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다정 이인애-구절초》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구절초


다정 이인애


저 산구릉에서 춤추는

연보랏빛 별무리

어느 선녀님이 흘린

눈물방울 모두어

그토록 청초하며

은은한 향기 뿜는가


대낮에 놀러 나온 별님

이 땅에 매료되어

하늘로 돌아가기 싫어

숨어 살고 있었나

꽃잎마다 가득한

구구절절 못다 한 사연들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산천 변했어도

우리 어머니 따사로운

미소 머금은 꽃

신비스러운 비밀이야기

귀 기울여 보리라


어느 가을,

하늘에 별똥별 흩어져 내린 자리

꽃잎마다 아로새겨 놓은

아름다운 흔적들

그리운 추억담아

불꽃으로 피어난 구절초


***********


구절초, 별의 눈물로 피어난 다정의 시학


박성진 문화평론




이인애 시인의 시는 언제나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그의 언어는 격하지 않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다.

〈구절초〉는 그런 시인의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을의 들길에 피어 있는 한 송이 꽃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눈물의 철학이 함께 깃들어 있다.

시를 읽다 보면 향기가 피어나고, 그 향기 속에서 사람의 숨결이 느껴진다.

이 시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말하고, 슬픔을 통해 삶의 품격을 말한다.




산의 능선을 따라 피어난 구절초를 시인은 ‘연보랏빛 별무리’라 부른다.

그 표현 하나로 세계가 열린다.

하늘의 별이 땅으로 내려와 춤추는 듯한 장면.

그건 단순한 꽃이 아니다.

하늘의 언어가 땅에서 다시 태어난 순간이다.

연보랏빛이라는 색은 세월의 빛, 사라진 것들의 그늘 속에서 피어난 부드러운 기억의 색이다.

시인은 자연의 장면을 그리지만, 그 안에서 이미 ‘존재의 기원’을 묻고 있다.

우리가 왜 슬퍼하고 왜 그리워하는가, 그 물음이 이미 꽃잎 속에서 흔들린다.




“어느 선녀님이 흘린 눈물방울 모두어”

이 한 줄은 시의 신화적 중심이다.

선녀의 눈물은 인간의 눈물이 아니다.

그건 하늘이 흘린 눈물이다.

구절초는 바로 그 눈물이 땅에 닿아 피어난 존재다.

그래서 이 꽃은 단순히 계절의 장식이 아니다.

하늘과 인간의 사이에 놓인 슬픔의 증언이다.

시인은 눈물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는 눈물을 향기로 바꾸어 놓는다.

슬픔이 세상을 맑게 하는 힘, 그게 바로 이 시의 철학이다.




“그토록 청초하며 은은한 향기 뿜는가.”

청초하다는 말은 이 시의 마음이다.

청초함은 단순한 깨끗함이 아니다.

세상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순한 마음으로 남는 태도다.

이 시의 구절초는 상처를 품고 있지만, 결코 짓무르지 않는다.

그 향기는 절제된 사랑의 냄새,

끝까지 고요히 피어나기를 선택한 존재의 품격이다.

시인은 화려함보다 담백함을 택하였다.

그 조용한 빛이야말로 진짜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대낮에 놀러 나온 별님.”

이 구절은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가장 사랑스럽다.

별은 밤의 존재인데, 그는 낮에 나온 별을 그린다.

하늘의 별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낮의 햇살 속에서 피어난다.

이건 신성한 것이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즉, 구절초는 하늘의 빛이 인간의 정으로 변한 형상이다.

이 시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신성과 인간성이 서로를 껴안고, 하늘과 땅의 거리가 사라지는 장면.

그 장면 속에서 시인은 말없이 미소 짓는다.




“하늘로 돌아가기 싫어 숨어 살고 있었나.”

이 대목은 사람의 정과 숨결이 강하게 느껴진다.

구절초는 하늘의 존재지만, 인간 세상에 머물고 싶어 한다.

세상이 어지럽고 슬퍼도,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하늘보다 따뜻한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 꽃을 ‘머무는 존재’로 그린다.

돌아가지 않고 머무는 사랑, 그것이 다정한 시인의 근원이다.




“꽃잎마다 가득한 구구절절 못다 한 사연들.”

이 한 줄은 인간의 역사를 품고 있다.

꽃잎은 시인의 마음이고,

그 안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접혀 있다.

누군가의 웃음, 누군가의 기다림, 누군가의 이별.

그 모든 이야기가 꽃잎 속에 들어 있다.

그래서 이 시는 한 사람의 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구절초는 그렇게 공동의 기억이자, 집단의 그리움으로 피어난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산천 변했어도.”

시간이 지나도 시인의 마음은 그곳에 머문다.

고향은 사라졌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기억 속에는 어머니의 미소가 있다.

“우리 어머니 따사로운 미소 머금은 꽃.”

이 구절에서 시는 절정을 맞는다.

구절초는 결국 어머니의 얼굴이다.

이 시의 모든 정서가 향하는 곳은 ‘어머니’라는 이름이다.

그 이름은 곧 세상 모든 다정함의 뿌리다.

어머니의 미소 속에 시인은 세상을 이해한다.

그 미소는 생명을 이어주는 기도이자, 세월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신비스러운 비밀이야기 귀 기울여 보리라.”

이 문장은 시인의 태도다.

시인은 세상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귀를 기울인다.

듣는다는 건 곧 사랑한다는 뜻이다.

구절초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언어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것이 이 시의 윤리이자 미학이다.

경청의 시학, 그것이 이인애 시인의 시가 지닌 가장 고운 품격이다.




“하늘에 별똥별 흩어져 내린 자리.”

별똥별은 찰나의 존재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구절초가 피어난다.

즉, 사라짐이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진다.

이건 자연의 순환이자, 삶의 은유이다.

죽음의 자리에 생명이 자라고,

이별의 끝에서 사랑이 다시 피어난다.

그게 바로 시인이 본 우주의 질서이다.




“꽃잎마다 아로새겨 놓은 아름다운 흔적들.”

흔적은 사라짐의 증거이지만, 동시에 존재의 증거다.

시인은 그 흔적을 귀하게 여긴다.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

그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무늬다.

구절초의 꽃잎 하나하나에 그 흔적이 있다.

그건 잊힘을 거부하는 인간의 의지이자,

기억을 지키는 시의 사명이다.




“그리운 추억담아 불꽃으로 피어난 구절초.”

이 마지막 구절은 참으로 눈부시다.

불꽃은 소멸이자 열정이다.

꽃이 불꽃으로 피어난다는 건,

자신의 생을 태워 세상을 밝히겠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뜨겁고 아름다운 다짐인가.

구절초는 결국 ‘불타는 순수’로 완성된다.

시인은 삶의 끝에서도 타오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시인의 길이며, 사랑의 길이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구절초는 그저 들꽃이지만,

그 속에 인간의 생애와 하늘의 정서가 다 들어 있다.

이인애 시인은 꽃을 통해 인간을 말했고,

눈물을 통해 사랑을 말했다.

그의 시는 요란하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향기처럼, 미소처럼, 그리고 구절초처럼.


구절초는 단 한 송이 꽃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건 우리 모두의 마음이 피어나는 순간이다.

누군가를 떠올리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결국 그리움이 향기가 되어 세상을 감싸는 그 순간.

그때 우리는 비로소 이해한다.

왜 시인이 구절초를 노래했는지,

왜 그 향기가 숨결처럼 느껴지는지,

시가

피어나는 순간을 한 번에

포착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자연의 시가 아니라 다정한 시이다.

꽃의 시가 아니라 인간의 시이다.

눈물로 시작해 향기로 끝나는 이 시는,

삶의 슬픔을 가장 고운 빛으로 바꿔 놓는다.

그리고 그 향기 속에서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 “하늘에서 온 눈물이 이 땅에서 사람의 미소가 되었다.”

이 한 문장이 바로,

이인애 시인의 〈구절초〉가 세상에 남긴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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