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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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푸른데 쉬어 갈 곳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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卿山 모상철
지친 몸 쉬어 날까
날갯짓 멈추고
철옹성 푸른 빛깔 지붕 위에서
쉬어 보련다
청동 지붕 안에 잘난 척하는 인사들
무표정 언성 높이고
높아진 언성 지키랴
눈 안에 담을까 노심초사
한강 밤섬에서 쉬어가자
흐르는 물결 따라
가슴을 실어 보내고
높아진 하늘 아래
마음을 올려놓는다
여의도 하늘 아래 욕심쟁이들
눈이 멀고 귀가 막혀서
제 살 아프지 않으니 장소불문
안하무인 목소리만 커져간다
에헤라 디여 스스락거리는
갈바람에 소리쳐 보자
파란 하늘 위에 얼씨구절씨구
목청을 실어 가을 노래나 해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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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 쉼의 철학과 풍자의 시학》
박성진 문화평론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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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서 찾는 인간의 쉼
모상철 시인의 〈하늘은 푸른데 쉬어 갈 곳 없으랴〉는 한 폭의 하늘 아래 서 있는 도시인의 자화상이다.
“하늘은 푸른데”라는 첫머리의 구절은 고전 시조의 여백과 해학을 품은 말투이며, 그 속엔 피로한 현실의 땀 냄새가 배어 있다.
이 시조는 휴식(休息)을 노래하지만, 단순한 안식의 노래가 아니다. ‘쉴 곳 없음’의 현실적 비애와 ‘쉬고자 하는 영혼의 염원’이 교차하였다.
<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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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날개, 그리고 푸른 지붕 위의 고독
“지친 몸 쉬어 날까 / 날갯짓 멈추고”에서 시인은 도시 속 인간을 ‘새’의 이미지로 치환한다.
날개를 접은 존재, 그것은 생존의 피로를 숨긴 현대인의 상징이다.
“철옹성 푸른 빛깔 지붕 위에서 쉬어 보련다”는 구절에서 ‘푸른 빛깔’은 하늘이 아니라 권력과 체제의 상징색으로 읽힌다. 철옹성 위의 푸르름은 더 이상 자유의 하늘이 아니라, 유리 벽 속 기업의 푸른 간판, 경쟁의 푸른빛이다.
이 장면은 ‘푸르름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푸른 하늘은 자유의 색이지만, 이 시 속의 푸른빛은 감금된 유리빛이다.
따라서 이 시의 초장은 자유를 잃은 인간의 모순된 쉼을 보여주는 서정적 장치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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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지붕 아래의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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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지붕 안에 잘난 척하는 인사들 / 무표정 언성 높이고”
이 구절은 사회 풍자의 정점이다. ‘청동 지붕’은 국회의사당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한국 현대시조의 사회비판 정신을 계승한 장치다.
시인은 **권력자들의 ‘청동성’**을 풍자한다.
청동처럼 단단하되, 냉철함이 아닌 냉혹함으로 굳어버린 얼굴들이다.
‘무표정 언성 높이고’라는 구절의 역설은, 표정 없는 자들이 소리만 높이는
현대 정치의 부조리를 간결하게 찌른다.
이 시의 힘은 바로 그 해학적 리듬 속 풍자성이다.
언성의 높낮이는 곧 권력의 층위를 의미하며,
시인은 그 위계를 “눈 안에 담을까 노심초사”라는 절묘한 문장으로 비튼다.
보기에도 피곤한 세상, 들리기만 해도 지치는 언성의 세상이다.
<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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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물결, 도시인의 정화 의식
“한강 밤섬에서 쉬어가자 / 흐르는 물결 따라 / 가슴을 실어 보내고”
이 대목은 시적 전환점이다.
이제 시적 화자는 내면의 정화로 이동한다.
한강은 도시의 폐부이자, 유동하는 생명의 비유다.
그는 ‘한강의 물결’에 자신의 가슴을 실어 보냄으로써,
욕망의 도시에서 ‘정화의 강’으로 나아간다.
이는 현대시조가 지닌 도교적 휴식의 사유와 맞닿는다.
‘높아진 하늘 아래 / 마음을 올려놓는다’는 구절은
기독교적 기도이자 불교적 해탈의 은유처럼 보인다.
도시의 피로를 씻어내며, 인간은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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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여의도, 사회비판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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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하늘 아래 욕심쟁이들 / 눈이 멀고 귀가 막혀서”
이 구절은 명백히 현실 풍자의 서사다.
‘여의도’는 자본과 정치의 축을 상징한다.
‘눈이 멀고 귀가 막힌’ 이들은 단지 정치인을 넘어,
탐욕에 매몰된 인간 전체의 메타포로 읽힌다.
시인은 “제 살 아프지 않으니 장소불문 / 안하무인 목소리만 커져간다”라고 적었다.
이 구절은 사회의 도덕적 퇴화를 짚는다.
타인의 고통을 듣지 못하는 인간,
그들은 결국 공간(장소불문)을 점유하면서도
‘공기(空氣)’를 더럽히는 존재들이다.
<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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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헤라 디여, 풍자의 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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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시조적 흥취가 폭발한다.
“에헤라 다여 스스락 거리는 / 갈바람에 소리쳐 보자”
이 소리는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민중적 해방의 리듬이다.
‘얼씨구절씨구’는 흥의 언어이자 풍자의 언어다.
시인은 웃음으로 현실을 넘어서며,
비판을 ‘노래’로 바꾸는 전통 시조의 정신을 되살린다.
그리하여 이 시는 비탄에서 희극으로, 풍자에서 축제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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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분석 현대 자유시조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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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전통 시조의 정형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 내면적 리듬과 종장 전환의 미학은 완벽히 시조적이다.
짧은 행과 긴 행의 교차, 반복되는 어미와 어조의 상승은
현대시조의 자유 리듬(Free Rhythm of Sijo)을 구현한다.
특히 마지막 행의 구어체 리듬은 판소리의 장단,
즉 ‘시조창’의 구음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단순한 자유시가 아닌,
도시적 시조, 풍자시조의 확장판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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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리듬과 해학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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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상철 시인의 언어는
겉으로는 일상적이지만 그 속에는 해학의 철학까지 흐른다.
‘청동지붕, 밤섬, 여의도, 욕심쟁이’ 등 구체명사는
풍자의 대상이자 시대의 좌표다.
그는 시를 통해 비판하지만, 분노 대신 웃음으로 통증을 해체한다.
이것이 한국 시조의 진정한 미학이다.
해학은 비판의 반대말이 아니라, 슬픔을 이기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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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해석> ‘쉼’의 윤리와 존재의 숙명
이 시가 던지는 본질적 질문은 “쉬어 갈 곳이 있는가”이다.
하늘은 푸르지만, 인간은 쉴 곳이 없다.
그것은 공간의 결핍이 아니라 마음의 결핍이다.
‘쉬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욕망의 끈을 내려놓는 수행’이다.
모상철 시인의 자유 시조는 현대 도시문명 속에서 쉼의 윤리학을 제시하였다.
쉬지 못하는 인간은 결국 타인을 밟는다.
따라서 이 자류시조 시의 주제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존재론적 회복의 선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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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전통과의 계보 풍자와 비애의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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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전통 시조의 한 축인
“사회비판 시조”의 계보(이현보–박인로–김삿갓–현대 풍자 시)에 당당하게 서 있다.
‘높은 언성’과 ‘욕심쟁이’는 권력 풍자이며,
‘갈바람의 노래’는 민중의 호흡이다.
이처럼 시인은 조선의 시조 정신을
현대 서울의 하늘 아래 품격 있게 되살려 놓았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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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위의 인간, 그 웃음의 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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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상철 시인의 마지막은 단순한 ‘풍류’가 아니라 ‘해탈’이다.
“파란 하늘 위에 얼씨구절씨구”라는 대목은
현실의 무거움을 초월한 자의 유쾌한 항거다.
푸른 하늘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니다.
웃음으로 도달한 자유의 공간이다.
결국 이 시는 풍자와 해학으로 완성된 도시 시조의 새로운 경지이다.
하늘은 푸르다. 그러나 그 푸르름 아래서 쉬어 갈 곳을 찾는 인간,
그가 바로 이 시대의 시인이다.
모상철 시인은 그 시적 쉼터를 노래로 빚어내었다.
비판을 품은 노래, 노래 속의 평화, 그것이 바로 이 시의 핵심의 영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