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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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귀향, 83년 만의 시적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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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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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아래로 돌아온 시인의 이름
도쿄의 하늘 아래, 릿쿄대 교정에 한 시인의 이름이 다시 불렸다.
윤동주, 별과 십자가를 품고 떠난 청년 시인이 83년 만에 자신이 걸었던 일본 땅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피고문자의 신분이 아니라, 시로 증언한 인류의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윤동주 시인은 1942년 봄, 릿쿄대 문학부에 입학했다.
당시 제국의 그늘 아래서 윤동주는 ‘쉽게 써진 시’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꺼내 썼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 구절은 이제 릿쿄대 교정의 돌비 위에 새겨졌다.
한글과 일본어로 병기된 시구는 한 시대의 상처를 넘어 인간의 언어가 가진 가장 순수한 진실의 증거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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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써진 시’가 남긴 어려운 질문
윤동주의 시는 언제나 ‘쉬움’이라는 단어로 시작하지만, 그 쉬움의 본질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왜 부끄러운가’, ‘나는 어떤 시대의 자식인가’.
그는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았다.
도쿄의 하늘 아래에서, 그는 조선인으로,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지키려 했다.
릿쿄대의 학생들은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 “이 학교에도 윤동주 시인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한마디의 물음이 80년의 침묵을 깨뜨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시는 교정의 한가운데에 기념비로 돌아왔다.
문학은 때로 기억의 발굴 작업이다.
그의 짧은 유학은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기억의 복권으로 완성되었다.
윤동주는 더 이상 잊힌 유학생이 아니라, 일본 학생들 스스로가 찾아낸 양심의 스승으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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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새겨진 시, 인간의 윤리로 새겨지다
이번 제막식의 주제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윤리의 귀환, 시의 복권이었다.
릿쿄대 총장은 “그의 존재는 릿쿄대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이 말속에는 단순한 역사 복원이 아닌, 인간의 가치관을 회복하려는 결의가 담겨 있다.
윤동주의 시가 일본 대학 교정에 새겨졌다는 것은,
가해의 역사 위에서 피해자의 시를 다시 읽는다는 의미를 넘어,
가해와 피해 모두가 인간으로 다시 만나는 자리였다.
시인의 언어는 국적을 넘어섰다.
그의 시가 묻는 부끄러움은 일본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인간 모두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그가 남긴 ‘쉽게 써진 시’는 결국 시를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인간답게 사는 일이 얼마나 고된가를 묻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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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쿄대의 사죄 아닌 존경
이번 제막식은 사죄의 형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존경의 형태였다.
윤동주는 그 어떤 정치적 언어보다 인간의 존엄을 증언한 시인이었다.
릿쿄대 학생들이 그의 시를 낭독하며 “그의 재학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문학이 외교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문학은 시간이 흘러도 진실을 잊지 않는다.
한 시대의 폭력이 그를 지웠지만, 시는 그를 다시 세웠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복권이며, 언어의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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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 일본어로 번역되다
이번 기념비에는 ‘쉽게 써진 시’가 한글과 일본어로 병기되었다.
이는 단순한 번역이 아니다.
그가 쓰지 못했던 일본어로, 이제 그의 시가 일본 땅에서 공식 언어로 받아들여졌다는 상징이다.
억압의 언어였던 일본어가 이제 윤동주를 기리는 언어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역사적 역전이며 시적 정의의 실현이다.
시인의 유해는 후쿠오카 하늘 아래 묻혔지만,
그의 언어는 도쿄의 하늘 위에 새겨졌다.
죽음의 땅에 생명의 언어를 세우는 일,
그것이 윤동주의 부활이며 83년 만의 시적 귀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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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귀향, 인간의 기억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 한 일본 교수는 말했다.
“윤동주의 시에는 아직도 젊은 별의 떨림이 있습니다.”
그 별의 떨림은 여전히 세계를 흔든다.
그가 남긴 시 한 편은 이제 하나의 문명적 언어가 되었다.
윤동주는 돌아왔다.
하지만 그가 돌아온 자리는 비석이 아니라 양심의 자리였다.
그가 남긴 시는 여전히 묻고 있다.
“나는 왜 부끄러운가.”
그 질문은 이제 릿쿄대 학생들의 가슴에서도, 우리의 심장에서도 울린다.
83년 만에 돌아온 윤동주의 시는 한 사람의 귀향을 넘어, 인류 보편의 회복이었다.
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오랜 시간 동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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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윤동주의 시가 우리에게 남긴 것
윤동주 시인은 다시 살아났다.
그의 부끄러움은 이제 세계의 양심이 되었고,
그의 시는 국경을 초월한 인류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를 기리는 일은 그를 신격화하는 일이 아니다.
그의 시처럼, 부끄러움을 잃지 않는 인간이 되는 일이다.
83년이 걸렸지만, 우리는 이제야 제대로 그를 맞이한다.
“윤동주 선배님, 83년 만입니다.”
그 문장은 오늘 우리 시대의 시적 고백이며,
윤동주가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이기도 하다.
박성진 문화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