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국문학 박사 김민정 시조-"들었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성균관 대학교 국문학 박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상임이사 활동


김민정 시조


들었다


물소리를 읽겠다고

물가에 앉았다가


물소리를 쓰겠다고

절벽 아래 귀를 열고


사무쳐 와글거리는

내 소리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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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의 철학, 파도의 내면을 듣다》


박성진 문화평론




<들음의 본질, 존재를 여는 청취의 시학>


이 짧은 시조는 단 세 연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안에는 한 인간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동시에 마주하는 깊은 사유가 숨어 있다.

‘들었다’는 단순한 감각의 기술이 아니다. 삶과 존재를 듣는 태도, 즉 철학적 청취의 기록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소리를 듣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김민정 시인시조는 ‘들음’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기 성찰의 순간, 그리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요에 접근한다.

이 시조는 짧지만, 그것은 마치 한 방울의 물에 온 세상이 비치는 것과 같은 깊이를 품는다.




<물소리를 ‘읽겠다’는 선언 — 자연의 언어를 해독하는 시조>


시조의 첫 행 “물소리를 읽겠다고”는 이미 시적 행위의 전환점이다.

보통 우리는 물소리를 ‘듣는다’고 말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읽겠다’고 한다.

이 표현은 소리를 단순한 청각의 차원이 아니라 언어와 기호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문학적 선언이다.

물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흐름 속에는 ‘흐름의 언어’가 있다.

시인은 그 흐름을 읽고자 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대화, 존재와 인식의 교감이다.

결국 이 시조는 물을 읽는 것이 아니다.

물을 통해 자신을 읽는 내면의 독서 행위로 해석된다.

이 장면은 이미 ‘자연 속의 철학자’로서의 시인을 보여준다.




<물가에 앉는 자세 — 겸손과 고요의 철학>


“물가에 앉았다가”라는 단순한 행위는 존재의 윤리적 전환이다.

앉는다는 것은 낮춤이다.

물가에 앉는다는 것은 자신을 자연의 경계로 들여오는 일이다.

인간은 서 있을 때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만, 앉을 때 세상과 대화한다.

시인은 물의 높이에 맞춰 자세를 낮춤으로써 겸허의 철학을 실천한다.

이것이 진정한 ‘들음’의 첫 단계이다.

세상의 진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높이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 고요한 앉음 속에서 시인은 ‘물소리’보다 더 근원적인 존재의 진동을 느낀다.




<물소리를 ‘쓰겠다’는 욕망 — 창조의 언어로의 전이>


두 번째 연에서 시인은 ‘읽는다’에서 ‘쓴다’로 나아간다.

이는 청취에서 창조로의 진화이다.

시인은 물의 소리를 흡수한 뒤 언어로 변환한다.

즉, 시인은 자연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존재다.

‘물소리를 쓰겠다’는 것은 곧 자연을 내면화하고 다시 세상으로 되돌리는 예술의 순환이다.

이것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세계의 재탄생을 위한 언어의 의식이다.




<절벽 아래 귀를 열다 — 심연의 청취, 경계의 초월>


‘절벽 아래 귀를 열고’는 시의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다.

절벽은 생명과 죽음, 소리와 침묵의 경계이다.

그 아래서 귀를 연다는 것은 자신을 두려움의 밑바닥까지 내려놓겠다는 결단이다.

이 귀는 육체의 기관이 아니라, 영혼의 창이다.

절벽 아래에서의 청취는 곧 내면의 문을 여는 행위이며, 그 순간 시인은 인간의 심연과 마주하였다.




<사무쳐 와글거리는 정적과 동적의 교차>


‘사무친다’는 고요의 언어, ‘와글거린다’는 소란의 언어이다.

이 두 단어의 결합은 내면의 폭풍을 형상화한다.

시인은 고요와 소란이 동시에 존재하는 인간의 복합적 심리를 포착했다.

그 와글거림은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자기 내면의 파도소리이다.

즉, 내면의 소음 속에서 존재의 진동을 들은 것이다.




<물소리와 파도소리의 대비와 존재의 두 얼굴>


물소리는 유순하고 부드럽지만, 파도소리는 격렬하고 단단하다.

그러나 두 소리는 같은 물에서 태어난다.

이것은 고요와 격동이 하나임을 뜻한다.

삶 또한 잔잔함과 격랑을 오가며 존재한다.

시인은 물소리를 들으려다 파도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자연을 넘어 자기 내면의 불안과 생의 진실을 마주한 순간이 되었다.




<“내 소리만 들었다” 존재의 자각과 고독의 결론>


마지막 구절은 절망이 아니다. 자각이다.

시인은 물의 소리를 들으려다 결국 자신의 소리를 들었다.

자연의 소리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존재는 비로소 깨어난다.

이것이 바로 시적 들음의 완성이다.

물은 사라졌으나, 시인의 내면에는 자기 존재의 울림이 남는다.




<들음의 윤리 언어 이전의 경청>


이 시조에서 ‘듣는 행위’는 삶의 태도이자 윤리이다.

시인은 말하기보다 먼저 들으려 한다.

들음은 타자에 대한 존중이자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물소리를 듣는 일은 곧 세상을 존중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다.

"들었다" 시는 주장보다 침묵을, 언어보다 감응을 선택한다.




<침묵 속의 소리 부재의 현존>


이 시는 물소리를 들었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소리만 들었다”라고 한다.

이 역설은 ‘무(無)의 사유’를 닮았다.

들리지 않음 속에서 들음이 완성된다.

침묵이야말로 가장 큰 울림이다.

시인은 부재 속에서 존재의 현존을 발견한다.




<결론: 물소리의 끝에서 인간소리를 듣다>


〈들었다〉는 물의 언어로 시작해 인간의 언어로 끝난다.

자연의 울림을 들으려던 시인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듣는다.

‘물’은 삶의 비유, ‘소리’는 존재의 흔적이다.

이 짧은 시조는 인간 자각의 과정, 청취의 철학, 존재의 성숙을 완성한다.

김민정 시인의 시적 들음은 감상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깨닫는 순간의 기록이다.

시인이 들은 것은 세상의 물소리가 아니라,

파도처럼 출렁이는 자기 존재의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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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조 시인 프로필


김민정 시인

대한민국 대표 여성 시조시인 중 한 명으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어의 감각과 사유의 깊이로 평가받는다.


수상 경력


2024: 제37회 대한민국예술문화대상


2023: 제1회 박양균문학상


2023: 제14회 한국여성문학상


2021: 제34회 성균문학상


2021: 제22회 월하문학상


2021: 제34회 대한민국예술문화공로상


2017: 제22회 선사문학상


2017: 제4회 김기림문학상


2017: 제16회 시조시학상


2017: 계간문예 《다층》 ‘올해의 좋은 시조 베스트 10’


2013: 제5회 열린 시학상


2007: 제14회 한국문협 작가상


2007: 제16회 나래시조문학상


1999: 제12회 성균문학상 우수상


1999: 제7회 한국공간시인상 본상



시 세계 특징

김민정 시인의 시조는 청각적 이미지와 존재론적 사유가 결합된 언어의 결정체로, ‘들음’ ‘고요’ ‘자성(自省)’ ‘자연과의 합일’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현대 시조의 형이상학적 깊이를 보여준다.

시인의 시어는 단정하면서도 투명하며, 동양적 사유와 현대적 감각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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