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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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불어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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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이인애
'신'이라 써놓고
시로 읽는다
신의 뜻을 겸허히 받들며
지극히 낮은 곳에서
바닥을 쓸고 밀면
'ㄴ'이 삭제되어
시가 되어 날아오른다
시 짓기는 정녕
축복으로 시작됨이니
긍지를 지니는 시인은
결코 시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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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숨결이 언어로 변할 때 — 다정 이인애 〈시가 불어오는 길〉 》
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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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서 “시”로, 언어의 기적이 태어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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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이인애 시인의 〈시가 불어오는 길〉은 단아한 시적 장치 속에 ‘언어의 창조론’을 담은 철학 시다.
‘신이라 써놓고 시로 읽는다’는 첫 구절에서부터 시인은 신과 시의 본질적 동일성을 선언한다.
시는 신의 낮은 호흡이다.
신은 시를 통해 인간의 영혼 속으로 스며든다.
한 글자의 변환, ‘ㄴ’의 소멸은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라 ‘성스러움의 인간화’를 상징한다. 신의 완전함이 인간의 언어로 옮겨질 때, 그 불완전함 속에 오히려 ‘시적 생명’이 발생한다.
이 작품은 그 ‘언어의 탄생’을 목격하는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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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이름을 부르는 시인의 입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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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 써놓고 시로 읽는다’는 문장은, 창세기의 첫 구절처럼 시의 근원을 선언한다.
‘쓰다’와 ‘읽다’는 각각 신과 인간의 영역을 상징한다. 신은 기록하고, 인간은 해석한다. 즉 시란 신이 써준 세계를 인간이 읽는 행위다.
이때 시인은 ‘말하는 자’가 아니라 ‘들을 줄 아는 자’로 존재한다. 그는 언어의 주인이 아니다. ‘언어의 그릇’이다.
이인애 시인은 바로 그 그릇의 자세로서, 신의 음성을 시의 형태로 옮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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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의 미학, 낮아짐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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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뜻을 겸허히 받들며 / 지극히 낮은 곳에서 / 바닥을 쓸고 밀면”
이 구절은 ‘시의 노동’을 육체의 행위로 비유한다. 바닥을 쓸고 미는 행위는 겸손, 청소, 순명(順命)을 뜻한다.
시인은 그저 ‘닦는 자’다. 그는 언어의 먼지를 걷어내고, 세상의 탁함 속에서 빛나는 결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진정한 시는 높이서 쓰이지 않는다. 그것은 낮은 곳, 눈물과 흙의 자리에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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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의 삭제, 무아의 창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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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이 삭제되어 시가 되어 날아오른다.
이 한 줄이야말로 이 시의 정점이다. 한국어 철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미묘한 순간이다.
‘ㄴ’은 혀끝의 상승, 곧 인간의 ‘나’를 상징한다. 그것을 지우는 것은 곧 ‘나’를 비우는 일, ‘무아(無我)’의 행위다.
‘ㄴ’을 덜어냄으로써 ‘신’은 ‘시’가 된다.
즉, 자아를 비우는 순간 언어는 신의 바람처럼 가벼워지고, 시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여기에는 ‘윤동주’ 시인의 겸허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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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짓기의 축복, 창조의 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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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짓기는 정녕 축복으로 시작됨이니 / 긍지를 지니는 시인은 / 결코 시시하지 않다.”
이 대목에서 시인은 예술가의 존재 선언을 한다. 시 쓰기는 ‘축복’이다.
그것은 재능이 아니라 은총이며, 노동이 아니라 예배다.
‘긍지를 지닌 시인은 시시하지 않다’는 구절은 언어적 유희를 넘어, 시인의 자기의식이 담긴 철학적 진술이다.
‘시시하다’는 말속의 ‘시’를 역으로 반전시켜, 오히려 시의 숭고함을 강조하였다.
이 언어적 반전은 ‘아이러니의 성스러움’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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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의 창조, ‘비움’의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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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의 삭제는 창조의 핵심이다.
언어가 존재를 지우는 순간, 오히려 존재는 더 깊어진다.
이것은 ‘비움의 미학’이자, 동양 사유의 정수다.
이 시는 서양의 존재론이 ‘있음’을 탐구할 때, 동양의 시학이 ‘없음’을 사유하는 방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즉, 존재의 근원은 부재의 순간에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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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적 맥락 함석헌, 그리고 이인애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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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시는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고뇌한 영혼의 기록이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고백은 신 앞의 겸허였다.
이인애의 〈시가 불어오는 길〉 또한 같은 계보에 있다.
시인의 시는 신앙시이되, 교리적이지 않다. 그것은 ‘삶의 낮은 자리에서 발견한 신의 흔적’이다.
함석헌이 말한 “씨알의 철학”처럼, 이인애의 시는 인간의 바닥에서 신의 숨결을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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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 해석, 언어와 성스러움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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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언어는 단정하고 고요하다.
문장은 짧지만, 그 간결함 속에 ‘침묵의 에너지’가 흐른다.
이것이 바로 ‘시적 영성’이다.
언어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의미가 절제될수록, 그 속에서 신의 숨결은 더욱 뚜렷해진다.
즉, ‘언어의 침묵’이 곧 ‘신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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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기원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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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불어오는 길’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바람’은 신의 숨결을 뜻한다.
성경에서 신은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때 ‘숨’을 불어넣었다.
시도 마찬가지다. 언어에 ‘숨’을 넣는 행위다.
시가 불어오는 길은 곧 생명의 길, 언어의 부활이다.
따라서 시인은 ‘호흡하는 존재’, 즉 신의 숨을 옮기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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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겸허, 인간의 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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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시인의 윤리를 말한다.
‘긍지를 지니되, 낮아질 줄 아는 존재’가 진정한 시인이다.
그는 세상의 바닥에서 시를 건져 올리고, 언어의 먼지를 닦아낸다.
이 자세는 예술가의 교만을 경계하는 일종의 영적 선언이다.
시인이란 신의 뜻을 옮기는 ‘사제(司祭)’요, 세상의 상처를 닦는 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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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신의 언어, 신은 시의 호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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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시의 기원을 신에게 돌리면서도, 인간의 참여를 통해 완성된다고 본다.
신이 ‘쓰고’, 인간이 ‘읽는다’.
‘신’은 인간의 언어로 내려온다. ‘시’는 신의 영역으로 올라간다.
그 상호 순환 속에서 언어는 다시 살아난다.
이 작품이 말하는 ‘길’이란 바로 그 성스러운 왕복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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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와 존재의 종교학적 연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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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인 시는 신학, 철학, 미학의 접점에 서 있다.
‘신과 시’의 구조는
《하늘-인간-절대- 상대-영원-순간’》의 축소판이다.
시인의 시어는 한국적 언어철학의 원형을 순환하고 있다.
‘ㄴ’이라는 자음 하나에 ‘존재의 윤리’와 ‘창조의 구조’를 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글의 철학적 잠재력을 재발견하게 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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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불어오는 길,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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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불어오는 길〉은 단 한 편의 시로 ‘언어의 신학’을 완성한다.
시가 신에게서 불어오고, 시인은 그것을 받아 언어로 되돌려 보낸다.
이 길은 단순히 시의 길이 아니다. 그것은 신에게로 향하는 인간의 길이며,
겸손과 긍지이다. 비움과 충만, 침묵과 진실이 공존하는 존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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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시학의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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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 이인애 시인의 시는 일상적 언어 속에서 신비의 질서를 찾아낸다.
그녀의 세계관은 ‘빛나는 낮춤’이다.
모든 화려한 수사 대신, 한 글자의 무게로 시의 영혼을 완성한다.
〈시가 불어오는 길〉은 시학의 원점이자, 인간과 신의 관계를 언어로 번역한 경건한 시적 문서다.
시란 결국 ‘신의 바람이 불어와 인간의 가슴에 머무는 일’ 임을,
이 시는 조용하고 단단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시가 불어오는 길〉은 한글의 형태, 신의 존재, 시인의 겸허가 삼위일체로 만나는 시다.
그 한 획의 차이에서, 신은 시가 되고, 인간은 바람이 된다.
그리고 그 바람의 길 위에서, 시는 오늘도 불어온다.
마음으로 눈으로
스치는 순간에 시는 날마다 부활하여 날아오른다