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안혜초 시인-방끗 웃는 혜초꽃》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방끗 웃는 혜초꽃


서른아홉 그 여름 땡볕에

안혜초 시인


여기가 바닥인가

왜 이리 아드윽한가


바닥이라면 차라리

두 다리 주욱 펴고

방끗 웃어버리자


이젠 더 이상

내려가게 될까 봐

내려가게 될까 봐

가슴을 줄이지 않게 되었으니


나이 서른아홉

이제 올라가야 할 날들만

남았으니


그래, 어쩌면 두 배 세 배

올라가야 할 날들만

남았으니


웃자 웃어버리자

웃으면 웃음이 따라오고

하늘도 기꺼이 복에

복을 주시리니


몸도 맘도 온통 웃음꽃으로

활짝 이 활짝 이 피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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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끗 웃는 혜초꽃》 평론


《자화상의 미소, 꽃으로 피어난 자기 구원의 시학》


박성진 문학평론



<서문> 바닥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자화상


안혜초 시인의 〈방끗 웃는 혜초꽃〉은 단 한 송이의 꽃이 곧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순간의 시다.

그 꽃은 "혜초"의 이름처럼, 세속을 건너 깨달음의 길 위에 선 존재의 은유이며, ‘방끗 웃는다’는 표현은 고통의 절정에서 피어나는 자각의 미소다.

이 시는 인생의 ‘바닥’을 절망의 끝이 아니라, 생명의 뿌리가 내려지는 자리로 변환시킨다.




<첫 행의 물음 “여기가 바닥인가”>


시의 첫 행은 고요한 절규다.

“여기가 바닥인가”라는 물음에는 자조와 통찰이 동시에 섞여 있다.

바닥이라는 단어에는 ‘추락’의 의미와 함께 ‘받침’, ‘기초’, ‘시작점’의 의미가 공존한다.

시인은 이 양가적 언어를 통해,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오히려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을 엿본다.

“왜 이리 아드윽한가”라는 구절의 발음 또한 의도적이다. ‘아드윽’의 모음은 낮고 느리게 울려, 심연에서 올라오는 내면의 떨림을 시청각적으로 드러내었다.




<‘차라리’의 선언 절망의 수용이 곧 자유다>


“바닥이라면 차라리 / 두 다리 주욱 펴고 / 방끗 웃어버리자.”

이 대목은 체념이 아니라 전환의 선언이다.

‘차라리’라는 단어에는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식적 결단이 담겨 있다.

바닥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의자 삼아 다시 웃어버리는 행위는 자기 치유의 첫걸음이다.

이때 ‘방끗’은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존재가 다시 피어나는 소리 없는 탄성이다.




<내려감의 끝에서, 두려움의 소멸로>


“이젠 더 이상 내려가게 될까 봐 / 가슴을 줄이지 않게 되었으니.”

여기서 화자는 이미 ‘두려움의 끝’을 통과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평온을 가져온다.

불안의 깊이를 다 살아낸 사람만이 ‘줄이지 않게 된 가슴’을 갖는다.

이것은 삶의 밑바닥을 경험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적 평형 상태이다.




<서른아홉 인생의 변곡점에서 맞이한 자화상>


“나이 서른아홉.”

짧은 한 행이지만 이 시의 심장이다.

청춘의 열기와 중년의 무게가 교차하는 나이,

이제는 ‘올라가야 할 날들만 남았다’는 말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스스로를 일으키는 주문이다.

시인은 이 나이를 ‘내려감의 끝에서 맞는 상승의 문턱’으로 그린다.




<배가된 의지 인간의 성장 공식>


“그래, 어쩌면 두 배 세 배 / 올라가야 할 날들만 남았으니.”

여기서 ‘두 배 세 배’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정신의 밀도를 뜻한다.

고통의 깊이만큼, 인간은 성장의 높이를 얻는다.

이 문장은 희망의 산술학이다. 절망의 강도가 클수록 복원의 에너지도 강하다는 인간 존재의 공식을 시어로 압축했다.




<웃음의 철학 혜초꽃의 미소가 피어나는 순간>


“웃자 웃어버리자 / 웃으면 웃음이 따라오고.”

이 반복은 주문이자 수행이다.

웃음은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의 시작’으로 정의된다.

이 대목에서 시인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언어의 수행자’로 변모한다.

혜초꽃은 이웃을 향한 미소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미소다.



<하늘의 응답 신앙 아닌 신심의 복>


“하늘도 기꺼이 복에 / 복을 주시리니.”

이 부분은 종교적 기도의 어조를 띠지만, 그것은 초월적 신에게의 청원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신성’에 대한 확신이다.

시인의 ‘하늘’은 외부의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이 지닌 우주적 깊이이다.

‘복에 복을 주시리니’는 결과가 아니라, 웃음을 행하는 자가 이미 복된 존재라는 깨달음의 언어다.




<몸과 마음의 통합한 웃음꽃의 전인적 개화>


“몸도 맘도 온통 웃음꽃으로.”

여기서 시는 물리적 세계로 확장된다.

정신의 회복이 신체로 번지고, 내면의 기쁨이 외형의 빛으로 피어난다.

안혜초 시인에게 ‘꽃’은 단순한 미의 상징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활짝 열리는 생의 상태다.

이 웃음꽃은 자화상이며 동시에 생존의 선언문이다.



<혜초꽃의 의미와 방랑의 끝에서 웃는 깨달음>


‘혜초’는 실존 인물의 이름이자 시인의 자의식이다.

불교의 혜초가 세계를 유람하며 진리를 찾았듯, 안혜초 시인은 내면의 사막을 건너며 ‘방끗 웃는 자아’를 발견한다.

〈방끗 웃는 혜초꽃〉은 결국, 인생의 순례 끝에 도달한 ‘내면의 성전’이다.

웃음은 그 성전의 종소리다.



<결론>

고통 이후의 빛, 웃음으로 피어난 인간의 초상


이 시는 인생의 바닥에서 시작해 웃음으로 끝난다.

처음의 절망은 한 송이의 웃음꽃으로 변하고, 그 꽃은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자화상이다.

〈방끗 웃는 혜초꽃〉은 “나는 이제 내 안의 꽃으로 피어난다”는 인간적 선언이다.

이것은 단순한 낙관의 노래가 아니다. 상처를 통과한 존재의 성숙한 미소다.

안혜초 시인의 웃음은 억지의 미소가 아니라, 고통을 알기에 피어난 ‘성숙의 미학’이다.

그 미소는 우리 모두가 결국 닿아야 할 인간성의 마지막 빛이다.




〈방끗 웃는 혜초꽃〉은 고통의 바닥에서 피어난 자기 자화상이며,

웃음을 통해 존재를 새로 쓰는 시다.

안혜초 시인은 혜초꽃이라는 상징으로 ‘삶의 수행’을 완성했다.

그 미소는 인생의 최종 개화이다. 가장 조용한 승리의 빛이며

세상이 환하고 밝게 웃는 혜초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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