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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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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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노벨열병(熱病) 권력과 명예, 그리고 세계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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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의 이름 앞에서 드러난 제국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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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향한 집착을 드러내며 노르웨이에 외교적, 경제적 보복 가능성을 암시했다는 보도는, 오늘날 세계 정치가 얼마나 ‘명예의 제단’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의 언어 속에는 평화에 대한 염원보다 ‘자신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망이 짙게 배어 있다. 마치 트로피를 원하듯, 그는 노벨상을 ‘성과의 인증서’로 오해한다.
그러나 노벨의 정신은 권력자에게 수여되는 메달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을 증명하는 시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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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평화 담론은 종종 거래의 언어를 닮아 있었다. 한반도 회담이든, 중동의 협약이든, 그는 모든 외교를 ‘딜(deal)’이라 불렀다. 평화의 가치를 흥정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도덕이 아니라 상품이 된다. 노벨위원회가 그를 주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트럼프의 ‘평화’가 진정한 화해인지, 아니면 정치적 자산을 위한 투자였는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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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무게가 아니라 거래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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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수상 불발 시 노르웨이에 대한 외교적·경제적 보복을 시사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농담이나 해프닝이 아니다.
그 말은 한 국가의 외교를 개인의 명예 회복 수단으로 사용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관세 인상, 분담금 조정, 경제 제재 등은 모두 국가 간 협상의 도구이지 개인의 분노를 풀기 위한 채찍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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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마치 제국의 황제가 ‘황금 왕관’을 빼앗긴 뒤 신하에게 복수를 명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제사회는 군주정이 아니다.
노르웨이 한림원과 노벨위원회는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독립의 상징’으로 남아야 한다.
그들의 선택이 압박이나 위협에 흔들린다면, 노벨의 이름은 더 이상 도덕의 상징이 아니라 정치의 장식품으로 전락할 것이다.
트럼프의 언행은 세계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든다. ‘평화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보복’을 언급하는 역설 속에, 우리는 현대 정치의 비극을 본다. 정의가 힘에 밀리고, 윤리가 거래되는 시대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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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이 던진 질문 “그대의 평화는 누구의 눈물을 닦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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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은 단순히 전쟁을 멈춘 자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을 지키며, 폭력의 언어 대신 대화의 언어를 선택한 이들에게 주어진다.
만약 트럼프가 진정한 평화를 이룬 인물이라면, 그 결과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증명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부의 분열, 인종 문제, 언론에 대한 탄압,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은 오히려 그 반대의 증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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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의 정신은 “파괴의 시대를 넘어, 인간이 인간을 다시 신뢰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 상징은 총 대신 악수를, 불신 대신 이해를 택한 자에게만 열려 있다.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욕망은 그 문 앞에서 멈춰야 한다.
그가 받아야 할 것은 상이 아니라 ‘성찰’이다.
노르웨이가 지금 대비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외교적 리스크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 도덕의 균형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것은 한 정치인의 분노가 아니라, ‘양심의 상징’이 오염될 위험이다.
노벨은 우리에게 여전히 묻는다.
“그대의 평화는 누구의 눈물을 닦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권력자는 침묵해야 한다.
침묵 속에서만 진정한 평화가 태어난다.
〈박성진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