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참회에 비친 거울 속의 나 》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참회에 비친 거울 속의 나,

<박성진 문화평론>



<시, 인간의 그림자 속에서 깨어난 자아>


나는 도망쳤다.

사자의 숨결이 등에 닿았고,

아래엔 어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신히 가지 하나를 붙잡았다.


낮이 오면 마음이 타고,

밤이 오면 생각이 식었다.

그렇게 하루가 내 영혼을 조금씩 닳게 했다.


그래도 나는 가지 끝의 꿀을 핥았다.

그 안에 젊음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짧은 행복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달콤함이 사라지자

나는 비로소 알았다.

죽음은 나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참회에 비친 거울 속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참회’라는 이름의 두려운 빛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떠올리게 하는 이 산문시는,

삶의 끝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었다.

그 시선은 냉철하면서도 따뜻하다.

“참회에 비친 거울 속의 나”란 결국 인간이 평생 외면해 온 진짜 자기를 의미한다.


그는 ‘도망’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도망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진실 앞에서의 두려움’이다.

우리는 늘 현실을 살아가지만,

그 현실이 진실이라고 믿는 순간 이미 거짓 속에 빠져 있다.



<사자의 숨결 공포와 생의 본능>


“사자의 숨결이 등에 닿았다.”

이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톨스토이가 말한 인간의 실존적 공포,

즉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의 ‘살아 있음’에 대한 본능적 인식이다.


사자는 죽음의 상징이지만,

그의 숨결이 닿는다는 것은 삶의 마지막 경계에서 느끼는 온기다.

죽음은 차가운 것이 아니라,

뜨겁게 살아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숨이다.



<가지 하나의 존재론과 절망 속의

미세한 희망>


“간신히 가지 하나를 붙잡았다.”

인생은 이 한 구절에 응축되어 있다.

톨스토이는 인생을 절벽 위의 인간으로 그린다.

위에서는 맹수가 달려들고,

아래에서는 죽음이 입을 벌린다.

그 가운데 인간은 ‘한 줄기 가지’를 붙잡은 채 꿀을 핥는다.


이 가지는 믿음이자 자존의 마지막 끈이다.

그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죽음의 낭떠러지 앞에서도,

그는 ‘젊음과 사랑과 짧은 행복’을 느낀다.

인생은 그토록 덧없지만,

그 덧없음이야말로 생의 가장 눈부신 순간이다.



<낮과 밤, 불타는 마음과 식어버린 생각>


“낮이 오면 마음이 타고, 밤이 오면 생각이 식었다.”

이 문장은 인간 내면의 양극적 시간의 진자를 상징한다.

낮은 욕망의 시간이고,

밤은 성찰의 시간이다.

그러나 양자는 늘 엇갈린다.

마음은 탈 때 생각은 식고,

생각이 달아오를 때 마음은 이미 잿빛이다.

이 비대칭의 리듬이 인간의 실존이다.

톨스토이는 그 불일치를 죄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다움의 증거로 본다.

그는 완벽을 추구하지 않았다.

오직 ‘깨달음의 불완전함’을 사랑했다.



<꿀의 유혹 짧은 행복의 미학>


“그래도 나는 가지 끝의 꿀을 핥았다.”

이 한 줄에는 톨스토이의 인간학이 담겨 있다.

그는 죄의식 속에서도 삶을 사랑했다.

그가 추구한 도덕적 완전성은 인간을 부정하는 금욕이 아니라,

삶의 유혹을 직시한 뒤의 겸허한 인정이었다.


꿀은 인생의 단맛이다.

그 안엔 젊음이 있고, 사랑이 있고, 행복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질 때 비로소 인간은 참회의 문 앞에 선다.

그 달콤함이 사라진 자리에

‘거울 속의 나’가 등장한다.



<거울의 철학 자기 인식의 공포>


거울은 언제나 두 개의 세계를 비춘다.

보이는 나와 보이지 않는 나.

참회는 그 둘이 만나는 순간이다.


죽음은 톨스토이에게 공포가 아니었다.

오히려 ‘비추는 빛’이었다.

그 빛은 내면의 허위와 위선을 걷어내고

거울 속 진짜 나를 드러낸다.

“죽음은 나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마지막 구절은 삶과 죽음의 통일을 선언하였다.



<톨스토이의 윤리적 전환 참회의 철학>


이 시는 단순한 종교적 회개의 노래가 아니다.

톨스토이가 "참회록" 이후 말년에 겪었던 도덕적 전환,

즉 내면의 혁명을 보여준다.


그에게 참회는 교회의 교리가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눈뜨기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 물음 앞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유롭다.

그는 도망치던 자에서 돌아보는 자로 바뀐다.



<존재의 역설 죽음 속의 생, 생 속의 죽음>


시의 마지막은 역설이었다.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시작이다.

참회는 고통을 요구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만 ‘진실한 자아’가 태어난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속삭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은 네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거울이다.”



<인간학적 결론 죄와 구원의 대화>


이 시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신학이 아니라 인간학이다.

톨스토이의 신은 하늘 위의 신이 아니다.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안에 깃든 존재이다.

그에게 참회는 신에게 무릎 꿇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용서하는 용기였다.


그 용기가 인간을 구원한다.

그 용기가 죽음의 공포를 이긴다.




거울 앞의 고요한 눈빛


‘참회에 비친 거울 속의 나’는 결국 나 자신이다.

톨스토이의 산문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도 가지 끝의 꿀을 핥고 있지 않은가?”


그 물음은 부끄러움을 넘어서,

살아 있는 자의 고백이다.

참회란 죄를 씻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다시 사랑하는 용기이다.



> “죽음은 나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마지막 구절은 톨스토이의 모든 생애를 요약한다.

그의 문학은 회개의 기록이자,

자신을 향한 영원한 거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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