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오선 이민숙-비를 타고 흐르는 음악 》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 비를 타고 흐르는 음악》


오선 이민숙


물기 젖은 그대 목소리가

솔 잎 향으로 흘러들어

잔잔한 은파로 퍼져나가면


물안개로 피어오른 그대는

빗방울 무게에 얹혀

벼르고 있던 음표로 뛰어내린다


포르테 포르티시모

점점 강하게 주저 없이 달려와

직립으로 가슴에 꽂히면

단단한 갈증은 통쾌하게 부서지고

내리는 빗소리 합주곡이 된다


1악장을 지난 빗줄기는

모데라토 안단테 안단티노

점점 느린 선율로 내 마음 두드리고


곱다시 빠른 3악장을 연주하면

섬섬옥수 얼싸안고

경쾌하게 춤추리

이 선율이 사라질 때까지

저 빗소리가 멈출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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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타고 흐르는 음악,

물의 리듬으로 작곡된 교향 시>


박성진 문화평론



<서문> 빗방울이 언어로 변하는 순간


이민숙 시인의 시는 듣는 순간부터 낯선 아름다움이라 말하고 싶다.

비라는 자연현상이 시인의 손끝에서 음악으로 변한다.

이 시의 제목처럼, 비는 단순한 소리의 배경이 아니라 시적 리듬의 근원이다.

시인은 비를 묘사하지 않는다.

비를 연주한다.


즉, 자연이 내리는 악보를 마음의 오선에 옮겨 적는 작곡가처럼,

이민숙 시인은 언어로 소리를 빚어내는 음악적 시인이다.

시의 흐름은 감정의 파장처럼 서서히 밀려왔다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터지고, 다시 고요히 가라앉는다.

이것은 음악의 호흡, 바로 알레그로에서 안단테로 이어지는 정서의 리듬이다.




<물기 젖은 목소리 감정의 첫 음>


“물기 젖은 그대 목소리가 / 솔 잎 향으로 흘러들어”

이 구절에서 시인은 인간의 목소리를 자연의 향기로 변환시킨다.

목소리가 향기가 되고, 소리가 냄새로 이어지는 감각의 전이는

마치 음악이 시각적 이미지로 환원되는 순간과도 같다.


여기서 ‘그대’는 단순한 타인이 아니라, 화자의 내면에 스며든 감정의 화신이다.

그대의 목소리는 곧 마음의 떨림이다.

그것이 솔잎을 스치는 바람처럼 진동한다.

비가 오면 대화는 흐려지지만, 이 시에서는 오히려 그 목소리가

비의 파장과 함께 더 선명히 들린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말하는 감정의 공명이다.




<은파의 확산 리듬이 공간으로 번지다>


“잔잔한 은파로 퍼져나가면”

이 한 줄은 마치 피아노 페달을 살짝 밟은 듯한 부드러운 잔향을 품고 있다.

‘은파’는 단순한 물결이 아니라, 감정의 파동이다.

이 시에서 리듬은 단순히 언어의 반복이 아니라,

정서가 울리고 확장되는 음악적 호흡의 표현이다.


비가 내려 공간을 젖히듯, 감정 또한 그 안에서 번진다.

이민숙 시인은 이 과정을 ‘소리의 시각화’로 옮겨 놓았다.

따라서 이 시를 읽는 일은 마치 콘서트홀에 앉아

서정의 현악 4중주를 듣는 일과 같다.




<물안개로 피어오른 그대 형체 없는 존재의 연주>


‘물안개로 피어오른 그대’는 현실이 아니라 감정의 화신,

혹은 음표로 태어난 존재다.

‘빗방울 무게에 얹혀 / 벼르고 있던 음표로 뛰어내린다’

이 장면에서 시는 정적에서 동적으로, 관조에서 폭발로 넘어간다.


‘벼르고 있던’이라는 표현은 연주를 앞둔 바이올리니스트의 손끝 같은 긴장감이며

작곡가가 첫 음을 찍기 전의 숨 고르기이다.

시 속의 ‘그대’는 결국 음악 그 자체이다.

‘빗방울’은 그 음악을 실어 나르는 매개체이다.




<포르테 포르티시모 감정의 절정과 폭발>


“포르테 포르티시모, 점점 강하게 주저 없이 달려와 / 직립으로 가슴에 꽂히면”

이 대목에서 시의 리듬은 폭풍처럼 바뀐다.

감정의 크레셴도가 절정에 달하고,

비는 단순히 내리는 물이 아니라 감정의 낙하로 변한다.


‘직립으로 가슴에 꽂히면’이라는 문장은

비와 인간, 자연과 감정이 하나로 합쳐지는 격렬한 교차점이다.

그 순간, 시는 언어의 소리를 넘어 음악의 물질성을 획득한다.

‘단단한 갈증이 부서지고 / 내리는 빗소리 합주곡이 된다’

이때 비는 더 이상 자연의 현상이 아니라,

시인의 심장이 만들어내는 리듬, 즉 영혼의 교향곡이다.



<악장의 완결 시의 구조 속 음악적 설계>


‘1악장을 지난 빗줄기’라는 표현은 놀라운 발상이다.

이민숙 시인은 시의 구조를 음악적 악장 구성으로 설계했다.

첫 악장은 격정, 두 번째 악장은 서정, 마지막 악장은 해방의 리듬으로 흐른다.

그녀는 언어를 악보처럼 다루며, 감정의 전개를 음악의 형식으로 치밀하게 엮는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시가 더 이상 정적인 문학 장르가 아니라

움직이는 예술, 시간의 예술로 변모했음을 실감하게 해 준다.




<모데라토 안단테 안단티노, 느림의 미학과 정서의 숨결>


‘모데라토 안단테 안단티노’

세 개의 템포 표시가 한 줄 안에 들어있다.

이것은 시인이 의도한 시간의 조율의 장치다.

비가 점점 느려지듯이 감정도 속도를 늦추어 간다.


이 구절에서 리듬은 외부 세계의 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호흡으로 전환되었다.

‘점점 느린 선율로 내 마음 두드리고’

이 문장은 피아노의 여린 음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삶의 템포가 조금 느려질 때,

비로소 마음의 소리가 또렷이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면으로 스며드는 빗소리 고요의 리듬>


시의 중반부는 음악적 ‘내려놓음’의 순간이다.

폭발이 지나간 자리에는 고요가 찾아온다.

‘내 마음 두드리고’라는 표현은

외부 세계의 빗소리가 내면의 벽을 두드리는 정서적 공명이다.


이때 독자는 듣는 자에서 들려지는 자로 바뀐다.

시인은 이 전환의 순간에

‘자연이 인간을 연주한다’는 역설을 던진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의 핵심 사유다.



<3악장의 춤>

생명의 리듬이 되살아나다


‘곱다시 빠른 3악장을 연주하면 / 섬섬옥수 얼싸안고 / 경쾌하게 춤추리’

이 부분은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느림과 정적을 지나 다시 찾아오는 활력의 리듬이다.

비는 더 이상 우울이나 고독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박동이다.

희망의 알레그로로 바뀐다.


‘섬섬옥수’는 단순한 손의 묘사가 아니라,

서로 맞잡는 존재의 연대감이다.

비가 이어주는 인간과 자연, 음악과 시의 화해이다.




<소멸의 코, 여운의 미학>


“이 선율이 사라질 때까지 / 저 빗소리가 멈출 때까지”

이 부분은 음악의 코다, 즉 여운의 마무리인 것이다.

이민숙 시인은 끝맺음을 하지 않는다.

시인은 음악처럼 사라지며 남는 여운의 공간을 남기어 두었다.


이 마지막 행에서 시는 멈추지 않는다.

독자의 마음속에서, 그 여운이 반복 재생된다.

그것은 언어의 잔향이 아니라, 감정의 지속이다.

마치 빗소리가 멎어도 귀 안에는 계속 그 리듬이 남아 있는 것처럼

연상시킨다.




<시는 결국 음악이 된다>


〈비를 타고 흐르는 음악〉은 시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교향곡이다.

그 안에는 리듬, 템포, 다이내믹, 여운, 정서의 조화가 모두 들어 있다.

시인은 음악을 흉내 내지 않는다. 시인 자신이 피아니스트이며

음악인이다.

음악적 서정시를

잘 표현하였다.


시인의 시 속에서 언어는 음표가 되고,

문장은 악보가 되었다. 감정은 선율이 되었다.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독자의 마음속에는

비가 아니라 하모니가 내린다.



〈비를 타고 흐르는 음악〉은 시적 언어가 음악의 리듬을 완전히 흡수한 드문 작품이다.

감정의 미세한 떨림, 리듬의 조절, 물성의 은유가 정교하게 결합되어 있다.

비는 이 시에서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다.


이민숙 시인은 시로 증명하였다.

음악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되살려 읽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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