을은 저물어가는 빛이지만, 그 빛이 사라질 때 하루는 완성된다.
망각 또한 마찬가지다.
기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이 정화되는 과정이다.
시인은 ‘망각’을 사색의 노래로 바꾼다.
그것은 악기 없는 목소리, 아카펠라 같은 인간의 본음(本音)이다.
젊을 땐 타인의 악기에 기대어 노래하지만,
나이가 들면 자기 목소리로만 세상을 불러야 한다.
그것이 진짜 노년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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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트의 리듬, 허무의 반복 속에서 배우는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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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위에 꽃잎, 낙엽 위에 또 낙엽.”
이 단순한 반복 속에는 인생의 순환이 숨어 있다.
삶이란 언제나 지고 피는 꽃잎들의 리피트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 반복을 지루함으로 보지 않는다.
‘리피트’라는 단어를 통해 삶의 허무를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죽음과 소멸조차 생의 리듬으로 감아올리는 시적 통찰,
이것이 김경순 시인의 내면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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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랩된 시간 기억과 현재의 중첩>
“높고 낮은 산 뒤로 하고 / 외로운 피사체 들풀에 흔들려도 / 오버랩 켄트지에 줌인해 보는 시간.”
이 구절은 노년의 시간 인식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섬세히 보여준다.
젊은 날의 눈은 ‘세상’을 향하지만,
늙은 날의 눈은 ‘자신’을 향한다.
‘오버랩’은 겹쳐진 기억이고,
‘줌인’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유의 초점이다.
시인은 인생의 장면을 편집하듯 되감으며,
자신의 필름 속에서 아직도 숨 쉬는 한 장면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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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의 흔들림 외로움의 자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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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은 대지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이야말로 생의 증거다.
시인은 나이를 먹는다는 일을 ‘들풀처럼 흔들리는 일’로 본다.
바람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만, 결코 뿌리를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노년의 품격이다.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 꺾이지 않는 순응이다.
이것은 슬픔이 아니라 성숙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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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초의 철학> 떠도는 존재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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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의 부초처럼.”
이 한 줄은 인생의 자화상이다.
젊을 땐 나무로 살지만,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물 위를 떠다니는 부초가 된다.
그러나 부초는 결코 무력하지 않다.
흘러가되, 가라앉지 않는다.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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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그리움 인간의 심연에서 솟는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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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할 수 없는 원초적 그리움.”
그리움은 과거를 붙잡는 감정이 아니라,
현재를 인간답게 만드는 불씨다.
그 불씨가 꺼지면 우리는 돌이 된다.
김경순 시인의 그리움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삶의 근원을 기억하려는 내적 본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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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의 침전물> 바닥에 남은 인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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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속에 녹아있는 회한의 침전물.”
이 구절은 철학적이다.
시인은 회한을 슬픔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온 증거’이자 ‘시간의 퇴적층’이다.
인생은 흘러가지만, 그 밑바닥엔 늘 침전이 남는다.
그 침전이 바로 인간의 기억이며
인간의 삶의 온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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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음악 감각과 시대의 화해>
이 시의 또 하나의 미덕은 언어의 세련됨이다.
“리피트, 줌인, 오버랩, 아카펠라.”
이 단어들은 젊은 세대의 언어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노년의 감정에 이식하였다.
세대의 간극이 아니라 세대의 화해.
그는 늙어서도 언어의 감각을 닫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한 시인의 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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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깊이 플라톤에서 니체로>
마지막 구절의 질문, “회한의 침전물인가?”
시인은 결코 단정하지 않다.
그것은 플라톤의 ‘완성된 이념’이 아니라,
니체의
영원의 회귀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생의 과정이다.
삶의 진리는 완성 속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는 불완전함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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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의 미학> 시의 구조가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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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어와 형식이 완벽히 일치한다.
낙엽 위의 낙엽, 오버랩된 이미지, 리피트 된 언어.
이 모든 구조가 바로 ‘나이를 먹는 과정’이다.
시의 느림, 중첩, 반복은 곧 시간의 시학(詩學)이다.
형태 자체가 주제의 미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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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온도는 회한이 아니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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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남는 것은 회한이 아니다.
그루터기에 쌓인 잔설처럼, 시인의 마음엔 여전히 따뜻함이 있다.
그는 자신을 용서하고, 세월을 품는다.
이 시는 늙음의 기록이 아니다. 사랑의 회고록이다.
삶을 미워하지 않는 자만이 이런 시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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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유의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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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순 시인의 이 시는 늙음의 슬픔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녀는 쇠락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낸다.
삶이 무너져도, 시는 피어난다.
그것이 ‘지각변동’의 진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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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라
사유가 깊어지는 여정이다.
그 여정 끝에서 우리는 안다.
사라짐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존재의 여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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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이 평론은 단순한 시 해석이 아니라,
한 인간이 나이를 통과하며 배운 삶의 존재에 온도학(溫度學)이라 할 수 있다.
김경순 시인의 시는 늙음을 숙성으로 바꾸고,
시의 사유들은
그 숙성을 사유의 미학으로 증명하였다.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라지지 않으려는 삶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