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박수현- 잃어버린 밤 2》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박수현 시인

1998 김삿갓 문학상 수상

2001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 부천문인협회 회원

현> 복사골 시인협회 회원

현> 시 동인지 <시인들> 회원


잃어버린 밤 2


박수현 시인


여기까지가 당신의 가슴입니다

책상의 반을 가르듯 우리는 오른쪽과 왼쪽

구분을 했습니다


잘 구분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중요하지는 않았는데

참 그게 중요했습니다


중요 부위를 가리라고 하면 우리는 어디를 가릴지 몰라 생각에 잠겼습니다


가슴에서 멀어질수록 생각하는 로딩의 무릎을 쳤습니다

생각하는 갈대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람 부는 대로 살아가다가 당신의 선을 넘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당신의 왼쪽과 나의 오른쪽 어깨가 부딪히는 시련이

우연히 지나갔습니다


생각하면 참 좋은 날이 번개처럼 지나갔으므로

당신의 가슴은 가끔 벽차 올랐습니다


상. 하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심장을 옮길 수 있을까요?


난 그런 밤에 바람 부는 대로 날아가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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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 2》


경계의 시학, 심장의 구분에 대한 고백


박성진 문화평론


<서문>

한 문장의 숨결로 시작되는 밤


박수현 시인의 시는 언제나 ‘사람의 말’로 시작한다.

첫 행 “여기까지가 당신의 가슴입니다”는 단순한 진술 같지만, 이미 경계선을 긋는 선언이다.

‘여기까지’라는 말에는 물리적 거리보다 감정의 깊이가 있다.

그는 이 한 문장으로 사랑과 거리, 감정과 윤리, 몸과 영혼의 한계를 동시에 펼쳐놓는다.


이 시는 밤에 쓰인 시다. 그러나 이 밤은 단순히 어둠의 시간이 아니라,

‘경계를 인식하는 인간의 밤’이다.

사랑은 늘 구분에서 시작되고, 구분을 잃을 때 무너진다.

시인은 그 미세한 틈을 문장으로 포착하였다.



<오른쪽과 왼쪽, 세상의 첫 구분>


“책상의 반을 가르듯 우리는 오른쪽과 왼쪽 구분을 했습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물리적 묘사가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든 구분의 원형이다.

책상은 하나인데, 우리는 그 위에 ‘경계’를 만든다.

그 경계가 때로는 남자와 여자, 나와 너,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벽이 된다.


박수현 시인은 이런 구분의 어리석음과 필연을 동시에 본다.

우리는 나누지 않으면 존재를 인식할 수 없지만,

나누는 순간 이미 ‘전체’를 잃는다.

그게 바로 시의 제목 ‘잃어버린 밤’의 의미다.

그 밤은 사랑의 밤이자, 인간의 경계가 시작된 밤이다.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 그 존재의 모호함>


“잘 구분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은 문학적·윤리적 선언처럼 들린다.

시인은 세상이 요구하는 ‘정체성의 선명함’을 거부한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중요하지 않았는데,

그게 결국 ‘참 중요해진’ 현실을 자조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대목은 젠더의 문제를 넘어,

인간이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 대한 질문이다.

‘구분되지 않는 사람’은 사회가 불편해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시인은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인간의 진짜 모습을 본다.

경계가 흐려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가릴 줄 모르는 인간, 부끄러움의 철학>


“중요 부위를 가리라고 하면 우리는 어디를 가릴지 몰라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구절은 인간의 본능과 도덕의 경계를 다룬다.

우리가 ‘가려야 한다’고 배운 부위는 사회가 정한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묻는다. “그렇다면 진짜 중요한 부위는 어디인가?”


여기서 ‘중요 부위’는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다.

가슴, 생각, 두려움, 그 모든 내면의 부분들이 ‘가려진’ 채 살아간다.

박수현 시인은 그 가려진 마음을 꺼내놓고,

“우리는 어디를 가릴지 몰라 생각에 잠겼다”라고 고백한다.

이 구절은 부끄러움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시적 사유이다.



<가슴과 무릎 사이, 감정과 이성의 거리>


“가슴에서 멀어질수록 생각하는 로뎅의 무릎을 쳤습니다.”

‘로뎅의 무릎’이라는 독특한 표현은

감정에서 이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비유다.

‘가슴’은 느끼는 곳, ‘무릎’은 멈춰 서 있는 곳이다.

가슴에서 멀어질수록 우리는 생각의 늪에 빠진다.

그리고 ‘생각하는 갈대’ 파스칼의 인간관을 떠올리지만,

그 갈대조차 이해할 수 없다고 시는 말한다.

즉,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 모순의 고백이 바로 이 시의 핵심 감정이다.



<바람의 윤리, 넘지 말아야 할 선>


“바람 부는 대로 살아가다가 당신의 선을 넘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이 문장은 사랑의 윤리학을 함축하였다.

사랑은 감정의 자유와 동시에 도덕의 경계 위에 선다.

‘바람 부는 대로’ 살고 싶지만,

‘당신의 선’을 넘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고백은

욕망과 절제가 교차하는 인간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인은 자유를 원하지만, 동시에 책임을 안다.

이 구절은 그 균형 위에서 떨리는 인간의 심장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어깨가 부딪히는 시련 우연의 운명성>


“당신의 왼쪽과 나의 오른쪽 어깨가 부딪히는 시련이 우연히 지나갔습니다.”

이 ‘우연’이야말로 인간의 만남과 이별을 결정한다.

우리는 어깨가 스친 누군가를 운명이라 부르고,

그러나 그 순간은 한 줄기 바람처럼 사라진다.

이 장면은 현실적인 사랑의 이미지다.

신파도, 환상도 없다.

단지 짧은 마찰, 그러나 오래 남는 기억.

그것이 박수현 시인의 미학이다 일상의 마찰에서 피어나는 시가 된다.


“좋은 날이 번개처럼 지나갔으므로”


여기서 시의 시간감이 바뀐다.

좋은 날은 번개처럼 지나가고,

그 짧은 순간을 기억하는 마음이 ‘가슴을 벽차 오르게’ 한다.

‘벽차 오른다’는 표현은 물리적이면서도 정서적이다.

감정이 가슴 안에서 부풀어 오르며 터질 듯한 장면, 이 구절은 지나간 사랑의 여운을

‘물리적 반응’으로 표현하는 드문 시적 언어다.

감정이 몸의 언어로 변한 순간이다.



<하늘과 다리의 질문과 존재의 해체>


“하늘 구분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심장을 옮길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시 전체의 철학적 정점이 되었다.

‘하늘’과 ‘심장’은 각각 방향과 존재의 은유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다고 믿는 세계조차

사실은 ‘구분할 수 없는’ 연속체임을 말한다.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심장을 옮길 수 없듯,

생각 없이 사랑할 수 없고,

사랑 없이 살아갈 수도 없다.

이 질문들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인간 존재의 구조를 해체하는 시적 사유이다.



“난 그런 밤에 바람 부는 대로 날아가고 싶었습니다”


<회한의 결말>


마지막 문장은 가장 인간적이다.

모든 구분과 윤리, 생각과 두려움을 지나

결국 시인은 다시 ‘바람 부는 대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건 체념이 아니다. 자유의 선언이다.

생각의 무게를 견딜 수 없을 때,

시인은 그 무게를 날려버리는 쪽을 택한다.

이 한 줄의 단순한 고백 속에는

인간이 다시 본능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근원적 욕망이 숨어 있다.



<총평> 잃어버린 밤을 되찾은 인간


〈잃어버린 밤 2〉는 결국 ‘경계의 밤’이다.

이 시는 사랑의 서정이 아니다. 인간 존재의 해부이다.

박수현 시인은 감정과 이성, 윤리와 욕망, 남성과 여성,

오른쪽과 왼쪽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을 그린다.

그러나 이 방황이 바로 인간의 생이다.

시인은 그 혼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밤에 바람 부는 대로 날아가고 싶었다”라고 고백하며,

인간이 본래 자유로운 존재임을 선언한다.

이 시는 단순한 사랑의 시가 아니다.

이것은 ‘구분의 문명’에 맞서는 한 개인의 심장의 진술이다.

잃어버린 밤 속에서도, 시인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존재한다.

시인의 가슴은 여전히 바람 부는 대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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